이기찬. 지독한 감기, 그 후…


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볼살이 푹 꺼지고 눈밑엔 약간 거무스름한 그림자가 자리했을 정도로. 너무 핼쑥해진 거 아니냐며 첫인사를 건넸다. 스케줄 때문에 잠을 못 자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왠지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것 같다고 하자, “일종의 컨셉트죠!” 하고 한번 웃더니 “사실 요즘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반응이 어떨까 걱정이 많아요. 지난 번 앨범이 생각보다 너무 잘 돼서 작업하면서 부담도 컸고요.” 촬영 중간 조금은 덜 말라 보이게 하기 위해 의상을 다시 바꿔 입어야 했을 정도로 야위었다는 것. 그리고 그냥 지나쳤으면 몰랐을 만한 사실, 그의 속눈썹이 굉장히 길다는 것을 발견하고 촬영하는 그를 지켜봤다.

그에 대한 단상
그는 조용하다기보다 차분했다. 허물없을 정도로 친해져야만 엽기에 가깝게 오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매사에 신중한 편이며 항상 계획을 세우며 산다. 화가 나도 심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직설적으로 내지르지 못하고, 얘기할 필요가 없으면 안 하고 넘어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가수로서의 욕심
지금까지는 그동안 해왔던 이미지가 있으니까, 그리고 변신은 위험 부담이 따르니까 계속 발라드를 고집했었다. 사실 발라드가 그에게 가장 잘 맞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솔직히 재미없다. 그래서 앞으로는 록 등 여러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필요하다면 그룹을 결성할 용의까지도.
여섯 번째 음악 이야기
이기찬의 앨범이 어느새 여섯 장. 고등학교 때 데뷔 앨범을 낸 그가 이제 20대 중반이 된 걸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1집 때는 처음이고 어렸기 때문에 잘 몰랐어요. 그 후 3, 4집 프로듀서를 하면서 조금씩 배웠죠. 어떻게 해야 음악이 대중들에게 어필이 되는 지를요.” 최근에 나오는 음반은 수록곡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그런데 그의 6집엔 딱 10곡만 수록되어 있다. 녹음한 20곡에서 과감히 반을 잘라내 양보다는 질을 택한 것이다. 대개는 곡을 써서, 아니면 받아서 노래를 하면 끝나는 게 녹음 과정인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전주를 없애 보고 가사를 고쳐 보고 심지어는 녹음했던 걸 지우고 다시 또 하기까지…. 그래서 한 번에 녹음이 끝난 곡이 한 곡도 없다. 이번 앨범은 50% 정도 만족한다는 그. 아무리 그래도 만족도가 너무 낮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의 대답이 제법이다. “앞으로 해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요…”.
이기찬과 사람들
문득 그의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질문을 툭 던져 놓고 기다렸더니 역시나 가족을 먼저 꼽는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친구들. 그는 몇 명만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 몇 명에게만은 남들에게는 차마 못 보여주는 것도 보이며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제일 가까운 친구는 고등학교 때 짝. 그리고 동갑내기인 79년생 연예인들과 친하다. “지금은 무지 친한 효리나 강타도 데뷔 초엔 잘 몰랐어요. 그땐 다 자기만 잘난 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나이가 좀 들어서(?) 돌아가는 상황도 알고 여유가 생기니까 그런 건 다 버리고 가까워졌죠.” 2003년이면 그의 나이 스물다섯.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어린 가수들이 많아져 나이가 많게 느껴질 뿐, 마음은 아직도 스물, 스물 하나 꽃띠다. 10년 후에도 그 마음, 열정 모두 그대로 간직하고 있길.


터뷰 도중, 눈치 없는 그의 핸드폰이 연신 울려댄다. 그런데 벨소리가 재미있다. 벨소리 다운, 컬러링, 40화음이 아니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취급을 받는 요즘, 그의 벨소리는 뽕짝도 아닌 민요였다. “전 그런데 신경 안 쓰는 편이에요. 누나가 쓰던 핸드폰인데 아마 누나가 지정해 놓은 걸 거예요. 귀찮아서 바꿀 생각도 안 했어요.” 그렇다고 기계치는 아닌데 유행 따라 일일이 다 챙기긴 싫다고. 핸드폰 사용법만 보면 마치 40대처럼 걸고 받는 것만 하는 그. 녹취된 그의 벨소리는 아직도 녹음기 안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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