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의 정의에 대해 규범을 만들어 놓은 팬들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TV에서 밴드를 라이브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은 아무데도 없다. AR도 안된
다. 댄스 팀 나올때 악기 옮기고 어쩌구 하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맨
이나 PD들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지 모르겠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기성세대들은 절대 노력하지 않는다. 눈살 찌푸릴 줄만 알지..... 인터뷰 도중 미
안하지만 지금 몇 시찜 됐나? 약속이 있어설라므네.....
F: 아직 질문할 내용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약속시간에 늦었기 때문
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절반 정도 진행됐는데 나머지 이야기들은 다
음 기회에 자리를 마련해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두가지 정도만 더 묻겠다. 다음 앨범 계획은 어떤가 작업에 착수
한 상태인가...
N: 그렇다. 정규 앨범과 싱글앨범을 포함해서 올해 안에 5, 6장이 동시에 나올
수도 있다. 하면 하는 거고 안하면 안하는 건데 어 ㎎든 작업은 이미 들어간 상
태다.
F: 외국의 경우를 자꾸 들어서 미안하지만 에로 스미스나 롤링스톤즈의 공연을
보면 부자가 함께 공연장을 찾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넥스트
도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20년 후쯤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N: 작년만 해도 우리 공연에 자기 배우자를 끌고(?)오는 팬들이 많이 있었다. 지
금은 애들이 있어도 공연장에 데리고 오면 사운드에 경기할 정도가 대부분이고
한 2년 정도만 지나면 애들을 무등 태우고 공연장에 들어서는 모습들은 서서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딥 퍼플 내한공
연 때 아버지와 아들이 함꼐 오지 않았는가. 넥스트 공연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
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F: 늦은시간까지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맙다.
N: FAME과의 인터뷰는 제일 마지막 스케줄로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마음
놓고 할 수 있을 테니까(웃음)
인터뷰내용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아이고 팔이야 주꺼따
아직도 몇줄 남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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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보컬, 키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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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68년 5월 6일
출신교: 서강대 철학과
출신그룹: '88년 무한궤도
신장: 170 (의심스럽죠?)
혈액형: O형
특기: 요리
대학교 1학년 때 더 이상 참았다간 죽을 것 같아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다.
음악은 국민학교 때부터 마냥 조았다. 딥 퍼플, 핑크플로이드, 예스, 메탈리카 등
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는데 내 한 파트보다는 밴드 전체를 지휘하는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재미있는(?)음악스타일은 다 좋아한다. 내 단점이라면 무대위에서 통
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사용하고 있는 장비들로는 각종미디악기,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맥킨토시 컴퓨터
등이다. 후배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과거를 잊지 말고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대비
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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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황(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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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71년 11월 16일
출신교: 메릴랜드 대학
출신그룹: '91년 DownTown
신장: 175
혈액형: O형
특기: 미식축구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음악을 가깝게 접하며 자랐다.
국민학교 4학년때, 밴헤일런의 '1984'앨범을 듣고 프로 음악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는데 가장 많이 영향받은 음악인은 단연 지미 핸드릭스다.
연주할 때에는 각 곡에 대한 적절한 느낌으로 연주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타는 언제나 음악의 꽃이다. 정말 매력저긴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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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용(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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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68년 12월 18일
출신교: 부산 동래고
출신그룹: Quality
신장: 180
혈액형: O형
특기: 당구
음악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에겐 최고의 작업인 것 같아서 고 2때 음악인
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향받은 음악인은 빈칸이 모자랄 정도로 많아서
생략한다. 드럼은 타마라는 제품을 쓰고 있다. 여러 악기를 써 보았지만 내게는
제일 편안한 악기다. 내연주 스타일의 단점이라면 세밀하고 섬세한 테크닉이 약
하다는 것이다. 록 사운드의 파워와 중심은 드럼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없다. 긴 안목과 인내, 끈기, 노력, 이 모근 것은 건강한
정신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땅의 드러머들이여 메트로놈과 떨어지지 마라.
(이 글은 3월호 In Magazine에 수록되어 있는 읽기 난해한 인터뷰를 읽기 쉽게
정리한 글입니다)
1. 그동안 넥스트의 앨범들은 정규앨범이거나 멤버들의 독집앨범이었는데 이번에
싱글 앨범을 발매하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그건 제작상의 문제인데요, 8곡에서 10곡에 이르는 곡을 발표한다는 것도 나름대로
적지않은 부담이 되거든요. 녹음시간도 한장에 1년씩이나 걸리니까 기다리는 사람
도 이만저만이 아니죠. 사실 넥스트의 앨범은 컨셉트 앨범이기 때문에 앨범의 성격
에 맞지 않으면 만들어 놓고도 쓰지 못하는 곡도 있거든요. 이번에 동계유니버시아
드 음악을 담당했는데 만든김에 한번 내보자 한거죠. 음반을 내려고 생각했더니
짝이 되는 곡도 있고, 팬들에게 정규앨범이 나오는동안 간식이나 들고 계시라는
그런 취지로 내게 됐어요.
2. 넥스트의 음악에서는 국악의 냄새도 간간히 느낄수 있는데 혹시 국악과의 접목을
시도해보실 의향은 없습니까? 이번 싱글의 <아리랑>이 그 시발점으로 보이던데요
- 필요에 따른, 또 저희가 생각하는 여러개의 방향 중에 하나에요. 딱히 의무감
같은것은 없어요.
3. 이번 싱글은 그간 넥스트가 발표한 앨범들과 비교해 볼 때 성격이 조금 다른것
같던데요.
- 미발표곡의 성격이기때문에 싱글 앨범의 곡들이 정규앨범 속에 들어가지는 않아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준다고 할수 있죠.
4. 넥스트의 복장은 넥스트가 추구하는 음악의 메시지적인 면을 비교해 볼때 다소
이질감을 주는데 그런 어두운 복장을 고집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 외적인 것은 음악과 상관 없지만 굳이 말하지면 우리나라 가요시장에서 숨을
못쉬고 질식해 가는 밴드들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는데요.
5. 앨범제작을 위해 주로 참고하시거나 즐겨들으시는 음악은 어떤 것들인가요?
- 내 음악 하는 재미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는 재미도 만만치 않거든요.
완전 잡식성. 컨츄리만 빼고는 다 듣는 편이죠
6. 넥스트의 음악은 가시적으로 보기엔 록의 한장르 같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록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이고 있는데 궁극적으로 넥스트가 추구하는 음악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 상당히 애매하죠. 그런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까닭은 우리가 딛고 있는
가요계의 가요계의 현실 때문인데 장르의 분할이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거죠
장기적으로 특정 장르의 음악을 하는 그룹들이 존속된다면야 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넥스트의 음악도 정형화될수 밖에는 없는 것이죠. 그리고 넥스트의 음악
에서 실험성을 논하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건 현실적 카테고리 안에서 대중이
원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에 한해서에요. 우리나라에서, 만약 그런 것
으로 저희들의 음악적 정당성을 논한다면 직접 만들어 들으시는 수밖에는 없죠.
7. 그렇다면 넥스트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인가요? 제가 보기엔 언더그라운드 음악
은 아닌거 같은데 넥스트가 생각하는 언더그라운드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 넥스트의 음악은 언더그라운드는 아니예요. 일단 넥스트는 언더그라운드니 오버
그라운드니 하는 개념 자체를 부인하니까요. 그리고 한국에선 진정한 언더의 개념
이 생길수 없다고 봐요. 언더그라운드라면 공중파나 상업화된 기타매체를 타지 않
고, 정형화된 P.R방식에 의존하지 않는 활동을 첫번째 요소라고들하는데 더군다나
그런 의미에서의 언더그라운드란 극소수를 제외하곤 없는 실정이죠. 거기다가 제가
생각하는 언더그라운드의 첫번째 요소는 특정집단의 정설을 대변하는것이라고 생각
해요. P.R의 문제는 두번째인 셈이죠. 과연 언더그라운드가 어느 계층을 대변하고
있고 그 계층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으며 그 계급만의 정서는 무엇이냐는거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계층이니 계급같은건 존재하지 않거든요. 외국같은 경우
노동자들이 록을 듣는데 우리나라에선 학생들이 록을 듣잖아요. 이러한 모든것을
보았을때 한국에서의 진정한 언더란 존재할수 없다는거죠.
8. 소위 아이돌 문화라는 이름하에 생산되는, 생명력 없는 유수의 밴드들에 열광
하는 십대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그건 개인의 문제죠. 교육같은 것으로도 해결할수 없으니까요. 가령, 모그룹의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나는데 넥스트의 음악만 들으면 닭살이 돋는다라고 할
경우에는 그 사람이 맞거든요.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까요. 문제는 한국가요의
현실에서 그들이 선택할수 있는 음악적 토양이 만들어졌는가라는 것이죠. 현재
모든 음악들은 TV나 라디오에서 나오는데다가 획일적 장르가 대부분이고 거기다가
콘서트 문화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선 상당히 낙후되어 있잖아요. 십대들이 선택할
음악적인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게 안타까울 뿐이죠.
9. 혹시 머리를 자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현재로는 없습니다 (신해철씨) 자르고 싶은 마음이야 있죠. 멤버들의 외압 때문에
못 자를 뿐이지요 ( 드럼치는 이수용씨 외 1명. 여기서 1명은 기타치는 김세황씨
를 가리킴)
10. 앨범을 만든후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 솔직히 음악도 듣고 친구들도 만나기도 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우리꺼
만들고 남들꺼 도와주면 당구칠만한 시간도 없어요 (김영석) 사실 노는것도
중요한데 (신해철의 부연설명)
11. 콘서트 계획은 없으세요?
- 정규 콘서트 계획은 12월 31일이구요. 그 중간에 몇차례 공연, 몇개의 음반을
내죠.
12. 앞으로 넥스트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넥스트 활동중에 개인 행동은 전혀 없어요. 활동시간은 나름대로 정하는거죠.
이번이 네번째 앨범인데 앨범을 만들기 위해 보이는 시간부터 앨범에 대한 활동이
종료되기전까지, 그리고 나서 다섯번째 앨범이 바로 들어가면 쉬는 시간이 없는
거고 안식년을 갖자고 하면 쉬는거죠.
13. 멤버들의 독집앨범 계획은 없나요.
- 물론 생각이야 다 있죠. 김세황씨는 지금 준비중이에요. 이건 아무한테도 말
안한건데. 다른 곳에서 인터부 나오면 이런 질문 잘 안하거든요 (김영석)
14.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재밌어요. 싸울 대상이 하나 더 생긴 셈이죠. 그 대상이라는건 우리나라 록밴드의
조로현상이라고 할까요. 외국의 경우 30대 밴드는 허다하고 40대,50대 밴드들도
잘 나가는데 우리나란 서른 한두살만 되면 끝이 잖아요. 괜히 폼 잡고.
15.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 제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넥스트도 리메
이크 앨범을 제작할 의향은 있으신가요?
- 우리가 무엇인가를 리메이크한다는 타당성이 있다면야 생각해 볼 일 이지요.
현재의 리메이크 앨범은 타당성이 불분명힌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할 것이
없으니까 흘러간 옛노래나 다시 불러 히트 치자는 생각은 안 좋다고 봐요.
최희준씨의 리메이크는 좋게 들었는데. 오리지날과 리메이크의 차이점은 창조성
이라는 면에서 비교할수 없거든요. 그럼 왜 리메이크를 했다라는 당위성을 주장
하려면 리메이크, 된 노래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떠한 새로운 해석을 했는지를
보여줘야 하는거죠. 그로고 솔직히 저희들 곡내기도 바쁘고 아직 발표하지 못한
곡도 많이 있거든요.
16. 신해철씨의 보컬은 선천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피를 토하는 후천적 연습에
기인한 것인가요. 노래방에서 불러 봤지만 어림없던데요.
- 지극히 후천적인 잔머리에 의한 것입니다 (신해철) 그건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잔머리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노래방 기자재로는 어림없는 것이지요.
(김영석) 그거 조심해야 합니다. 실명할 위험도 있거든요. 머리 전체를 울리는
창법이기 때문에 눈의 안압이 높아져서 실핏줄이 나갑니다. 그러니 조심해야죠.
(신해철)
17. 평소 연습량은 어느정도 되나요?
- 연습 안해요. 기본 연습빼곤 (이때 김영석 '연습 안해도 이정도면 연습하면 과연
얼마나 될까?' 라는 기대감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라고 조크) 연습을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 어거지로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밴드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건
분위기거든요. 사기,분위기,연주하는것이 항상 즐거운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려면
무리한 연습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즐거워야 남들도 즐겁다는
것이 저희 생각이니까요.
18. 애인은 있으세요? 말하자면 결혼을 생각하고 계신 여자같은 (이 게시판엔 별로
필요하지 않은 질문일수도)
- 결혼이요? 그런 전제로라면 없어요. 그냥 만나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리고 저는
결혼할 사람이 애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신해철씨 이후. 모든 멤버들도 애인이 없기로 하자면 즉석에서 결정을 내림)
19. 개인적으로 좋아하시는 아티스트는 누구세요?
- 김세황씨는 김역석, 김영석씨는 이수용, 이수용씨는 신해철, 그리고 저는 김세황
씨를 제일 좋아합니다. (윽, 팔은 안으로 굽는다) 굳이 말하자면 전 삐삐롱스타킹
을 가장 좋아해요. 이윤정씨 있었을때. 전 주주클럽 (이때 김영석씨가 재빨리
의견을 내놓는다. 이어 장승처럼 앉아있기만하던 김세활씨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
다) 저는 한영애씨.
20. 밴드들의 우수성은 무엇으로 평가된다고 생각하세요?
- 밴드를 보컬 수준으로 따진다면 평론가 그만둬야지요. 음악을 노래 잘한다 못한다
로 그분할거면 음악얘기 하지 말아야되고, 그리고 밴드를 연주 잘한다,못한다로
평가할거면 음악 듣지 말아야지요. 가장 중요한 건 들어서 감동이 오느냐, 마느냐
하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죠. 평론가란 개인적 차원의 문제를 통합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전체적으로 그 밴드가 무슨 음악을
하고 있으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가,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얼마나 잘하느냐는 두번째 문제에요. (이때 김영석씨의 멋진 부연설명이
시작되었으니 그 내용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옛날 일본에서는 송골매를 국내
최고의 밴드로 뽑은 적이 었 섭습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연주력이 베스트는 아니었
습니다. 문제는 팀웍 그리고 필링입니다-) 비틀즈를 뛰어난 연주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하지만 그들은 시대를 만들었죠. 무엇을 하고 무엇이 나오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21. 앨범을 보면 신해철씨의 비중이 큰 것처럼 보이는데 멤버간의 음악적 이견차이
는 없나요?
- 국내 음반의 실정상 억지로 명시를 하자면 그렇게 되는거지만 넥스트의 음악이
누구 개인의 음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음악적 이견 차이라면
항상 있죠. 그만큼 서로의 음악을 사랑하니까. 그럴 땐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거죠.(이때 입에 거품을 문 정도에 따라 결정이 된다며 거품의 양,크기,색깔,농도
등 에 따른 디테일한 면까지 신해철씨와 김영석씨는 말해주었다. 참으로 놀라운
배려였다.
강신조 (KCREED )
[기사] 6월4일자 문화일보 "신해철 인터뷰" 1997-06-04 19:18 70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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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공시각 : 06/04 08:54 출처 : 문화일보
제목 : <대중문화 이사람>록 페스티벌 '97자유' 기획 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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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철(30)은 가수중 보기 드문 논리꾼이다. 행동이나 말에 고집스런 면
이 있어 때론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워낙 자기주관이 뚜렷한데다 논
리정연한 구석이 있어 장점으로 더 많이 작용한다. 이런 점 때문에 가요계
에선 그를 별종이단아저항가 등의 튀는 수식어로 말하기 좋아
하지만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의 탁월한 자질엔 누구나 찬사를 보낸다.
어느새 그가 가요생활 10년을 맞았다. 그의 콘서트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대부분의 소극장 라이브공연들이 하루관객 1천명을 모으기 힘들 때에도 그
는 1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모아 화제를 모았다. 이런 팬들의 진심을
파악한듯 그도 요즘은 넥스트의 보컬뿐 아니라, 방송 DJ와 강연, 프로
듀서등 다양한 활동에 나섰다.
-최근 어느 여론조사 결과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문직업인 출신 교
수후보로 뽑혔다는데 실제로 그럴 생각이 있는지.
그동안 몇번 강단에 선 일은 있지만 교수가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
다. 뮤지션은 음악을 통해 얘기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외도
는 하고싶지 않다.
-요즘 방송활동이 부쩍 늘어나 보이는데 무슨 이유가 있는가.
이제 더이상 얼굴없는 언더그라운드밴드로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오버그라운드밴드로서 해야할 또다른 의무들을 궁리중이다.
-4일부터 8일까지 고려대에서 열리는 록페스티벌 자유공연에 대한 사
람들의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조용필 신중현 산울림 등 내로라하는 출연
진들의 섭외 때 역할이 컸다는데.
한국 록뮤직을 이끈 중견 록그룹들과 후배들이 대거 모여, 그것도 젊음
의 한복판에서 음악적 열기를 함께 뿜어낼 수 있는 자리가 사실 한번도 없
었다. 특히 조용필씨같은 경우는 록가수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대선배로 지
금 우리들이 이용하는 모든 테크놀로지음악의 선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특히 이 공연을 계기로 한국대중문화의 올바른 정립을 위한 7대 선언문
등이 발표되는 등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말들이 많다. 더욱이 신해철씨가
이 움직임의 주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공연은 아주 순수한 목적에서 출발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 특히 7대
선언문과 협회명들은 출연자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실로 생소하기
짝이없다. 누가 이런 보도를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구체적인 얘기들이 나오기까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
되는데.
사실 대중음악을 한다면서 대부분의 가수들은 주변 환경에 대해 자포자
기 상태로 지냈고 부당한 압력을 당해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당하
기만 했다. 이런 점들을 뒤늦게 깨달은 일부 가수들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그게 벌써 4년전 일로 모임 이름이 청음회(
대한민국청년대중음악인협회)이다.
인원은 30여명정도로 실제로 이 모임의 회장일을 계속 맡아왔다.
-결혼계획은 전혀 없는가.
여자에게는 무엇보다 작은 행복들을 챙겨줘야 좋은 남편 소리를 듣는데,
그럴 자신이 전혀 없다. 어찌 나 편하자고 남의 귀한 집 딸 데려다 고생시
키겠는가.
그러나 조용필씨가 결혼후 안정된 삶속에서 음악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엔 무척 부럽다. 더 일찍 그런 안정을 찾았
으면 더욱 좋았을뻔했다는 말로 그의 솔직한 답변을 대신했다.
<金娟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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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냐....
강신조 (KCREED )
[기사] TV저널 음반프로듀서 신해철 인터뷰 1997-08-08 02:23 95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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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공시각 : 08/05 00:00 출처 : TV저널
제목 : [집중연재] 음반 프로듀서/인터뷰·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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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넥스트는 이미 완성됐다
다른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신해철도 음악을 일이자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지난 한해를 놀았다고도 하고
일했다고도 하는 그의 이야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여겨진다.
마치 가족을 떠나 배낭 여행을 다녀온 사람처럼 그는 한껏 채워져
넥스트로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었는데 7월 막바지에 만난 신해철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97년 추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넥스트 멤버들 모두 지난 한해 각자 솔로 활동을 열심히 하고 다시
뭉쳤는데 이 휴지기가 어떤 음악적 성과로 나타났는지 알고 싶어요.
개인적인 기량이 많이 늘었어요. 덕분에 예전 전력으로는 구사하지
못했던 전술도 구사해 볼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예를 들면 스테이지
위에서 컴퓨터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 대표적인데 그전까지는 밴드와
컴퓨터를 맞물려서 사운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과정이
복잡했거든요. 원래 우리 앨범은 다중녹음을 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컴퓨터, 백코러스 인원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가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우리들이 직접 연주도 하고
코러스도 넣어요.
신해철씨를 비롯한 넥스트 멤버들이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
궁금한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MBC 라디오의 <음악도시> DJ와 케이블TV m·net의
<사이버 뮤직 스페이스>의 VJ를 하면서 영화 <정글 스토리>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 윤상씨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앨범 <No Dance>를
발표했어요. 제 경우 음악이 일이고 휴식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음악속에 잘 살았어요. 베이시스트인 김영석씨는 작년 한해 에메랄드
캐슬, 미스미스터, 리아 등을 키워낸 음반 프로듀서로 두각을 나타냈고
김세황씨는 세션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날렸죠. 가요를 듣다 기타가 좀
심하게(?) 나온다 싶으면 그 친구가 다 한거라고 보면 돼요. 드러머인
이수용씨 역시 작년에 드럼 참 무지하게 치고 다녔어요. 각자 자기
영역을 개발하고 구축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올 상반기에 무척 바쁘셨지요?
연초에 싱글 앨범 <Here I Stand For You>를 팬 서비스 차원에서
내놨었고 그 앨범 발표후 전국 순회 콘서트를 다녀왔어요. 지난
4월에는 서울에서 히트곡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편곡해 발표한
언플러그드 콘서트도 가졌고 바로 얼마전에 라이브 앨범을
출시했어요.
라이브 앨범 <R.U ready?>의 반응은 어때요?
출시된 지 이틀 됐는데 <R.U ready?>가 이전 라이브 앨범 판매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호조를 보이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이브 앨범 기록을 저희가 가지고 있는데 그 수치가
약 15만장 정도예요. 국내 음반 시장에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라이브 시장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좋은 결과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넥스트하면 신해철씨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와 같은 황금의 라인 업이 구축된 상황에서 록밴드로서
넥스트의 위상은 어떻게 정립해갈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넥스트로 불려지는 것은 이미 완성됐어요. 실제로 저희 앨범을
구매하는 계층은 신해철과 넥스트라기보다 넥스트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팬들은 신해철과
넥스트라는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해요. 앨범이 1백만장 2백만장
팔려도 신해철과 그 백밴드라는 인식으로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보다는 우리가 하고 있는 록밴드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작업을
인정해 줘서 5만장을 파는 것, 그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넥스트에 비중을 두는 거죠.
넥스트의 음악이 대중성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걸까요?
대중성과 음악성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간혹
저희들을 일컬어 언더그라운드냐 오버그라운드냐 하는 말들도 있는데
그것 역시 대립 관계는 아니죠.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는 순환
관계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음악성과 상업성도 마찬가지예요. 이
둘은 같이 가는 경우도 있고 따로따로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이
분야에 대해서도 흑백논리로 자로 재듯 말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제
입장이죠.
신해철씨 개인과 넥스트의 미래 자화상을 그려본 적이 있는지.
지금 하는 일도 힘들어서 다음 일은 생각할 수가 없어요.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돼 있겠죠. 특별한 모델은 없어요. 단, 한번도 없었던
사람이나 한 번도 없었던 팀이 되고 싶지 누구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올 하반기에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별다른 앨범 PR 활동은 없어요. 가을쯤 케이블 TV 만화채널
투니버스가 26억원을 들여 자체 제작하는 만화 <영혼기병 라젠카>의
메인 주제가 및 삽입곡을 담은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출시될
예정이고 빅뱅에서 관심을 가지고 프로듀싱하고 있는 신인 변재원씨의
첫 앨범이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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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조 (KCREED )
[기사] [FAME] 신해철 인터뷰 12月호 1997-12-04 22:03 122 line
LAST INTERVIEW WITH N.EX.T
우여곡절(?) 끝에 마감에 임박한 어느 날 드디어 넥스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약속시간 몇 시간 전 매니저인 빅뱅의 조철 실
장으로부터 이러저러하여 멤버들이 모두 참석할 수는 없고 신해철 군만
인터뷰를 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지막인데... 언제 그들을 한자리에
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신해철과 넥스트'
라는 표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있던 취재기자는 또 한번 잠시 머뭇거
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이상 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넥스트
와의 인터뷰, 아니 신해철과의 인터뷰를 위해 준비 작업을 서둘렀다. 신해
철에게 들어 본 넥스트에 관한 이야기들.
Fame(이하 F): 지난 기자회견에서 내년에는 국내 활동 뿐 아니라 해외
활동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언급을 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신해철(이하 신): 가능성은 1에서부터 시작해 무한하지만 아직 논할 때가
아니다. 일단 전국 콘서트가 끝나고 휴식을 취한 뒤
천천히 구상에 들어 갈 것이다. 아직 구상도 안했는데
무엇을 말하겠는가.
F: 넥스트 마지막 공연을 위해 모든 멤버들이 집중하고 있다고 했는데 마
지막이기 때문에 전열이 흐트러지지는 않나?
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넥스트는 지금 굉장히 안정적이다.
F: 음악 외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연주, 믹싱, 마스터링 등에 치중하다 보
니 음악 외적인 부분, 즉 느낌이나 내용 등에 소홀하지는 않았나?
신: 그런 문제가 제일 많이 거론되었던 것은 'World' 앨범이었다. 사운드
는 외국의 앨범과 비교해 서도 전혀 손색이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
고 컨셉이 깨진 느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이번 'Lazenca'에서는
양쪽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결과에는 만족하고 있다. 우리의
1차적인 목표를 이룬 셈이다.
F: 넥스트 마지막 공연은 몇 개 도시에서 예정되어 있나?
신: 음... 8개 도시 정도.
F: 마지막 공연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나?
신: 쇼킹한 이벤트보다는 충실한 공연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F: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신: 언제는 없었는가? 특별할 건 없다.
F: 라디오 출연 등 개인 활동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신: 우리 공연이 끝나면 개인적인 활동도 중단할 생각이다. '음악 도시'
DJ를 했던 것도 팀 활동의 일환이었으니까.
F: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어서 해산한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시끄럽다.
물론 매스컴에서 전체가 아니라 그 부분만 보도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말을 꺼낸 내 의도는 정상에 올라갔더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고 그 산은 겨우 300m밖에 안되는 작은 산이었
다 라는 것이다. 주위에는 몇천 미터의 산들도 많은데(웃음).
12월 31일까지 8개 도시에서 넥스트 마지막 공연
F: 우문인줄 알지만 해산이라는 극약 처방을 할 필요가 있었나? 적당 기
간 휴식을 갖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신: 아티스트나 예술가는 비지니스맨이 아니다. 그래서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신념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다. 넥스트는
전체에서 1%도 안되는 록씬에서 할만큼 했다.
F: 크래쉬의 앨범에는 어떤 형식으로 참여하나?
신: 앨범 구상이나 기획 정도가 될 것같다. 음악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지는 않을 것이다.
F: 'Lazenca' 앨범이 처음부터 정규 네 번째 앨범으로 제작되고 있었나?
아니면 작업 도중 해산이 결정되어 4집 앨범이 된 것인가?
신: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 섭외가 들어오기 전
부터 이미 만들어진 곡들도 다수 있었고...
F: 발표되지 않은 곡들도 꽤 있을 텐데...
신: 20여 곡 된다.
F: 넥스트 해체를 발표한 후에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신: 지금은 우리를 이해하고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있다. 더 좋은 음악으
로 돌아오라고... 그런데 한 번도 넥스트 앨범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
리에 대해서 해산을 왜 했느니 어쩌구 저쩌구 가십 성으로 떠드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F: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무엇을 하고 싶나?
신: 일단 휴식이 필요할 것같다.
F: 스케줄이 없을 때는 주로 어떻게 지내나?
신: 대부분 집에 있는 편이다.
F: 언제 또 다시 이런 자리에서 만나
될지 기다려진다.
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내년 아마 봄쯤에 공식적
인 활동 계획이 발표될 것이다.
F: 인터뷰 즐거웠다.
신: 고맙다.
@ 12월호 Cover Story를 준비하기 위해 기자회견 포함, 넥스트를 네 번
만났다. 인터뷰 내용중 본 지면에 옮기지 못한 부분들이 꽤 많이 있다. 독
자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지면관계상 미처 밝히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마
저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 김영걸 / 사진: 허성민(프리랜서)
노학민 (민이님 )
[특집] 신해철 시리즈 8- 신해철 인터뷰 1 1998-05-26 23:18 495 line
신해철 인터뷰
나는 지금 아주 조심스럽다.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편집부의 만장일치의 결정.
그의 흔쾌한 승낙. 비교적 넉넉한 시간을 내주겠다는 약속. 십 분쯤 늦겠다는
매니저의 매너 있는 통보 등등 순풍에 돛을 단 듯한 과정들이 어째 지나치게
순조롭다 싶어 만나자 마자 인터뷰 전에 미리 새겨 해줄 말이 없는가?
물어본 것이 잘못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제가 한 말 잘라서 하는 것.
하지 않은 말 했다고 하는 것. 한 말 다르게 쓰는 것. 의도와 다르게 건방져
보이는 것에 대해 신경이 날카롭죠. 전 제가 한 인터뷰 기사하나도 안 빼놓고
다 봐요. 한번 틀어지면 다시는 안 해요. 녹음기 들고 오셨으니까 됐네요"
선전포고를 꽝 한다. 물론 녹음기는 착하게도 돌아가고 있고 90분짜리 테이프
두 개도 준비했지만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그대로 싣는다 해도
편집은 피치 못할 것인데. 이를 어떡하나? 그가 달변이고 능변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혹시 실수가 있다면? 그냥 녹음된 테이프를 복사해서 독자들한테
하나씩 나눠 줄까? 최악의 경우. 녹음이 하나도 안되었다면? (으악.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3주만에 앨범(<정글 스토리> 영화음악 사운드 트랙을 말한다) 작업을
끝냈다니, 우선 대단하네요. 완성된 앨범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린다면?
믹싱까지 치면 한달 걸렸죠. 앨범 나오고 나면 항상 똑같아요. 처음엔
"음 잘했군 후후후"하다가 한 달쯤 지나면 "이걸 앨범이랍시고 냈단 말인가?".
삼개월 지나면 "그거 PR 안 할래. 창피해" 그래요. 이번 앨범은 처음부터
정교함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권투로 치자면 펀치력도 있고 테크닉도 완벽하고
쇼맨십도 있는 복서여야 하는 것이 넥스트라면. 이건 펀치력만 있는 복서라는
느낌이었어요. 굵직굵직한 구성이 펑펑 거칠게 놓여지면 좋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 식이 아니었다면 한달 내로 만들지도 못했을 테고.
Q: N.EX.T의 (The Return of N.EX.T part2 World) 앨범 작업과 비교한다면?
그 앨범의 성과는 밴드의 시스템 속에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선례들을 만든 것.
트러블을 해소하는 대화창구가 만들어진 것. 그런 것들이었거든요.내 아이디어에
대해 누군가 아닌데, 라고 얘기해주기를 여러 해 동안 바랐고 그런 작업이
즐거웠죠. 제가 우리 멤버들보다 기타나 베이스를 절대 잘칠 수 없죠.
터프하게 던지는 거라면 잘치는 것보다 못치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치면서 내 색깔을 100% 내는 게 더 좋겠다. 일일이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 때문에 오랜만에 즐거울 것 같았어요. 막판에 채력만 딸리지
않았다면 무난히 끝났을 텐데, 탈진해서 뻗고, 링겔주사 맞은 다음에 보컬트랙을
녹음했거든요. 시간도 없었지만 더 이상 부를 힘도 없더라구요.
Q: 믹싱 엔지니어 믹 글리솝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먼저 완성된 곡을 영화쪽으로 빨리빨리 보내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엔지니어도 황당해 하죠. 시간이 모자라.라는 식의 작업을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프로페셔널이니까 하겠다 그러더라군요. 아마 지난번
앨범 하면서 정들어 놓은거 없으면 보따리 싸서 갔을지도 몰라요. 전 믹싱작업에
대해서는 굉장히 만족하는데 어시스트 엔지니어들이 반 죽었어요. 히스테리
일으킬 정도로 까다로운 완벽주의자예요. 그래도 쉬는 시간에 모여서 모르는 거
물어보면 자상하게 설명해 줘요. 많이 배우죠.
Q: 신해철 씨도 완벽주의 아닌가요?
거리가 멀어요. 전이된 의미의 완벽주의라고 후배들은 얘기하는데. 예를 들어
보컬 트랙을 녹음할 때 음정, 박자가 정확하게 녹음되는 거를 완전히 무시해요.
초기에 보컬리스트로서 낙제점을 받은 것도, (썩 훌륭한 싱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울면서 여자한테 애걸하는 내용의 노래를 하면서 어떻게
음정, 박자가 맞을 수 있겠는가. 감정이 표출되는 게 중요하지.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칼같이 계산을 해야 될 부분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가는거고.
그런 걸 분류해요. 저의 이중 인격적인 성향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급진이거든요.
Q: 어떤 면이 보수적이죠?
가정 동성동본 금혼 법 같은 구습은 완전히 넌 센스라고 보거든요.
'서서히 고쳐나가자'고 아니고 당장 뜯어고쳐야 된다고 생각.
말도 안 되는 인권유린 아닙니까? 하지만 제사문화는 꼭 있어야 한다고 봐요.
지금도 전 집안에 제사 있을 때 참석 못하면 무지하게 죄스러운데, 그건
조상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촌들 거기서 밖에 못
봐요. 우린 파티문화가 없잖아요. 제사 없으면 친척들끼리 평생 안 봐요.
그런 점에선 보수적 이예요.
Q: 기타를 처음 잡은 게 언제죠?
중2 때... 누이가 쓰던 게 있어서 만져보긴 했는데 어떻게 소리 내는 건지는
몰랐고. 기타 치던 친국들을 보다가 집에 있는 기타 생각이 났어요. 전자 기타는
살만한 용돈이 모일 때까지 여러 해가 걸렸기 때문에 고 1때 처음 잡았어요.
2만5천원 짜리 였는데 2만2천원에 깎아서 부모님 몰래 사가지고 벽장 안에
감춰 놓았죠.
Q: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죽였죠. 거의 날라가는 줄 알았어요. 그것만 있으면 엄청나게 잘하게 되는 줄
알았어요. 안고 자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보고. 아침에 나갈 때 벽장에 감추고
나가면서 입맞추고.
Q: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재능이 있었나요?
몇몇 인터뷰에서 제가 사실 음치였다는 얘길 했는데 사람들은 제가 겸손하다거나.
후천적인 재능과 노력을 과시하려는 과장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런데 진짜로
음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국민학교 3학년 때 밴드부에서 클라리넷을
불었거든요. 선생님이 시켜서. 그런데 리더를 시켜 놨더니 중간을 못하는
거예요. 오죽하면 선생님이 우리 엄마를 부르시더니 해철이는 머리도 좋고
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하시고 밴드부는 그만두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셨어요.
누이가 피아노 배우러 다닐 때도 따라다녔는데 바이엘 10장까지 치고 나서
11장으로 넘어가질 않고 다시 1장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럼 나는 왜 또 시키지?
생각하면서 다시 치고. 정말 재능이 없었어요.
Q: 그런데 기타가 그렇게 좋았어요?
그 때는 음악이 별로 좋다는 생각이 없어서. 흥미가 가지 않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변덕이 심한데다 일단 어디로 빠져들기 시작하면 진전을 보는데
흥미가 없으면 중간을 못해요. 좋아하는 과목은 틀리는 일이 없고 싫어하는
과목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예요. 공부를 안하는 것도 아닌데.
Q: 그럼 음악이 좋다, 흥미 있다, 이런 걸 언제 느꼈나요?
국민학생 때 심포니 연주회에 견학간 적이 있었는데 오케스트라 연주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그게 잠재의식에 남아 있다가 음악을 하면서부터 표현되는 거
같아요. 제 곡에서 "꼭 필요하다. 절제 해야 된다"는 것만 빼고는 대체로 사운드를
확 벌려 놓잖아요. 그게 그 때의 영향인 것 같아요. 디스코를 처음 들었을 때도
신기했죠. 클라리넷으로 디스코를 불다가 혼나고. 워크맨 끼고 빌보드 차트
줄줄 외기 시작했죠. 그런데 역사적인 사건은 (제 음악사에서 그건 정말
역사적인 사건인데) 중 1때 집에 오는 길이었는데 웬 버스 안에서 FM 방송을
틀어놨지 뭐에요? Scorpions 하고Deep Purple 이 연속적으로 나왔어요.
Scorpions 는 그게 Black Out 이었고 Deep Purple 은 Highway Star 였어요.
충격을 어느 정도 받았느냐. 사흘을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어요. 레코드
가게로 뛰어가서 판을 샀는데 그게 이라는 Deep Purple 의 베스트 앨범이었으니
얼마나 알짜였겠어요? 그걸 듣고 완전히 혼이 빠져버렸어요. 그래서 헤비메탈에
빠졌고 테크노 사운드. 프로그레시브를 들었죠. 그래도 헤비메탈 만큼 충격적이진
않았어요. 그건 장르의 우월함이 아니라 순서의 차이였던 거 같아요. 지금도
헤비메탈에 가까운 음악을 주종으로 하는 것이 그때의 영향인 것 같고
Q: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뮤지션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부모님은 제가 법이나 외교관쪽으로 가주기를 바랐고 저도 제 꿈은
변호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운동선수로 치자면 강력한 프로야구 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거 였죠. 육상선수가
아니라 야구단 의 일원. 혼자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밴드의 일원.
멤버가 되는 것. 마피아의 조직원 같이.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게 대단한
로맨스였어요. 저 역시 그게 되고 싶어 했던 거 같은데...
Q: 그렇게 기타를 좋아했는데, 지금 포지션이 기타가 아니라 키보드인 이유는 뭔가요
?
솔로1집을 만들면서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키보드를 잡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 땐 컴퓨터 없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빠른 시일 내에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션맨들을 끌어 모으는 것보다 컴퓨터로 작업해야
했거든요. 다른 방법은 없었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음악적으로 빨리 발전하기
못했을 거예요. <무한궤도>에서는 최소한의 가능성 이외에 제가 보여준 게
없었는데 그 이후 제가 생각해도 장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겁지겁 주위의 지식들을 흡수할 때였는데 그러다 보니 키보드를 만지게
된 거죠. 솔로 1집까지는 제가 그래도 기타를 잡았어요. 훌륭한 플레이어가 될
수 없었던 건 신체적인 결함 때문인데. 손에서 땀이 많이 나요. 기타를 잡기 힘들
정도로 땀이 엄청 흐르거든요.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씩 연습 하다가 요번
앨범에서 기타를 쳤더니 세황이가 위로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2류밴드에서
기타 치는 애들 보다 형이 훨씬 나요' 그래요. 그래도 1류밴드 만큼 친다는 소리는
안 하대.
Q: 팀웍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던데?
밴드에서 팀웍이야 말로 밴드의 시작이고 끝이죠. 제가 악기를 닥치는 대로
다루는 것도 플레이어로서의 재능보다 지휘자로서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예요.
실제 연주는 떨어지지만 내가 할 수 있다는 걸로 상대를 끌어 줄 수 있거든요.
고등학교 때 밴드에서도 전 세컨기타였고 리드기타는 따로 있었어요. 그럼 나는
뭐예요. 없어도 되는 애 아니예요. 그런데 리더는 저예요. 그런 우스운
상황이었어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유형의 것을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무형의 것을 컨트롤 해야 하는 거죠. 밴드의 사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데 때로는
카리스마적인 방식이 효과가 있지만 잘못했을 때는 자존심 던지고 '내 실수'라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죠. 멤버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팀웍이 흐트러져 있을 때는
아무리 환경이 좋고 훌륭한 곳에서 연주해도 리듬이 맞지를 않아요. 밴드의 매력이
뭔 줄 아세요? 개개인의 역량을 합친 합이 밴드 전체로 보면 무한대가 되는 거예요.
백의 역량을 가진 멤버가 네 명이 모이면 5백은 당연지사고 2천. 3천으로 뛸 수
있는 게 밴드예요. 그렇게 되려면 팀웍으로 조화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최고의 연주자로 이루어진 밴드가 최고의 밴드인가요? 아니거든요. 2류 연주자들이
모인 경우라도 팀윅이 강하면 실력은 무한대가 돼죠.
Q: 밴드에서 카리스마적인 역할도 하신다니, 그럼 싸움 잘 하세요?
거의 못해요. 폭력으로 대해본 일이 거의 없고 때려본 기억은 한번도 없어요.
상대가 약한 걸 뻔히 알면서 때리는 것은 비열한 일이죠. 학교 다닐 때 전 팔도
짧고 키도 작고. 누가 퍽 때리면 맞았어요.
Q: 정신적인 폭력도 있잖아요?
같이 연주하다 보면 신경질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요. 마음은 천리만리를 가는데
멤버들은 내 맘같이 안 따라와 주니깐. 이엔 연습실에서 기타 내던지고 신경질
내는 게 밴드를 컨트롤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무한궤도> 때부터 그 버릇을
없앴어요. 각성을 한 거죠. 그 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고. 연주자가
안돼면 다른 방법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성질 내고 왜 안돼?다그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모두 다 배워가는 과정인데. 지금도 작년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너 참
못됐었다' 그러는데 내년 되면 지금 나에 대해 또 그렇겠죠. 멤버들도 내가 성질
내고 의견 강하게 주장해도 뒤돌아 서면 반성하고 노력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밴드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주장하는 거지 개인적 욕심으로 하는 거 없으니까요.
내가 아무리 이게 맞다고 해도 다른 멤버들이 아니다라고 하면 아닌 거예요.
서로 존경심을 갖고 권위를 실어주면 인정하게 되는 거죠.
Q: 신해철은 추종자와 비판자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 중간이 없어. 그렇죠?
네.
Q: 그래서 전 신해철 씨가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타협 없는
독불장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보기 그렇지도 않은데요?
전 대인관계가 지극히 원만한 애예요.
Q: 그럼 사람들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은 저의 결과만을 보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
사람들은 저보고 스테이지 매너가 익어 있는 애라고 했어요. 무대 위에 처음선
사람이 겁이 없다는 거죠. 그런데 전 무대 뒤에서 엄청나게 떨었어요. 다리를
잡고 있어야 할 정도로.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결과만 보고 얘기 하는 거죠.
제가 어떤 주장을 하면 상대방은 '저 사람은 반론을 했다가는 당장 뭔가
날아올 사람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버려요. 하지만 저도 주장을 하기 전에
두려움도 있고 갈등도 있고 소심한 구석도 있어요.
멤버들도 처음에 제가 '이거 아니야'하면 절대로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걸로 보였대요. 트러블 몇 번 겪고 난 다음부터 멤버들이 알죠. 제가
'(강한 어조로) 그거잖아!' 그랬을 때 누군가 '아닌데?' 그러면 저는
'(작은 목소리로) 그래. 아니야?' 이렇게 되버리는 경우도 많거든요. 제 주장이
강하고 그게 단점이라는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반론에 대해
닫혀있지는 않거든요. 그 걸로 제 단점이 상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이 미리 반론을 포기해 버리면 전 할 말이 없는 거죠.
Q: 신해철의 음악을 듣다 보면 사회전반에 대해 다양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느껴져요. 그리고 신해철이라는 사람이 그 문제들을 제기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중음악계가 이런 식으로 흘러간 다면 나는 저런 식으로
가야지 그나마 밸런스가 잡히겠다. 이런 엉뚱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지금 내가 이런 역할을 해줘야만 후배들이 움직일 수 있을 거야. 같은
말도 안 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요. 저를 위선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음악을 그런 사명감으로 만드는 건 아니 예요. 만들어진 걸 가지고
기왕이면 최소한의 의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거죠.
그런 사명감마저 없으면 이전에 했던.순수했던 음악을 배신하는 거 같아 너무
싫어요. 그렇다고 목적의식이 창작욕구보다 앞서는 건 아니 예요. 내용성을
담기 위해 만드는 건 팔아먹으려고 만드는 상업적인 거보다 더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만. 내용만으로 만드는 건 창작
자체를 무시하는 거예요. 음악하는 이유가 없어요. 제가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컨셉트 앨범을 만드는 건 저한테 가장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찾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뿐 이예요.
Q: 그런 점들이 잘난 척 한다는 느낌을 줄 거라고 생각하진 않나요?
많이 줄 거 같아요.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제가 진짜로
잘난 척 하는 부분이 있어. 흠흠흠. 반성해야 겠죠.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이 들지 않았는지. 근데 외국의 뮤지션들은
잘난 척 얼마나 합니까? 대중은 그걸 즐기거든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꺼리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이 떠드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런 생각도
있어요. 만약 거기에 인위적인 게 있었다면 얕보이기 싫어서 였을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지나친 아티스트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초창기에는 대중 스스로 대중음악을 천시한다는데 대해 분노했어요. 저는 소위
명문대에 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넌 대학 때문에 쳐준다' 그런 인식이
있었는데 오히려 반항심만 생겼어요. '나 연주 더럽게 못하잖아. 대학생이니까
잘한다고?' 웃기죠. 대중음악 하는 애들도 머리 빈 것 아니다. 할 말은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도 사실 인터뷰 많이 하고 말 많은 게 뮤지션한테
좋은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음악하는 애는 음악으로 보여줘야지 말이 많은 건
좋은 게 아니거든요. 개인적인 이미지로는 좋지 않은데. 대중음악 하는 사람 중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정말 없어요. 딴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면 난 잘난 척
하면서 '음씬 말로 하나 보지?' 하고 폼을 잡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까
'에이. 그럼 내가 얘기 할께' 그렇게 돼요.
Q: 그럼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잘난 척할 기회를 좀 드릴께요.
(세상이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은 당연하니까
넘어가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원하는 세상이나 메시지는 하나밖에 없어요. 휴머니즘으로 귀착돼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어둠을 얘기하면
밝음이 두드러지죠. 결국 그건 밝음을 이야기하는 것 이에요. 제가 라디오 방송
진행하는 걸 듣고 팬들이 많이 실망해요. 전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중도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런 애일 뿐이 예요. 그 사람들이 원하는 히어로도 아니고
'사회를 뒤덮어!'라는 파격분자도 아니고. 그러나 중도라는 게 이쪽에 플러스
백이 있고 저쪽에 마이너스 백이 있어 영이 되는 것이 균형 있는 것이지. 영들만
쭉 늘어서 영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는 그저 영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아를 실현할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면서 살아요. 넥스트 팬이라는 집단의
정서가 뭔지 아세요? 서태지의 정서가 낙오자. nothing no lose 였다면 우리는
비겁자 정서거든요. 잃을 게 알량하나마 있는 거예요. 다 가져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고. nothing to lose 라서 밑질 것도 없다 도 아니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조금만 더 하면 이 사회 지배계층의 꼬리라도 잡고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제공되어 있는 사람들 이예요. 근데 그 길로 가긴 또 싫은
거야. 싫은데 과감하게 아니다. 라고 말할 용기는 아직 없는 거예요. 세상이라는
건 그런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난 이게 좋아'라고 생각하면 그걸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뭐든지 흑백 논리잖아요. 승자 아니면
패자잖아요. 그렇게 자극을 줌으로써 승자를 생산해 낸다는 것은 패자 역시 동시에
생산해 내는 거거든요. 이건 인권 유린이고 넌 센스예요. 고3 학생들한테
대학입시에 떨어지면 인생 낙오자요. 패배자라는 논리를 가르치는 건 '스승'이란
이름이 부끄러운 행위. 부모도 그런 논리로 자식들을 가르치려면 부모하지 말아야
돼요. 많은 애들이 그렇게 시달리면서 살이요. 뒤떨어진 사람을 안 떨어지게 끌고
나가자는 분위기 여야지 경쟁해서 딴사람을 누르자는 게 사회의 논리가 되어서는
안되잖아요. 다른 사람을 밟고 가는 게 아니라 떨어진 사람을 끌고 가는 게 사람
아니겠어요?
Q: 신해철 씨에게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전혀 아니 예요.
Q: 그럼 천재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죠?
천재라고 불리려면 자기 힘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차르트 만큼 음악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그 시대에 어딘가 한둘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작품이 남은 건 모차르트 한 사람 밖에 없거든요. 후배들한테 이런 얘기를 가끔
해요. '우리는 황혼이 지는 절벽 위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있는 자와 같다.
그래서 당장 굴러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위험하고 위태위태하고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인생 전체가 파탄 날 위험도 감수해야
되는 놈들이다...물구나무 서기는 자세가 아름다우려면 재주가 있어야 하고.
벼랑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능력도 있어야 되지만. 그러나 그 시점에서 말해서
지면서 석양이 백그라운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결코 빛나지 않는다.' 운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미친 짓 하는 거죠. 돌아오는 건 조소하고 멸시밖에
없어요. 천재란 하늘이 내린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시운을 만나 야죠. 재능은 주위의 환경에 의해 뒤틀릴 수 있거든요. 천재라고 불리
우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고 공부하지 않아도 시대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하나의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라
역사 전체를 뒤바뀌 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천재라고 생각해요. 매스컴에서
서태지나 저에 대해 가끔 천재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천재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두셋 있었을까 지금은 없는 것
아닐까요? 사회 자체가 천재를 만들어내기 힘든 사회로 가고 있지 않나요? 점점
분업화 될 음악을 한 손에 쥐고 전체를 휘두를 만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예전만한 천재가 나오기 힘들죠. 글쎄요. 외국의 케이스도 그렇고 정말 하늘이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설마 이런 게 나올 수 있을까. 이정도로 경악이 들어야
그게 천재죠. 사람들이 저에 대해 가끔 말도 안는 과찬을 붙여주는 이유는 제가
연구하고 노력하는 시간을 못 보기 때문 이에요. 옆에서 봤다면 '그렇게 하고도
그것밖에 안나 오냐?' 그러지 설마 그런 단어를 쓰겠어요? 전 오히려 천재보다는
오래 살면서 늦게까지 음악을 하는 게 꿈 이에요. 천재란 서른 이전에 천분을
다 발휘하고 일찍 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천재적인 재능을 확 발휘하고 간 모차르트가 아니고 베토벤 같이 자근자근 밀고
나가는 타이프거든요. 예술가로서 존경스러운 사람들은 만년에 한방 터트리고
가는 사람 이에요. '만년의 거장' 혹시 나중에 제가 그런 찬사를 받을 영광이
있다면 제 평생 들은 수식어 중에서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저의 꿈이기도
하고.
Q: 음악 듣다가 눈물 나게 감동한 경험이 있으세요?
많죠. 고2 때 집안형편이 조금 풀리면서 어머니께서 공부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오디오를 처음 사줬어요. 어릴 때는 잘 살아서 마란쯔오디오가
굴러다녔는데 그때는 불행 이도 음악을 몰라 손도 대본 적이 없었고 나중에
오디오가 그렇게 필요했는데 살 수가 없었죠. 그 때는 빽 판이 너무나 필요한
시기였어요. 6백원 짜리 빽 판이 우리나라의 많은 프로 뮤지션들을 만들었어요.
오디오를 사고 나서야 빽 판을 구해서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목말라 하던 음악이 한꺼번에 도서실 가지 전에 잠깐 헤드폰 끼고 들었죠.
잠깐 들으면서 '이런 게 있다니!' 그러면서 울고. 그런데 지금은 음악을 들으면
분석하게 되거든요. '얼씨구 마이크를 이걸 댔단 말이야? 이런 방법도 있네?'
음악 전체는 어디 갔어요? 남의 걸 뜯어 듣게 돼요. 그러면 못 느끼죠. 그 땐
음악의 느낌에만 충실했으니깐 울 수 가 있었죠.
Q: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이죠? 질투 같은 것도 있었을까요?
질투와 찬사와 황홀함과 드디어 찾아냈다는 감격과... 형헌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되어 나와 버려요. 음악을 듣고 싶어서 고등학교 때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음악다방 DJ도 하고 그랬어요. 긴 노래 틀어 놓고 옆에서
녹음하고(집에서 들으려고).내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
그냥 듣는 게 좋아서. 어떻게 든 많이 듣고 싶었어요. 근데 전 원래 눈물이
없어요. 음악 들을 때 말고 울어본 기억이 없어요. 그 땐 음악이 미치게 좋았던
것하고 내 갈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하고 두 가지가 계속 맞물려서 일어났거든요.
변호사가 된다? 애 낳는다? 죽는다? 그 다음은 없잖아?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많은
걸 발견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나이가 아니었어요. 그냥 소시민의 삶이
너무나 싫고 사회적인 성공은 천박해 보이고. 그러다 보니 할게 없더라구요.
음악이 도피처이기도 하고 그래서 음악 할 때만은 자존심을 버리게 되고 소년
시절의 감정을 버리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죠.
Q: 그렇다면 혹시 소시민의 삶을 부러워해본 적 없나요?
자신이 못 가진 건 항상 커보이니까. 가--끔 그리 살았어도 좋았으리라 씁쓸하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사생활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트 클럽 가서도 술 먹고 춤추고 그러고 사는데 아무리 그런 척을
해도 사람들이 나를 익숙해져 있다는 걸 저도 알아요. 신촌 뒷골목을 혼자서
걷는다던가. 이런 일은 힘들거든요. 아무리 소박하게 하고 다녀도 누가 뒤에서
'저거 신해철 아니야' 그러면서 딴지 걸 수도 있는 거고. 일이년 늦게 데뷔해서
보통사람으로서의 즐거움을 조금만 더 볼 수 있었다면. 전 하다못해 미아리,
청량리 가본 기억도 없어요. 선배가 취직했다고 기분내면서 후배들에게 '데리고
가주지'하면 '와와'그러잖아요. 남자들은 그런 거 있어요. 그런데 저만 못 가는
거예요. 얼마나 씁쓸한 대요. 사실 동문회에서는 아무도 저를 연예인으로 생각
안하니까 정말 좋거든요.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그런데서 갈려 버리니까. 신촌
포장마차 가자. 그러면 전 망설이게 되는 거예요. 저 때문에 피해를 본다구요.
불량배들이 시비 걸고. 나 없으면 편하게 노는데. 그런 생각이 들게 돼요.
Q: 누군가가 신해철 씨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실제로 위협을 많이 받아요. 그 사람들은 저에 대해 좌절감 같은 걸 느끼죠.
뮤지션이 아니라 연예인으로 대하는 사람들은요. 음악하는 걸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와서 예쁜 옷 입고. 춤추고. 노는데 왜
우리보다 돈 많이 벌고 여자 애들이 너보고 악악 대고 그러지? 그렇게 생각하죠.
위화감을 느끼겠죠. 재벌은 다 도둑이고 연예인은 다 빽 써서 되는 거고.
이런 인식이 있잖아요. 그건 그런 사람들을 욕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전인 문제예요. 그럴 뻔히 알지만 당장 팔이라도 한쪽 다쳐 버리면 음악
하는데 문제 있으니까 피하게 돼죠.
Q: 신해철에게 음악이란 무엇이죠?
음악을 위해서는 인생이 파탄 나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그렇게는 생각
안해요. 내 인생이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나이 들면서 알게 됐고.
그런 식으로 위험하게 살면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고생 할지도 알겠고 그렇게
해선 안된 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나 어쨌든 음악을 소중한 많은 것들을
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졸업장을 버린 것도 후회는 전혀 없고
일상의 안락함을 포기한 것. 음악 십년 하고도 돈 벌지 못한 것. 백만 장
팔리는 인기가수 못된 것도 정말 후회 없어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인생에서 음악이 전부다'고 생각하는 건 차이가
있어요. 전 모든 걸 다 버릴 수 는 있지만 그러나 음악이 인생의 전부 라고는
생각 안 해요. 주입식 교육과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상적인 삶. 출세해서
성공하는 패턴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미 모든 걸 잃어버린
거잖아요. 그 때는 음악이 도피처이면서 대안이기도 했어요.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대안이에요. 전 아직까지 제가 사는 이유도 몰라요. 인생이란 뭔지.
왜 사는지 모르고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도 죽어봐야 할 거 아이네요.
죽음 다음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그때까지 허송세월 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게 지금의 저한테 음악이에요. 거기에 만족해요.
하고 싶은 일 하지 못하고 다른 일 억지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난 내가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그 일로 밥을 먹을 수 있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전 정말 운이 좋고 잘 풀렸다고 생각해요.
가령 친구들이 '우리 나이에선 네가 제일 출세했다' 그러는데. 나중에 그들이
퇴직금. 연금.의료보험 혜택 받아가며 안정되게 살고 있을 때 나는 부랑자
합숙소에서 같이 누워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얼굴이 팔려 있으면...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삶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뒷일을 알 수 없는
직업이죠. 근데 어차피 그걸 각오하고 했거든요. 저 자신한테 여러 번 물어보고
'그래도 좋다'라고 자신한테 서약하고 한일이니까. 나이가 들어 어떻게 되든
지금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후회는 정말 없을 거고 그걸 십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도 운과. 주위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억세게 운 좋은 놈이죠. 계속 이렇게 좋아하는 거 만들면서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Q: 신해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뭐죠?
자기 자신이죠. 나머지는 다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봉사하는 삶. 희생하는 삶
역시. 평가절하 하자는 게 아니라. 자아가 만족하기 때문 아닌가요? 그 한계를
못 벗어 나는 거죠. '자기자신을 제외한다면'이란 단서가 붙으면 모르겠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무조건 자기 자신이라 생각해요.
인터뷰는 저녁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그는 '코난류의 검투사 기분이 나는'.반지와
팔찌가 붙어 있는 액세서리에 대해 이야기 했고. ('취향하고 딱 맞아요. 주문도
가지 걸어 놨어요'). 부모님을 위해 아이를 가지 싶다는 이야기를 했고 ('부모님께
지은 죄는 그것 하나로 다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음악에 있어 어려운
것이 우수한 것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퍼져 있는 것에 대해 분개했고 ('그러면서도
시내 록밴드 연습실이 비어 있어요. 다들 운동화 끈 매고 춤 연습하러 가니까').
UFO에 대해 이야기했고 ('굉장히 확신해요. 믿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창조한 게
우주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런 얘기
오랜만에 하니까 잘 생각이 안 나네. DNA 합성이 프로이디 상태에서...').
SF 근처에만 가도 너무 좋다 이야기를 했고 ('영화를 보면서 졸다가도 광선총 한번만
나오면 벌떡 일어나요. 으아아 유아적 취향의 극친데...'). 배가 너무너무
고프다더니 생선초밥 대여섯 개만 집어 먹고 젓가락을 내렸다 (최근 그는 체중
감량을 했다. 그 이유일까?) 인터뷰 시작 전에 그는 '질문에 꺼리는 것도 없고
말 못하는 것도 없고 뭐든 다 얘기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라디오 방송을 위해 방송국으로 서둘러 가는 그를 보면 난 또 바보 같은 생각에
잠겼다. '신해철 맞아?' 왜냐하면. 왜냐하면 말이다. 어쩌면 여러분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내 상상한 신해철은 '좀 건방질 거야' '똑똑하다니, 어려운 말만
골라서 하겠지? 과연 다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쉽게 친해지기 어려울 거야.
찬바람이 돌 거야' '음악에 대해 모른다고 무시할지도 몰라' '카리스마.왕자병.황제
'
등등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가 현명한 것은 사살이다. 나머지는 틀렸다.
한번보고 어떻게 알아?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그가 무척 솔직하고
적당히 겸손하며 자신의 재능과 능력에 대해 세상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 어쩌면 독재자의 시대는 갔다.고 그는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영웅은 나폴레옹도 아니고 히틀러도 아니다. 어쩌면 영웅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그는 생각한 지도 모르겠다. 커트 코베인은 영웅이 되지
않으려고 목숨을 끊었고 서태지는 영웅이 버거워 떠났다. 혹자가 신해철을 영웅의
자리에 올려 놓으려고, 또는 혹자가 신해철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리려고 마음대로
찬사하고 비난하는 동안 그는 '음악만 하는 되는 억세게 운 좋은 놈'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사는 거지' 정도로 삶을 생각한다고.말했다. 원고가
넘칠 때 넘치더라도 이 말만은 하자.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떤 길인지 아는 사람은. 시대를 통틀어 드물다. 무척 드물다.
음악으로 길을 찾고 길을 만드는 사람은. 도무지 독재나 강요가 통하지 않는 음악의
아름다운 특성 때문에라도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한다. (이미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제외하고 나를 포함해서) 우리는 신해철을 다시 읽고 느껴야 한다.
글 : 황경신
안광주 (사랑해럽)
[퍼옴] 이대학보 - 신해철 인터뷰. 1998-08-29 21:08 92 line
이대학보 : 신해철 인터뷰
대중문화현실 신해철을 만나
의식있는 아마추어 밴드들이 설 자리가 없고 음악인들이 음악으로만 제 목소리를 내
기엔 수많은 방해물들이 있는 대중음악현실, 그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을 대중음악
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에게 들어보고자 그룹활동과 대학강연 등을 통해 뚜렷한 목
소리를 내고 있는 넥스트의 신해철씨를 만났다.
Q : '댄스에 의존하지 않는 라이브 음악의 발전 도모'를 기치로 '97자유공연에 참여
하는 것으로 아는데,어떤 생각으로 참여하신 겁니까?
A : 댄스도 물론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체육관에 공짜관객 몰아넣고
노래테잎 틀어놓고 TV방송용으로 하는 공연에 반대하면서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역사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대중음악 페스티발 이었기 때문에 참여했어요.
Q : '자유'참가자를 중심으로 모인 대중음악협의회(가칭)에서 제시한 7대 과제 중의
대중음악전용공연장 설립문제를 보면, 설립을 허가하지 않는 것은 대중음악이 말 그
대로 일반인들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데도 보수적인 정부당국을 비롯한 사람들이 겉으
로는 저급으로 취급하는 이중성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A : 대중음악의 생명력은 대중들의 어려움과 즐거움을 항상 함께 해 철저히 저급화
될 때 생기는 것이라고 봐요. 고급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치를 말살시키는 거죠
. 정부가 저급문화라고 지원해주지 않더라도 대중음악인 자력으로 신인가수들이 스타
디움보다는 상설무대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경험해 방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중간규모의 극장을 세울 계획이에요. 정부의 비지원은 '문화적 사업들은 실행
해도 다음 대에서야 나타나기 때문에 이익이 되지않는다'라는 계산에서 나온 듯한데
, 인생의 성공논리만을 내세우고 문화적 토양을 배려해주지 않으면 결국은 난폭한 사
회가 된다고 봐요.
Q : 한편 기획업자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태도는 댄수가수만 양성해 한두 곡으로 상업
적 이윤을얻으려는 '한탕주의'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인해 비판성있는 다양한 장르
의 음악인들이 설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먼저 앨범가격이 낮아 그만큼의 수익이 음악인에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재정
상 열악한 음악인은 재투자할 수 없게 돼요. 넉넉하다면 2-3년에 한 번 내도 될 앨범
을 매년 내고 또 히트곡을 내야하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하고싶은 진지한 음악은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이윤을 포기하고 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돌리려면 자
본결정권을 가져야하기에 넥스트는 기획사'빅뱅'을 자체적으로 차려 락 밴드의 레코
드만 제작하는 부문을 만들고 무명밴드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언더
그라운드(언더) 음악인의 자리가 없는 것은 유통구조상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대중이
언더음악을 찾아듣지 않고 댄스음악만 듣기 때문에 구조가 그에 편승하게 된거죠.
TV앞에서 문화적인 모든 것을 획득하려는 태도보다는 자발적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 : 그렇다면, 수용자 측의 태도가 가장 문제라는 말씀입니까?
A : 수용자측의 태도가 유통업자나 음악하는 사람들의 책임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거죠. 유통구조를 변화시키는 기본적인 힘은 대학주변에서 특이한 가수가 나오거나
하면 공연장을 발로 찾아주는 대중에서 나온다고 봐요. 수용할 수 있는 대학인이나
대중들, 음악인의 분위기가 생기면 라이브 클럽도 활성화돼고 독립음반사도 저절로
생긴다고 봐요.
Q : 방금 말씀하신 것이 최근 대학 강연에서도 대학인의 음악 수용태도가 저항성이
없다고 잠깐 언급하신 것과 연결될 것 같은데요. 그에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
오.
A : 수용자로서의 대학생의 태도는 저항성이 없다기 보다는 개성이 없어요. 개인적
선택이 집단보다 우선한다고 해도 대학가와 고교근처에서 팔리는 안치환과 디제이덕
앨범의 비율이 차이가 없다는 것은 전체로서의 대학생이 자신들만의 음악이나 문화
를 소유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에요.
Q : 신해철씨가 활동하고 있는 넥스트는 락밴드로서는 상당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
기 때문에 자율적인 음악을 창출할 기회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이에 대해
공동의 연대를 형성할 위치에 있다는 주장과 오히려 락 음악계의 위게를 형성해 왔다
는 두 가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락 음악계의 위게라는 말 자체가 넥스트를 오버그라운드(오버)라고 놓고 언더하
고는 대립적 관계로 본다는 말인데 오버와 언더는 대립관계가 아니라 순환관계 라고
봐요. 넥스트는 언더도 오버도 아닌 위치에 있지만, 언더락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면 지극히 팝화된 오버락도 있어야해요. 가령 메탈리카가 언더에서 오버로 진출해 성
공하면 그를 욕하는 언더밴드가 계속나와 락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유기적인 관계로서 공동의 연대가 될 수도 있죠. 락 융성에 방해되는 것은 언더에서
출발해 성공한 오버 락밴드를 나중에야 진정한 락이니 뭐니 하며 칭찬하는 락매니아
들의 그들이 언더였을 때 공연장을 찾아준적도 없으면서 '오버락 밴드는 인정못한다
'라는 배타적인 태도에요.
Q : 마지막으로 기사를 읽을 이화여대생을 비롯한 대학생들에게 하고싶은 말씀은 무
엇입니까?
A : 맘껏 즐기는 것과 막 즐기는 것은 다르다고 봐요. 주체성없는 행태로 문화를 즐
기도록 고3때 미술.음악시간에 자습하고 공연장에 가려면 '공부나 하라'는 등 '문화
예술적 가치라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에 방해되는 것이다'라고 세뇌를 받아왔는데, 대
학생이 됐다고 어느날 문화적 소양이나 비판정신이 생기는 것도 아닐 거에요. 그러니
'대학문화'도 하루아침에 생길 수 없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없어 '술문화'가 지배하
게 된 것이겠지만, 한 가지 방법으로 대학생활을 보낼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고 시도했으면 해요.
취재.정리 : 주수연기자
안광주 (사랑해럽)
[퍼옴] VOGUE - 신해철&김덕수 인터뷰. 1998-08-29 21:13 293 line
VOGUE : 산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보니
사물놀이와 등호로 표현되는 김덕수. 40년 동안을 장구치며 살아온 그에게 남겨진 것
은 무엇일까? 아웃사이더이던 록을 음악의 화두로 부활시킨 신해철 경쟁자가 없다며
넥스트를 해체시킨 후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서로의 정상에서 선배와 후배로 나란
히 선 두 사람
Q : 신해철은 약속 시간보다 20분 일찍 약속 장소인 스튜디오 '난장'에 도착했다. 그
는 텔레비젼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라이브 무대에서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거대하
게만 존재할 것 같은 공룡의 밀랍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긴 머리가 흐트러지는 걸
애써 막으려는 듯, 별다른 몸의 움직임이 없었다. 그에게 느껴 진다는 카리스마는
아마도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에너지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었다.
덕수 : 마지막 믹싱이 끝난 후니까, 한 달 반만에 다시 만난 거지?
Q : 김덕수의 연주 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음반 <미스터 장고>의 녹음엔 신해
철을 포함한 많은 음악인이 참여했다. 이 음반헤서 신해철은 '난장 부기'라는 곡을
김덕수와 함꼐 연주했다. 김덕수는 그레꼬로망형 레슬링 선수처럼 다부진 체구다. 신
들린 듯 장구를 쳐대는 힘은무대를 벗어나서도 쉽게 전달됐다. 이제 30대 문턱으로
접어든 신해철. 그는 보편적인 남자의 정서와 마찬가지로 예쁜 여자를 유난히 좋아한
다. 그래서 그의 대담을 하게 될 상대는 뛰어난 미인이길 기대했었다고 그의 매니저
는 얘기했다. "그런데 어쩌죠? 오늘 만나뵙게 된 분이 뛰어난 미인이 아닌 김덕수 선
생님인데..."
해철 : 천지를 진동시킬 만큼 예쁘지 않다면 선생님 뵙는 게 훨씬 좋죠.
덕수 : 저는 뭐 저희 어머니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머니 같은 여자라면. 여긴 총각이
죠. 저는 애가 둘 있고, 또 파트너가 한 명 더 있구. 해철씨와는 많은 게 다르죠. 아
직 싱글이니까 해철씨는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구.
Q : 예쁜 여자에 대한 후일담처럼 김덕수는 결혼과 가정에서의 책임에 대한 얘기를
던졌다. 한 달여 만에 만난 이들의 대화는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 연인처럼 살갑게 이
어졌다. 신해철은 넥스트 해산 전에 계획한 공연에 대한 얘기를 건넸다.
해철 : 12월 31일 자정에 공연을 마무리하면 좋겠는데 허가가 안 나요. 청소년들이
귀가할 방편이 없다고, 전철 끊기고 어쩌고저쩌고. 대중 교통 다 끊기고 나면 택시가
관객 모두를 나를 방법이 없잖아요.
덕수 : 차라리 밤 열 시쯤 끝내고 헬리콥터 타고 동해로 가서 일출 장면을 보면서 끝
내는 거야. 나는 작년에 5일 밤을 해운대에서 했거든. 바닷가에서 카운트 다운하구.
오는 사람 누구나 다 공짜로 먹게 떡국을 끓여냈지. 재밌게 했는데 금년에 뭘로 하
느냐 문제지. 클래식하구 할까봐.
Q : 음악인이 음반을 만든다는 건 유통이 된다는 뜻. 그만큼 상업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팔리는 판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한 해결은 어디서 구할까?
해철 : 외국에선 선생님 정도로 활동하는 아티스트에 대해 판매고를 안 물어보잖아요
. 우리가 생각하는 명반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5만장 팔렸는데 길이 남는 명반이 될
수 있는 거구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작업은 대중성이나 상업성을 노린, 판매를 위한
작업은 아니거든요.
덕수 : 사이먼 앤 가펑클은 20년도 더 된거야. 지금도 팔려요. 비틀즈도 그렇구. 좋
은 음반은 꾸준히 나가고 사랑을 받거든요. 음악을 두고 대개 순수성, 예술성, 음악
성, 대중성 이런 걸따지거든요. 그런 것들의 결정을 내리는 건 평론가도 아니고 연주
자 스스로도 아니라고 봐요. 그건 관객들이 결정해 주죠. 대중 속에 음악이 있고 예
술이 있는 거지 그걸 분리하는 거는 모순이 있죠. 저 같은 경우는 '전통'자가 앞에
붙어요. 그렇지만 꼭 양복 입고 서양음악만 하고 한복 입고 한국 음악을 해야 할 시
대는 지났거든요. 청바지 입고 장구 못 칠 이유 없고 넥타이 매고 대금 못 불 이유
없어요.
해철 : 우리나라 사람들이 록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거는요, 소위 그 마니아 층이라
고 형성돼 있는 사람들의 관념이라든가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전파하고 있는 생각들
은 음악에 대한 본질을 흐리고 사람들로부터 음악을 분리시켜요. 록의 본질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되거든요. 음악을 들으면 이 음악이 내 가슴을 열어 주는
가, 저 음악이 나를 끌어당기는가... 이런 걸 생각하기 전에 '이건 정통이다, 이건
이단이다'하는 걸 먼저 얘기 하거든요. 우리는 록의 본산지가 아니고 외국에서 발생
한 음악을 받아들였는데 이걸 가지고 왜 우리가 오히려 정통 논쟁을 하고 앉았고 이
게 무슨 짓일까...
덕수 : 결국은 한국이라는 사회가 갖고 있는 전반적 문제예요. 자기 것만이 다예요.
남의 것은 인정을 안 해요.
해철 : 사회나 문화 전반적으로도 그렇고, 정치를 봐도 그래요. 워싱턴 포스트에 뭐
라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에선 이렇게 보도했다 하는 거에 관심을 많이 두죠. 연예
인이나 뭐 이런 사람들이 몇백억씩 돈을 벌었다고 치면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와'하
는, 그냥 경탄의 대상일 뿐이고 자기는 나름대로 직장 생활하며 봉급 가지고 자기 가
족들과 미래를차근차근 가꿔나가죠. 우리는 만일 스포츠 스타나 연예 스타가 돈을 벌
었다고 하면 정치가들이 몇천억씩 착복한 거나 똑같은 관념으로 생각을 하고 '일반인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 얼만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돈을 버는가. 이건 부당하다' 이
렇게들 생각하거 든요. 거기에 딸린 도박과 같은 위험성은 생각하지 않는다는거죠.
자신이 다른 사람과의 탤런트가 틀리고 삶이 틀린데도 꼭 남과 비교를 하죠. 박찬호
가 연봉을 얼마 받았다고 하면 자기 월급으로 나눠봐요. 그걸 벌려면 몇 개월이 걸리
는가, 그쵸? 가령, 김덕수 선생님 같은 대예술가가, 정말 이런 국보급 아티스트가 자
신의 수입이나 판매고를 다른 지금 댄스 뮤직 가수 판매고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우스
운 일이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그런 일을 할려고 하거든요.
덕수 : 결국은 돈을 버는 방법의 차이죠. 자기의 능력, 건전하고 자기의 땀과 혼이
배어 있는 걸로 벌면 누가 뭐라 그래요? 외국을 보면 몇백만 불, 주먹 한 대치면, 복
싱 선수들은 그렇게 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