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데이즈 - 가슴찡한 명대사

대학교때의 일이었는데요,

어느 과목 교수님인가 책을 하나 소개하시면서

'너무 한줄한줄이 소중해서 한꺼번에 읽지도 못하고 매일 두장씩 보고 있다."라고 하셨어요.

당시 그 교수님이 소개했던 책이 개인적으로는 조또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이문열의 <선택>이었던 지라;;;;

공감은 커녕 코웃음만 팡팡 치다가 이내 잊어버렸는데요,

 

 

요즘, 저 문장을 정말 깊숙히 이해하게 만드는 보석같은 드라마를 하나 보고있습니다.

 

 

아마 많이들 아실거예요. 올해 2/4분기 화제작인 <오렌지 데이즈>.

귀가 들리지 않는 천재 음악소녀 사에(시바사키 코우 분)와

 

<첫장면부터 바이올린을 켜며 등장하시는 천재 음악소녀>
 
 

마음이 따뜻한 남자 카이(츠마부키 사토시 분)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사에와 카이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저 대사도 사실 의미심장하죠.>

 

그들 주변 친구들의 '21세기에 일본에서 젊은이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담백하게 그려낸, 마치 수채화 같은 드라마 입니다.

이 드라마는 2/4분기 상영때부터 화제를 몰고 왔던 히트 드라마이기때문에

'뭘 하다가 지금 봤냐'며 핀잔주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것습니다.

그래요 저 2/4분기때 <홈드라마>봤습니다. 도모토 츠요시때문에 봤다는거은 부인 안하렵니다.

.......그래도 그거 초반에는 재밌었다구요 울컥.

 

 

저는 원래 이런 종류의 스토리를 싫어합니다.

속도도 느리고, 특별한 서사도 갈등도 없고, 특별한 감정의 굴곡도 없이

심리를 중심으로 심심하고 잔잔하게 풀어가는 이야기, 상당히 싫어합니다.

일단 그런얘기에서는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오렌지 데이즈>는 제게는 '재미없는 드라마'로 분류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실 한편 보는 시간이 다른 드라마들보다 길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속도가 느리구나'와 '지루하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렇게 '지루할까 지루할지도'라고 느끼며 한편을 보고

Mr.Children의 엔딩 테마가 딱 터져나오는 시점이면,

제 입에서는 한숨과 함께 한 마디가 흘러나옵니다.

 

 

"너무 좋다......."

 

 

그런 느낌 아시나 모르겠어요.

뒷맛의 여운이 너무 진하고 길게 남아 다음 숟가락을 쉽게 들지 못하는 느낌.

제가 일드 한번 잡으면 아주 재미없지 않는 한 사흘이면 한편 다 봐치우거든요?

'와 이거 환장하게 재밌다'싶으면 앉은자리에서도 다 보고요.

그런에 이 <오렌지 데이즈>는 본지 벌써 3주 가량 되었는데도 다 보지를 못하겠네요.

한편한편의 여운이 너무도 길어 다음 편을 쉽게 잡지를 못하겠어요.

대학때 그 교수님이 말했던, '너무도 소중해 하루에 두장이상을 보지못한다'는 느낌,

이 <오렌지 데이즈>에서 제대로 느끼고 있습니다.

 

<소중하게 기도를.....(대사는 정직 어쩌구구만;;)>

 

 

작가가 누군지 한번 얼굴좀 보고싶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수 있는지 말이죠.

(다시 찾아보니 대단한 양반이군요. 롱바케에 뷰티풀 라이프에 일억개별에;;;)

사실 이런 얘기는 디테일에 힘이 없으면 '조또 지루한'얘기가 되기 십상이거든요.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순간순간 이입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는

그런 섬세한 심리적 장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숨어 있더라구요.

연출이랑 촬영도 뛰어나요. 저는 이렇게 화면이 예쁜 일드는 처음 봤거든요.

미장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드에서 그런걸 본 건 이 드라마가 처음인거 같아요.

1회 첫장면에서 '나는 회사원과 아이의 중간지점에 있다'라는 대사가 나오면서

면접을 보고 나와 지하철역에 서있는 츠마부키 사토시 양 옆으로

회사원 아저씨와 대학생 아이들이 서있는 장면에서부터 저는 완전 뻑 가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최고로 꼽는 것은 대사들입니다.

한편에 하나씩은 꼭 그렇게 사람 감수성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대사들이 출현해 주시는데요,

특히 시바사키 코우 대사에 그런게 많이 있습니다.

이 언니는 청각장애인으로 등장하는 만치 모든 대사가 다 수화인데요,

그녀는 원래는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에 피아니스트였던지라

청각을 잃었다는 것에 더 상실감이 큰 역할을 하고 있죠,

시바사키 코우는 주로 <배틀 로얄>이나 <착신아리>등에 주로 출연하셨던 호러틱한 미인입니다만

이 드라마에서는, 물론 외모답게 콧대높고 도도한 캐릭터이긴 하지만,

손짓만으로 사람을 질질 울리는 감동적인 대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착신아리에서의 시바사키 코우 입니다>

 

대표적인거 몇개만 들어보죠.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거라 아마 정확하지는 않을겁니다. 뉘앙스를 중심으로 보아주세요.

 

 

"아직 귀가 안들리고 나서 4년이자나? 근데 아직도 적응이 안돼.
 이렇게 새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상한게 아니라 거꾸로 새가 이상한것 같은 기분이 들어
 왜 안우는거야?  목소리를 어디다 두고 온거니?
 사실 목소리를 두고 온건 나 자신이면서...."

 

<위의 대사를 말하는 장면입니다>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도 있잖아. 왜 그런데 하필 나야?"
 (이걸 수화로 합니다. 울면서.....)

 

"그런 사람이 좋아. 언제나 내 옆에 있고,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울고, 나보다 5초정도 먼저 웃어주고......"

 

 

이런, 드라마를 볼때는 전부 코끝 시큰한 대사들이었는데.....

 

 

 

무엇보다 지금 7편까지 보면서 가장 가슴을 두들겨 맞은 듯한 대사는 바로

7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시바사키 코우와 츠마부키 사토시의 대사였습니다.

시바사키 코우, 즉 사에는 줄리어드 유학당시 동경하던 선배를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는 데요,

이 선배는 사실 사에가 짝사랑하던 사람으로서, 사에에게는 첫사랑이죠.

그는 사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며 남자로서 접근을 하고

사에는 청각을 잃은 이후 처음 남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데다가

워낙 옛날부터 동경하던 선배라 들뜬 마음으로 그 남자와 데이트를 합니다.

카이(츠마부키 사토시)는 질투하긴 하지만 그녀가 기쁘다면 그러고마고 내버려 두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이 선배는 사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에의 특수성, 즉 '귀가 안들리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상품성을 보고 그녀에게 접근한거예요.

그의 태도에 상처받은 사에는 데이트하던 곳에서 뛰어나와

핸드폰으로 카이에게 '만나고 싶어'라고 문자를 보내지만,

그 문자를 보내자 마자 배터리가 닳아 버립니다.

그러나 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사에와 카이는 우연, 내지는 운명처럼 마주치고....

그곳에서 사에는 카이에게 고백합니다.

 

 

"계속,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어.

 짝사랑이었지만 그래도 딱 하나의 사랑이었거든.

 이렇게, 오른손에 꼭 쥐고 계속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어.

 그런데 다시 오른손을 펴보니,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텅 비어있었어."

 

 

그러니. 카이가 엷게 미소를 띠고 대답합니다.

 

 

"왼손을 펴봐.

 

 

 거기에 내가 있을거야."

 

 

 

어떡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얼른 8편을 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7편 마지막 장면의 이 여운이 사라져버릴것만 같거든요.


 

<사실 이건 1편이지롱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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