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을 보는시각 - 정석원..

대중음악을 보는시각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 정석원, 김탁환 대담

-대중음악가의 사회학적, 존재론적 자리, 대중음악 비평가와 대중음악가와의 관계, 규제의 문제, 80년대 음악이 90년대 음악에 미친 영향 등을 포괄적이면서도 치밀하게 따진 뜻깊은 자리


대중가수가 당신들의 북인가

김탁환: 반갑습니다.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라는 주제로 대중음악 전반에 걸쳐 깊고 넓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동안 대중가수로 활동하시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대중음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해볼까요?

정석원: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보셨어요?

김탁환: 예, 봤습니다.

정석원: 거기 보면 문성근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정선경이 물으니까, '그건 진실이죠'라고 그러더군요.

김탁환: 어떻게 가수가 되셨어요?

정석원: 단지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어요. 이 사회의 산재하는 구조적 모순, 뭐 이런 걸 얘기하기 위해서가 절대 아닙니다.

김탁환: 대학은 공대를 나오셨죠? 대학 들어올 때부터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정석원: 네. 원래 중학교 때부터 제 꿈은 뮤지션이 되는 거였어요. 대학교 2학년때 동문 선배님이랑 술을 마시는데 동문 선배님이 네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제 꿈은 락뮤지션이 되는 겁니다라고 하니까 선배님이 환상을 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아직 뭐가 환상이고 뭐가 현실인지 잘 모르겠어요.

김탁환: 가수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정석원: 저는 아직 가수는 아니죠. 노래도 안했잖아요.

김탁환: 2집에 실린 노래들 중에서 '4210301', '사람들은 말하지'는 직접 불렀잖아요?

정석원: 그 두 곡만 한거죠. 그건 김탁환씨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요새 얼마나 과학이 발달했는데요.(웃음)

김탁환: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이번에 5집 앨범의 첫 곡 '바보들의 세상'에서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흘러나오더군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이고 순수는 무엇인가 연예인들이 당신들의 북인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게 되셨죠?

정석원: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불허됐잖아요? 그때 불허한 사람들이 주장한 게 외화낭비와 청소년들 정서에 안 좋다는 거였어요. 청소년의 정서에 좋고 나쁘고를 누가 평가를 한단 말인가? 누가 그딴 걸 자기들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걸 생각한 거죠. 가수가 머리카락을 길렀다고 TV에 출연도 못하는 세상 아닙니까? 정말 부도덕하고 더러운 자들이 누군데. 특히 메탈음악을 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데, 같이 음악을 해보면 진짜 메탈을 하는, 길게 머리를 늘어뜨리고 으아악 소리를 지르는 그런 사람이 의외로 더 순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진지한 법이죠.

김탁환: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가수들이 비난을 받는 일이 많은데요...

정석원: 예를 들면 어떤 경우죠?

김탁환: '신인류의 사랑'이라는 노래도 여자를 상품화하여 팔아먹는다며 여대 교수님들과 여성운동 단체로부터 꽤 비난을 받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석원: 작년에 나온 노래 중에서 가장 질이 안 좋은 노래를 뽑을 때 '신인류의 사랑'을 뽑는다고 하더군요. '반드시 여자는 예뻐야 된다'는 그런 생각이 옳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과 이상을 구별해야 된다는 거죠. 남들 앞에서 도덕을 부르짖고 깨끗한 척 하는 검사님들 교수님들도 밤에는 룸싸롱에 가서 놀고, 그런 사람들이 마광수를 집어넣는 것 아닌가요? 뒤에서 세컨드를 거느리고 뭐하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차라리 나는 예쁜 여자가 좋다고 솔직히 말하는 사람이 더 떳떳하고 용기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과연 그 노래를 비판하는 남자들 중에 예쁜 여자를 안 좋아하는 남자가 있을까요. 예쁘다 안 예쁘다고 하는 자체가 형이하학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015B가 비판하는 내용을 보고 그런 말을 해요. 사회를 비판하려면 수준 높게 비판하지, 형이하학적이고 1차원적인 걸 가지고 비판을 하느냐고. 그런 분들은 형이상학적인 세계에서 살아가면 되지만, 현실은 현실이죠. 아무리 철학자들이 어려운 단어와 사람들이 이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단어로 사를 분석해봤자 그 분석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김탁환: 정당하다는 말이군요.

정석원: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죠. 현실과 진실을 인정하자는 겁니다. 인정하면서부터 발전이 더 있는 거지요. 예를 들어 '아주 오래된 연인들' 가사를 보고 사람들이, 이건 말이 안된다, 어떻게 순수한 사랑을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순수한 사랑은그렇지않다고 주장하며 계속 환상속에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발전할 생각을 하자는 거죠.

김탁환: 심오하네요.(웃음)

정석원: 전혀 심오하지 않아요.(웃음) 015B가 이야기하는 모든 기본은 진실이예요. 우리는 진실을 단지 이야기할 뿐이고 그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김탁환: 규제의 문제는 대중음악 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케이블 TV 시대로 들어가면 더 많은 가수들이 필요하고 음반도 더 많이 나오게 될건데 규제에 대해서 어떤 식의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규제는 전부 철폐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석원: 물론입니다. 우리가 국민학교 때 '호랑이 선생님'을 봤을 때 '저게 바로 우리의 생활이야', '우리는 저렇게 살고 있지'라거나, 고등학교때 고교생 일기'를 봤을 때 '저게 우리의 고등학교 생활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대중을 바보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 살인하자!'라는 주제를 외친다고 그 말에 박수를 보낼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대중들도 그런 걸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학벌이 좀 높고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중을 바보로 아는 거죠. 이런 건 우리가 막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만이 우리나라 대중문화계를 살릴 수 있다, 저런 놈들이 나오면 어쩌고 저쩌고......

김탁환: 규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옛날에는 사회비판적인 부분들에 대한 규제가 많았는데, 요즘은 도덕적인 단죄들이 많죠.

정석원: 모르겠어요, 정말! 그런 노래들로 인해서 사회가 피폐되고 완전히 망하는 정도에 이를까봐 걱정해서 규제를 하는 걸텐데. 저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김탁환: 문화체육부 장관님은 국민들이 가곡과 민요만 부르기를 바라시는지도 모르죠.

정석원: 전철 한 번도 안 타본 사람이 우리나라 교통문제를 해결한다고 앉아 있듯이 진짜 대중예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지금 현실이 뭔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정책을 결정하는 것 아닐까요? 심의에서 노래를 규제하는 사유들을 보면 정말 우습지도 않아요. 저희 같은 경우에 '교통코리아'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원래 제목은 '교통천국코리아'였는데, 곡의 전반부에 우리나라 교통에 대한 욕을 해놓고 중간에 '교통천국코리아'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근데 규제 사유가 뭔지 아세요? 앞에 욕을 다해놓고 왜 '교통천국'이냐는 거예요.(웃음) 반어법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교통전쟁코리아'라고 바꿔서 심의를 냈더니 통과했어요. 이런 것들이 우리
나라의 심의 현실이죠.

김탁환: 그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습니다.

정석원: 제가 여기서 말한 말들을 또 심의하시는 분들이 보고 015B, 다음에 심의 들어오면 한 번 보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죠? 저는 정말 법같은 것 모르고 경제학도 모르지만 분명 우리나라 법에는 그런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않나요? 표현의 자유가 있잖아요. 잘은 모르지만 헌법에 위배되는 법은 위헌이라고 판정나잖아요. 심의 같은 것도 그런 식으로 재판하면 분명 위헌에 걸릴 일 아닌가요?

김탁환: 재판하는 사람 나름이겠죠

정석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곡은 우리 방송국에서 방송 못하겠다고 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말이라는 겁니다. 판을 내놓는 건 내 자유고 트는 건 그쪽 자유니까, 그쪽에서 이건 방송 불가다, 하는 건 아무 말하고 싶지 않지만, 판을 내기 전부터 심의를 받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됩니다.

김탁환: 20년 전만 해도 대중음악이라고 해봤자 뽕짝류가 주류였고 음반시장도 작았는데, 지금은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사오십만 권 정도 팔리는데, 음반은 백만 장 넘어가는게 한 해에 몇 개씩 꼭 터집니다. 이에 따라 대중가수의 역할도 많이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자 아줌마 세대하고 지금하고는 엄청난 격차가 있으니까요. 대중가수의 역할에 변화가 있다면요?

정석원: 나폴레옹이 나의 역사 속의 역할은 이런 거고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여 역사책에 이렇게 남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여 행동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의 똑똑하신 비평가 분들을 보면 영화감도이나 영화배우, 대중음악가들이 모두 철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요. 가수들이 역사 속에서 이러이러한 임무를 잘해줘야 되는데 너희들은 거기서 무엇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고 묻거든요. 제 생각은 그래요. 왜 내가 그런걸 미리 자각해야 될까. 나는 내가 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죠. 어떤 화가가 빨간색을 칠했는데 여기다 왜 빨간색을 칠했는지 묻는다면, 그 화가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죠. 여기다 빨간색을 칠한 것은 이러이러한 생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라는 것은 단지 그 그림을 평하면서 먹고 살아야 되는 비평가들이 하는 말일 뿐이죠. 그 빨간색을 칠한 화가는 단지 그때까지 자라온 환경과 배운 경험과 모든 게 압축되어 거기에 빨간색을 넣은 것 뿐이거든요. 음악도 그런 거죠. 저 같은 경우에 지금 이 사회에 살고 있고, 이 사회에서 교육받고, 그 교육에 근거하여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 배경을 가진 내가 음반을 내는 거고, 내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나중에 이야기된다고 봐요.

김탁환: 그래도 대중가수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생각은 있을 것 아닙니까?

정석원: 대중가수의 역할이라기보다 사람으로서의 역할이라고나 할까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김탁환: 그냥 음악으로만 말한다, 그건가요?

정석원: 그렇죠. 음악에서 이 부분에 왜 이런 걸 넣었느냐고 묻는다면 만든 사람 중에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제 생각에는 아무도 없다고 봐요. 무슨의미를 부여해서 설명을 한다면 도리어 가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속에 모든 게 들어 있는 거죠.

김탁환: 요즘 대중음악 비평가라고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글을 쓰는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석원: 일단 먹고 살 일이 참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제 생각에는, 사회구조적인 분석만 너무 내세우거든요. 이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사람들이 여기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은 아티스트들한테 너무나 많은 걸 바라잖아요? 물론 어떤 철학이 있는 양 얘기하는 아티스트들도 있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과 일관성이 있지만, 예술가는 그냥 자신을 표현하는 거죠. 대중문화 비평가에 있어서 불만이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에 나와있는 영화와 음악에 대한 비평, 그런 류의 비평들도 나름대로 필요하다고는 보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그런 종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바라는 건, 전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인터뷰 자리에 가서 당신들의 사상에 가장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누구입니까, 뭐는 누구입니까 등의 물음에 답하기보다는 우리는녹음할 때 이런이런 기재를 썼고 이런 기계에서 이런 사운드를 내기 위해 이런 것을 했다고 말하고 싶고, 비평에서도 그런 종류의 비평들을 해주는 잡지가 있어준다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는 음악잡지가 딱 두 종류잖아요. 중고등학생들이 보는 '015B 인기폭발'(웃음) 이런 잡지들 아니면, 그들의 역할은 자본주의에 뭐해서 어쩌고 저쩌고하는 그런 종류의 잡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음악인으로서 제가 아까 전혀 필요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런 종류의 비평만 있어서는 대중음악을 직접 만들고 부르는 아티스트들에게는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김탁환: 정석원씨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지만, 오래 전에 정태춘씨와 논쟁을 벌이지 않았습니까?

정석원: 신문사에서 이런 말이 돌았다는군요, 얘는 서울대 다니는 놈이 글을 이 정도밖에 못 쓰냐고. 정태춘씨 것 보라고 얼마나 잘 썼냐고. 음악하는 사람이 왜 글을 잘 써야 되죠?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태춘씨가 TV에 나와서 샘플링 음악이란 이러이러해서 안 좋다고 얘기할 때 저 사람이 과연 샘플러를 한 번이라도 써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단하게 말해, 서로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거죠. 정태춘씨가 볼 때는 음악에는 그 이면에 아주 훌륭한 철학이 있어야 되고 사회발전에 기여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거죠. 정태춘씨가 우리 015B의 음악을 보고 저런 건 쓰레기같은 음악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음악이라면 이러이러한 사운드가 있어야 되고 이러이러한 류의 음악적인 게 있어야 된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할 때 정태춘씨의 음악은 음악으로 치질 않습니다. 유물론자랑 종교 가진 사람이랑 둘이 얘기하면 평생선이잖아요? 그런 거죠.

김탁환: 자기의 감정을 토로하는 시인들이 한쪽에 있고, 또 한쪽엔 조작을 해서 가공품을 만들어내는 시인들이 있는 법이니까요. 정태춘씨는 전자의 입장에 아주 굳건하게 서 있는 것 같고, 요즘 나오고 있는 젊은 가수들은 대부분 전자는 아닌 것 같고 후자의 입장으로 샘플링도 하고 여러가지 기교들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때 그 논쟁에서는 그걸 이런 차이로 보지 않고 이념 혹은 시대정신의 차이, 즉 대중가요에도 시대정신이 있어야 되느냐 없어도 되느냐는 식으로 몰고 갔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석원: 꼭 가사에 그런 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단어를 넣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가수 축에 못 끼는 거죠.

김탁환: 그래도 철학이 있지 않습니까?

정석원: 책을 많이 읽으시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시는 분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나와야만이 철학적이라고 생각하는 풍토죠. 너희들이 뭘 아느냐, 너희들이 이런책 읽어봤어, 너희들이 이러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알아, 라는 식이죠. 저 같은 경우에 그런 것 같아요. 신념에 대한 혐오라기 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혐오죠. 제 경우에 기독교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을 굉장히 싫어하는 게 배우고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그사람들이 행동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도 분명히 이 나라가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어떤 훌륭한 이념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동조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싫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 같은 것. 우리가 만약 015B 앨범에서 이런 주제로 얘기를 했다면, 수많은 비평가들이 걔네들이 뭘 알어, 걔네들의 계급적 기반이 뭐길래 그런 반동적인 말을 하는 거야 하며 우리를 비난할 겁니다.

김탁환: 그래도 80년대를 뒤돌아보면 운동가요의 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노래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석원: 저도 운동가요를 좋아하고 지금도 음악적으로 훌륭한 노래들이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김탁환: 예를 들면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요?

정석원: '그날이 오면'이라는노래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도 좋아합니다. 저의 유치한 판단으로는 대중음악을 비평하는 사람들 중에서 음악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은 가사밖에 없거든요. 제 판단은 그래요. 컴퓨터로 하든 뭐로 하든 가사가 이런 가사면 이건 이런 가요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가요 중에서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찡한 노래가 많지만 전혀 그런 류의 편곡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잖아요? 그런 가사 속에서 만족하면서 사는 거죠. 얼마나 민중의 심금을 울리느냐는 착각 속에서 말이예요. 대학교를 다닐 때도 그것 때문에 친구들과 많이 싸웠죠. 당신들이 생각하는 민중이나 노동자, 농민들이 과연 '그날이 오면'을 더 좋아하겠느냐, 그 당시 유행하던 박남정 노래를 더 좋아하겠느냐.

김탁환: 문학에서도 그 당시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정석원: 사상이라는 것, 신념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게 아니잖아요? 결국은 사회를 잘 만들어 나가자, 이 말이잖아요. 그러나 그 당시 사회를 잘 만들어 나가기 위한 행동이나 수단들이 너무나 어떤 특정한 틀 속에서만 갇혀 있었다고 봐요. 일종의 소부르조아 의식이죠. 대학생들이 민중들보다 뛰어난 점은 어려운 철학책을 더 읽은 것밖에 없으니까, 익은 것을 표시내기 위해서는 가사도 현학적으로 써야되고, 현학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항상 민중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되고, 민중이라는 말이 안 들어가면 단숨에 반동으로 몰리는 거죠. 제 생각에 사랑이라는 게 결국은 유물론자들이고 관념론자들이고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하는 기본인데도 말이예요. '상상'같은 잡지의 음악평을 읽고 아쉬운 게 있다면, 전문적이고 음악적인 견해가 좀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김탁환: 어떤 식으로 말인가요?

정석원: 예를 들어 똑같은 인터뷰를 하더라도, 외국 인터뷰를 보면 너무 부러운 게 그 사람들도 분명 철학도 얘기해요. 하지만, 당신들 A면 세번째 곡에서는 중간에 기타리프를 평소와는 다르게 5도음윽 썼는데 이것은 당신이 평소에 좋아하던 3도와는 다르다, 왜 이런 걸 했는지 설명해줄 수 있냐라든지, 이번에는 드럼을 녹음할 때 마이크 셋팅을 다르게 한 것 같은데 왜 다르게 했느냐는 질문도 있고, 당신들의 철학적 기반은 이걸로 알고 있는데 이 노래의 몇 번째 줄을 보면 약간은 다른 걸 얘기하고 있다, 이건 모순도니 게 아니냐라든지, 그런 식의 음악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다룹니다. 그런데 요즘 가수들을 비평하는 잡지를 들추어보면 너무 한 방향으로, 단지 사회학적 철학적으로만 음악을 다루잖아요? 그런 것이 너무 아쉽다는 거죠.

김탁환: 그런 역할을 대중평론가, 음악평론가들이 해야 하는데 지금은 부족한 것 같네요.

정석원: 음악비평가들을 비평하자면, 좀 건방진 소리긴 하지만, 기본이 되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과연 어떤 앨범이 어떤 식으로 녹음이 진행되며 어떤 식으로 편곡의 과정이 있고, 이 사람들은 이러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마이크를 어떻게 잡는다든지 이퀄라이저를 어떻게 잡는다든지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 대중음악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에서 015B를 '비난'한 강헌씨 같은 경우도 015B의 겉모습만 보고 가사나 분석해서 수박 겉핥기식의 비판만 합니다. 문학적인 수사학보다는 대중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중가수에 대한 애정이 필요한 겁니다.

김탁환: 이번 5집 앨범에 해설서를 끼운 것도 그런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인가요?

정석원: 해설서를 끼운 것은, 우리 말고도 다른 가수들도 겪는 일이지만, 녹음이라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거든요. 비전문적인 사람들이 한두 번 듣고는 만든 사람들의 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너무나 쉽게 말해 버리잖아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예전에 표절시비에도 많이 올랐었는데, 기껏 애써서 음악 만들어놨더니 표절이라는 거예요. 정말 황당한 것은 알지도 못하는 일본은 누구누구 것을 베꼈다, 지금 표절시비에 올라 있다고 말해지는 거죠. 그 답답하고 속이 뒤집혀지는 것은 말로 할 수 없어요

김탁환: 당대적인 영향관계의 문제가 대중음악계에서도 심각한가 보군요. 패스티시 이야기도 나오고. 소설에서도 베끼기 논쟁이 붙었었죠. 대중문화는 창조냐, 아니면 제작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에 맞닿아 있죠.

정석원: 예술에 뭐뭐가 들어가면 상품이 되고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저는 솔직히 황당함을 많이 느낍니다. 내 경우는 음악이 좋아서 판을 내고 그냥 내 음악을 남들이 들어줬으면 하고 판을 내는 건데, 이게 상품이 됐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니! 이런 양자택일적인 생각을 솔직히 저는 해본 적이 없어요.
 
김탁환: 어떤 비평가는 나는 밤마다 하얀 순백의 원고지를 앞에 놓고 내가 신(神)이 되어서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거기에 비해서 젊은 작가들은 영향관계를 다 밝히잖아요? 나는 어느어느 책을 읽었고 여기서 어떤어떤 부분들을 가지고 와서 내 소설에 이렇게이렇게 섞었다, 요즘 나오는 대중음악 같은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 심하지 않을까요?

정석원: 제 생각에는, '나는 신(神)이다'라며 글을 쓰는 그 사람이 속으로는 누구 것을 베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 같네요.

김탁환: 그런가요?(웃음)

정석원: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떳떳하고 진실된 사람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영향 관계를 밝힐 만한 여건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나도 분명히 영향받은 사람이 있고, 내가 흉내낸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사회잖아요? 나는 누구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이 사람을 흉내내려고 그랬다고 그러면 '베꼈네! 이 새끼'그러잖아요? 사대주의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인터뷰를 보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데이빗 포스터의 인터뷰를 봐도 나는 필 콜린스를 너무 좋아하고 필 콜린스의 사운드를 맨날 흉내낸다. 내가 곡을 만들 때마다 필 콜린스의 곡이 라디오에서 나오고 그 다음에 내 곡이 나올 때 사람들 이 어떻게 느낄까를 항상 생각한다는 말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게 너무 부러워요. 나는 데이빗 포스터를 흉내냈는데 여러분들 정말 비슷하지 않느냐 들어봐 달라고 할 때, 너 정말 잘흉내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회면 좋겠어요. '새끼! 또 베꼈군', 이런 말 안하고 말이죠.(웃음) 신(神)이 아닌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잖아요? 누구든지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정말 이 사람이 훌륭하다, 이 사람을 본받고 싶다, 이 사람 같이 되고싶다는 사람이 분명히 생기는 거죠.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 겁니다. 그 영향에 대해서 자기 자신이 인정하고 더 솔직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상품, 상업주의, 대중성

김탁환: 정태춘씨의 글을 보면, 정태춘씨는 우리 한국사람들의 가장 적절한 발성법과 고유의 음악 정조를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당연히 강하죠. 그런데 신해철씨나 신승훈씨는 엄격히 말해서 민족주의적인 발상이 없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정석원: 제가 볼 때는 물론 가장 좋다면야 한국의 것을 세계로 알리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만약 두 가지의 선택이 있다면? 어떤 음악을 고집해서 그 음악을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30명이 좋아하면 그 음악은 정말 민족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아까 말씀드린대로 신해철과 015B의 음악을 하면서 그 음악이 백만, 이백만에게 호응을 받으며 외국으로까지 진출한다, 만약 그런 경우가 있을 때, 예가 유치할지 몰라도 어느 게 더 옳은 것인가 하는 데 있어서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김탁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정석원: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단정을 지으려고 하잖아요? 저도 분명히 인정하는 것은 015B의 것에는 한국적인 것이 없다고 누가 비판을 한다면 그건 할 말이 없어요. 왜냐면 저는 개인적으로 국악을 판에 넣고 싶은 생각이 없고 국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비평가는 이런 절 사대주의자나 반민족주의자로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닐까요?
물론 더 똑똑한 사람들이 지금 네가 그런 제국주의에 물든 원인이 1945년 이후에 이러이러한 조건 속에 있는 거고, 그래서 너는 잘못된거라고 말하면 저는 그 사람과의 말싸움에서 이길 순 없지만, 사람의 감정까지도 그렇게 설명을 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서태지를 안 좋아하는 사람보고 왜 싫어하느냐고 물을 때 그냥 싫은 것 아니겠어요?

김탁환: 골치 아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탈식민지 문화에 대한 논의들이 많이 되고 있는데 식민지라고 인정을 하게 되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부 식민지가 되는 거잖아요? 경제적으로도 식민지고 그 위에 있는 우리가 옛날에 배운 식으로 하면, 상부구조도 식민지가 되는 건데 그런 측면, 사회학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그런 측면에서 접근을 해보자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이 바다 건너서 들어온 것인데, 바다 건너서 들어온 것이란 어떤 문화적 침탈이다, 저쪽 대중음악이 우리 대중음악을 집어삼킨거다, 나는 공룡에게 집어삼킨 한 마리 처량한 메뚜기다, 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정석원: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음악이라는 그 자체, 예를 들어 나는 랩이 좋고 흑인들의 사운드가 좋다고 하는데, 그러한 개인의 기호마저 거부하라고 강요하면서 그건 문화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국악을 들어봐라 얼마나 좋으냐고 할 때, 그래도 나는 흑인들의 저음많은 사운드가 정말 좋다고 한다면, 그게 문화제국주의에 침탈당한 불쌍한 한 사람의 이야기일까요? 그런 사람도 된장 좋아하고 김치 좋아하고 밥 좋아하잖아요? 예를 들어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김치를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맛이 있으니까 김치 좋아하고 된장 좋아하는 거죠. 예를 들어 일본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문화는 끝장난다, 그러니까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얼마든지 들어오라고 하고 싶어요. 들어와도 일본 판 팔리는 것하고 우리나라 판 팔리는 건 상대가 안될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이고, 그걸 제국주의적 문화에 깊이 물든 자들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면, 그건 대중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지 자신들의 틀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 밖에는 안되죠. 문화가 유입되는 것에 알레르기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탁환: 영화시장이니 음반시장이니, '시장'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 국산영화는 전부 합쳐도 15%밖에 안되고 헐리우드 영화가 70~80%, 유럽 영화가 10%정도 되는 구성이라고 하거든요. 똑같은 장면을 찍어도 돈 많은 제작사가 이기는 거니까, 헐리우드 거대자본 때문에 우리나라 영화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음반시장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까?

정석원: 팝이랑 가요는 경우가 다르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팝이 팔리는 양은 가요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죠.

김탁환: 우리나라 영화시장이 커져서 세계 7위쯤 되니까 톰 크루즈를 비롯한 값비싼 배우들이 속속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음반시장이 커지면 미국 음반 제작사들이 우리나라의 음반시장을 삼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한국말 배워서 노래할 수는 없지만, 자본이 들어올 수 있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정석원씨가 소속되어 있는 '대영에이브이'를 통채로 사서 미국 주주 밑에 한국 가수들이 판을 내고, 수금액 중에서 80%를 미국으로 가지고 가는 구조도 형성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석원: 영화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또 욕을 얻어 먹을 수 있는 말이지만, 저는 헐리우드 영화를 최고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철학적이고 현학적이고 싶어하는 비평가들이 헐리우드 영화는 비판해 놓고, 뭔지 잘 납득할 수 없는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유럽 영화들은 칭찬하잖아요. 일반 대중이 볼 때, 분명히 미국영화가 훨씬 잘 찍었고 훨씬 재미가 있습니다. 철학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런 재미 속에서 이야기해야만 해요. 솔직히 말해, 사천만 국민 중에 영화를 보면서 정말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어떠한 주제를 강조하려면 영화 자체가 재미있어야 하고 잘 만들어야 되잖아요. 근데 제가 볼 때는 헐리우드 영화는 내용은 제쳐고라도 근본적으로 영화를 너무 잘 찍어요. 일단 찍는 것 자체부터 상대가 안되는데 그것을 무시한 채 내용만 따져서 뭘 하겠어요? 저는 유럽 영화를 정말 혐오하거든요. 무슨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물론 그런 영화가 없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고 분명 그런 영화는 그런 영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겠지만, 저처럼 일반 대중이 볼 때는 재미 없으니까 유럽 영화를 보지 않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일반 대중이 미국영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저 영화를 꼭 봐, 하는 건 절대 아니잖아요? 미국에서 수억 달러를 들여서 만들어도 재미 없는 영화는 안 보거든요. '서편제' 재미있으면 '서편제' 보고, '투캅스' 재미있으면 '투캅스' 보잖아요? 그렇게 재미있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면 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이, 외국에 넘어간다고 걱정을 하지만 넘어갈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 정서를 우리가 더 잘 아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더 좋아할 음악을 우리가 더 잘 만드는데, 우리가 만드는 판이 팝송보다 못 팔릴 이유가 뭐며, 우리가 만든 판이 팝송보다 더 잘 팔리는데 우리나라 회사가 외국으로 넘어갈 이유가 뭐냐, 이런 거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국 영화 직배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데모만 할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 그만 하고 뜨는 영화, 뜨는 음악 나오면 깎아내리는 짓 그만하고 서로 키워주고 칭찬해야한다는 겁니다. 담배도 그렇잖아요. 양담배 들어오면 우리나라 농민 죽는다, 처음에는 저도 그랬어요. 정말 애국심, 그래 우리나라 농민 살리자. 하지만 맛있는 담배를 일부러 안 필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담배맛이 양담배가 나으니까 양담배 피죠. 값싼 애국심에 호소할 생각하지말고 맛있는 담배 만들고, 값싸게 만들고, 좋은 음악 만들고, 좋은 영화 만들면, 일부러 안 사볼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김탁환: 명쾌한 논리군요.(웃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소설에도 순수소설이 있고 대중소설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음악에도 대중음악이 있고 대중음악이 아닌 순수음악이 있습니다. 대중음악 혹은 대중소설을 거론하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이것들은 장삿속이라는 거죠. 정석원씨는 누구에게 팔까 생각하면서 곡을 만듭니까?

정석원: 대중소설은 잘 모르겠지만, 대중음악의 경우는 별로 그렇지 않다고 봐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서태지나 신해철을 봅시다. 그들 음악의 가장 일차원적이고 표피적인 것은 멜로디와 가사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들어가면 녹음방식이라든지 아니면 그런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기만이 터득한 노하우 같은 게 있죠. 그걸 일부러 계층에 맞춰서 쉽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세계에 너무 깊게 빠져서 대중들을 이해시키지 못해 실패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자기 자신의 수준을 낮추는 대중음악가는 없다고 생각해요.

김탁환: 그 동안 015B의 음악을 상업주의라고 비판하는 비평가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정석원: 상업적인 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상업적인 판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제가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그럼 전 지금쯤 억만장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누구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너 판 한 장 낼래? 뜨게 해줄께, 하면 되겠죠? 가수들의 음반을 상업주의로 모는 것은 그 음반에 들어있는 땀과 노력을 전혀 무시한 채 단지 떴다는 결과 하나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헛소리일 뿐이죠. 반대로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만약 우리 판이 한 장도 안 팔렸다면 015B의 음악은 너무나 비상업적이야, 라고 이야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지 우리는 그 음악을 만들었을 뿐이고 그 시대에 통해서, 예를 들어 우리가 70년대에 이 판을 내놓아서 되리라는 법이 없잖아요. 단지 90년대에 이게 맞아떨어져서 떴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판 만들었는데 많이 팔리니까 그게 상업적이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제가 상업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맨날 판 낼 때마다 가슴 졸일 필요도 없잖아요. 이번에는 백만 장 팔고 다음 판에는 팔십만 장만 팔아야지,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김탁환: 이번 5집은 좀 뜨겠어요?

정석원: 그 판이 뜨고 안 뜨고는 신(神)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3집, 4집 낼 때도 마찬가지였죠. 우리는 우리가 원한 음악 한 거고 그때는 그게 뜬 거고, 지금 안 뜨면 안 뜨는 거죠.(웃음) 우리는 단지 우리가 원하는 걸 할 뿐이죠.

김탁환: 대중에 대한 경외심이 있습니까?

정석원: 대중들 중에는 두려운 사람도 있고 정말 한심한 사람도 있고. 어느 사회를 가나 마찬가지죠.

김탁환: 대중이 뭘까요?

정석원: 대중은 있으나 없는 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내 주위의 백 명이 이 노래 다 좋다고 하는데 안 뜨는 노래가 있고, 내 주위의 백 명이 다 싫다고 하는데 뜨는 노래가 있어요. 분명히 내 주위에 이 사람들도 다 대중인데, 진짜 대중은 어디에 있길래 이런걸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탁환: 음반을 만들 때 대중의 수준을 가늠하고 만듭니까?

정석원: 판을 녹음할 때 누구든지 예상은 하죠. 내 판은 죽어야 돼, 라고 생각하고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자기 나름대로는 대중에 대한 판단을 하는 거고,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판단은 대중이 하는 거죠. 저는 예측만 할뿐입니다. 주가가 분명히 오른다는 주식 예상가들의 말이 다 맞으면 전부 떼돈 벌겠죠. 그런 식으로 각자 기성 가수건 지금 판 내는 신인 가수건 대중에 대한 판단은 하겠지만, 그런 판단들이 제가 볼 때는 단지 확률 게임이라고 봅니다.

김탁환: 어떤 기분이 드세요? 음반을 만들어서 대중들, 있으면서도 없는 물을 향해 집어던질 때 어떤 기분인지?

정석원: 솔직히 초조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 비슷한 설렘을 느낍니다.

김탁환: 소설가들 중에는 소설을 탈고하자마자 바로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더군요.

정석원: 왜요?

김탁환: 정석원씨와 비슷한 심정에서겠죠. 이번 5집을 낼 때는 어땠습니까?

정석원: 남들 보기에는 부러운 입장일 수도 있는데, 이제는 편안해요. 이제는 안 떠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탁환: 그 동안 돈 많이 벌었습니까?(웃음)

정석원: 솔직히 제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많이 벌었고, 그리고 방송국 같은 데 가서 충분히 거만도 떨어봤고, 한 장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몇 장 히트라는 걸 쳐봤으니까, 이젠 뭐 괜찮다는 생각이 들죠.(웃음) 어떻게 보면 조금은 여유로와요, 요새는. 그런 부담은 4집 낼 때 심했어요. 3집이 뜻하지 않게 너무 히트를 쳐서 4집을 낼 때는 그 덫에 매여 있었죠. 이번에 안 뜨면 얼마나 망신인가,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5집은 정말 너무 편안한 마음으로 냈습니다. 이름이 좀 알려진 가수들의 특권이겠지만, 기본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 가수는 안나가도 얼마는 나간다, 그런 걸로 볼 때 저희 기획사에서 손해난 것 같지는 않고...

김탁환: 시 뒤에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습니까? 대중음악 같으면 가요가 있고 그 뒤에 가수가 있는데, 가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엄청납니다. 나는 대중들한테 한 번도 나타나지 않겠다, 나는 내 노래로써만 평가받고 싶다고 생각합니까?

정석원: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실은 물론 그렇지 않지만.

김탁환: 사인회도 많이 하죠?

정석원: 사인회 뿐만 아니라 우리는 TV에 죽어도 나가기 싫은데 이번에 여기는 꼭 나가야 한다, 안 나가면 방송국차원에서 너희 노래를 안 틀 거라고 한다, 그럴 때는 저희도 나가야죠. 현실이 그렇잖아요? 5집 만들때도 그랬어요. 판만 내고 우리는 인터뷰고 뭐고 전혀 안하겠다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김탁환씨랑 대담하고 있잖아요?(웃음) 이게 바로 현실이란 겁니다.

김탁환: 어른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보고 너희하고 우리는 세대가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015B도 요즘 나오는 신인가수들에 비해서는 구세대인 것 같아요. 60년대생(生)들이 가지고 있는 세대 감각이 음악 속에 필연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석원: 그렇죠. 나는 이런 세대니까 이러이러한 걸 넣어야겠다는 건 없지만, 단지 그 세대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게 묻어나왔겠죠.

김탁환: 어떤 게 있을 것 같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정석원: 일단 파격이랄까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경우에는 전주가 1분 30초였거든요. 물론 제작자들은 아주 싫어하시죠.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끝나자마자 그 다음 노래로 바로 붙거든요. 그렇게 해놓으니까 딴분들은 이렇게 되면 라디오에서 안 튼다, 곧바로 다음 곡으로 붙어버리니까 끄기가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이런 주의예요. 그게 어려워서 안 틀어도 뜰 노래는 뜨고 아무리 백 번 천 번 틀어도 안 뜰 노래는 안 뜬다는.... 그런 예들이 아닐까요? 가사 같은 경우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에 우리 세대는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김탁환: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나 '신인류의 사랑'은세태를 풍자한 노래 같구요, 정석원씨만이 가지고 있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또 있죠. 이번 5집에도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와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런 가사들은 개인적 체험에서 나온 겁니까?

정석원: 일단 개인적 체험도 있고 아닌 것도 있는데, 간혹 팬들 중에 그런 분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어떤 한 여자를 언급한 적이 있어요, 3집에서. 그러고 나니까 다른 노래를 만들어도 다 그 여자 얘기라고 생각하고, 이제 그 여자 얘기 그만하라고 하는데(웃음) 그럴 때는 좀.... 그래서 요새는 언급을 잘 안하죠. 솔직히 그런 여자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 여자 말고 딴 여자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도 다 한통속으로 모는 경향이 있어요.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 같은 경우는 제가 말한 그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딸이 세 살인지, 딸인지 아들인지 전혀 모르거든요. 그런데 너는 정말 나쁜 놈이다, 딸이 세 살까지 됐는데도 네가 그러고 있냐고 막 그래요.(웃음) 그 집에 가정불화가 일어났더라는 말까지 하던데, 나는 그 얘기 아닌데... 세 살인가 네 살인가도 장호일씨랑 얘기하면서 몇 살로 해야 더 감동적일까 해서 세 살로 한건데, 네 살은 이상하잖아요. 다섯 살은 너무 크고.


거인들, 그리고 참된 시작

김탁환: 80년대를 이끌었고 90년대에 새로 나온 가수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조용필씨부터 이야기했으면 좋겠군요. 5집의 해설서를 보니까 '우리나라 가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대한 가수'라고 적혀있던데요, 조용필씨 음악을 어떻게 접하게 됬죠?

정석원: 조용필씨 음악을 접하게 된 건 김탁환씨나 저나 똑같을 걸요. 우린 그냥 그 시절 대중이었으니까, 그냥 있다 보니까 조용필씨 노래가 히트를 치고 너무 좋아하다보니 빠져들게 된 거죠. 국민학교 6학년 때쯤 TV에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고 노래한 그때부터 신화가 시작되었잖아요. 제가 어린나이에 뭘 알겠어요. 단지 그 사람 노래가 좋으니까 좋아한 거죠. 지금까지도 제일 존경하는 분이에요. 우리가 이제 이런 걸 해야지, 대단한 걸 해야지 하고 판을 딱 만들어 놓고 우린 참 잘해 하면서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조용필씨의 새로 나온 음반을 들어보면, '짜식들 놀고 있군. 한 수 가르쳐줄까?', 꼭 이러는 것 같아요. 음악을 들어보면 우리의 수준보다 너무 저쪽 편에 있는 가수인 것 같고.

김탁환: 어떤 의미에서 그렇습니까?

정석원: 설명하기가 좀 힘들군요.

김탁환: 테크닉이 좋다, 이런 의미입니까?

정석원: 그런 것도 있죠. '서울 서울 서울'이 실린 그 판이 나왔을 때도. 그때는 제가 되게 잘난척 하면서 음악 듣던 시기인데도, 그냥 감탄사만 연달아 나오더군요. 이야! 이거! 정말! 대단해!

김탁환: 한 마디로 정의하면 조용필씨의 음악은 무엇입니까?

정석원: 그 세대에 있어서 최상의 음악이죠.

김탁환: 이대로 인터뷰 나가면 독자들이 저게 무슨 암호야 이럴 것 같은데요.(웃음) 어떤 최상인지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정석원: 예를 들어 누구누구의 새로 나온 소설을 읽다가, 역시 이 사람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정도죠.

김탁환: 저는 고등학교 때 이제하라는 소설가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를 읽었는데 무슨 이야기인 줄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렇지만 엄청나게 느낌이 팍팍 오는 거예요. 그리고 대학 와서 한 3년 지나고 나서 그걸 다시 읽어보니까, 어떤 식으로 줄거리를 짜서 어떤 식으로 감동을 만들었는지가 보이더라구요.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조용필씨의 '단발머리'를 리메이크까지 했는데, 요즈음 조용필씨의 음악을 새로 들으면 어떻습니까?

정석원: 시대를 앞서갔다는 거죠. '단발머리'를 지금 들으면 이런 류의 노래와 이런 류의 창법과 이런 류의 연주를 그 당시에 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단발머리'를 리메이크 하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미 원곡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에 저희가 잘못 건드리면, 얘들이 뭐한 거야, 이런 소리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어요.

김탁환: 잘 건드린 것 같습니까?

정석원: 저희 딴에는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은 다했어요.

김탁환: 어떤 부분이 제일 힘들었나요?

정석원: 일단 방향을 잡는 게 제일 힘들었죠.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지만 어떤 리듬을 쓰고 어떠한 음색을 쓰는가가 결정되는 겁니다. 여러 류의 리메이크가 가능한데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냐. 처음엔 디스코로 가자는 생각이었죠. 일단 반주를 넣었을 때까지는 너무나 확신했어요. 너무나 훌륭하다, 듣는 사람들도 죽인다고 그러더군요.(웃음) 그런데 노래를 넣고 나니까, 사람들이 이거 그때 그 노래 맞냐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혼돈스럽기 시작했죠. 분명히 훌륭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지금도 원인은 못찾겠어요. 그리고 '뿅뿅뿅' 소리를 어디서 구하느냐. 그것 때문에 녹음실을 다 뒤지고 세운상가에서 악기 다 사오고 정말 죽도록 고생을 했지요. 멜로디 다 넣고 나서 나중에 들려주니까, 이건 어떻게 보면 영원히 해결이 안될 문젠데, 들려주고 어떻냐고 물으면 '단발머리'네, 라고 대답하더라구요. 저희는 '단발머리'라는 노래를 저희 나름대로 해석해서 한건데, 많은 대중들은 멜로디가 똑같으니까, '단발머리'니까 당연히 '단발머리'잖아요? 이렇게 묻는 거예요. 어떤 식으로 노래형태가 바꿔어졌냐는 것은 안 듣는 것 같아요. 멜로디가 '단발머리'네, 근데 왜? 이런 류의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김탁환: 우리나라에서는 리메이크한 음악의 의미를 따진다든지 음악성을 쳐주는 게 거의 없으니까요.

정석원: 그것에 대한 오기라고 할까요. 저희 판 낼 때 기자들도 어떤 노래가 이번에 타이틀이냐고 묻더군요. 아마 '단발머리'가 될 것 같다고 했죠. 그것 좋은 생각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전부다 예? 왜요? 라고 하더라구요. 주위에 매니저 분들도 리메이크 부르면 너희 망한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에 대한 오기죠. 그래서 제가 밀고 있는 곡은 '단발머리'와 '슬픈 인연'입니다. 모두 리메이크한 곡이죠. 솔직히 외국에서 리메이크한 걸 들어보면 멜로디도 다 똑같고 노래도 자기 나름대로 한 거고, 노래 자체는 하나도 바뀐 것 없거든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가수들의 리메이크 곡을 너무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가요로 만들면 노래가 똑같은데 왜 이게 리메이크야, 라고 반문하는 상황이에요. 어떤 분들은 노래 리듬도 바꾸고 가사도 바꿔야 리메이크한 걸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그럴 바에야 우리가 왜 그 곡을 리메이크 하겠어요? 그 곡의 멜로디가 너무 좋으니까 리메이크하는 건데 멜로디가 다 바뀌면 리메이크하는 의미가 없죠. 리메이크한 음반을 선뜻 살까? 이런 물음을 던질 수는 있다고 봐요.

김탁환: 그래도 클래식 음반은 어느 지휘자가 지휘를 하느냐에 따라서 골라서 듣게 되잖아요?

정석원: 제가 이해 못하겠다는 게 그거예요.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런 식으로 이 곡을 해석했다고 주장하는 건데. 그런 의미를 파악해주지 않으니...

김탁환: 해석해낼 능력이 없는 측면도 있는 것 같네요.

정석원: 능력이 없다기보다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가요는 리메이크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당연히 가수가 신곡을 냈으면 신곡으로 밀어야지, 왜 리메이크를 밀어, 라는 심리. 혹자들은 나올 것 가 나왔는 모양이지 뭐, 그런 말도 하고.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인기 좋은 마이클 볼튼이나 머라이어 캐리도 할 것 없어서 리메이크하는 건가요? 저흰 신세대들에게 너네들보다 윗세대에도 정말 좋은 노래가 많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은 건데.

김탁환: 들국화의 음악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석원: 광적인 팬이었죠. 저는 역사를 잘 모르지만 역사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뭔가가 쌓이다보면 분명히 변화하기는 하는데, 수많은 대중에 의해 변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대중들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그 중에서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순식간에 비약적으로 변하는 것. 변증법에도 보면 양적변화가 쌓이다가 어느 순간에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액체인 물이 100도에서 기체로 변하는 그 지점에 들국화가 있었던 거죠. 서태지 같은 경우도 그랬고, 들국화같은 경우도 그런 정도의 평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들국화가 그 당시에 우리나라 가요계 자체를 뒤바꿔 놓았고, 들국화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던 세대가 그 음악을 계승하여 범람하게 만들었죠.

김탁환: 그들의 음악은어떤 특징이 있나요?

정석원: 들국화는 락적인 측면보다는 일단 사운드 자체가 너무 특이했다고 봅니다. 이 사람들의 음악적 기반은 비틀즈잖아요? 비틀즈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려고 하다보니까 목소리가 드라이하죠. 보통 가요 음반을 들어보면 목소리에 에코가 많은데 비해서 들국화는 의도적으로 에코를 뺀 노래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또한 그 당시로서는 가요에서 나올 수 없는 획기적인 코드를 만들었죠. 멜로디 라인도 그렇고요.

김탁환: 어떻게 보면 게릴라 전법 같은 것 아닙니까?

정석원: 그렇죠. 소극장 콘서트를 하면 골수팬이 생기죠. 그런 전략으로 성공한 그룹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김탁환: 김수철씨는 어떻습니까?

정석원: 저는 개인적으로 김수철씨의 음악으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없습니다.

김탁환: 이문세씨의 음악은 어떻습니까?

정석원: 이문세씨의 노래들을 너무너무 좋아했죠. 제가 작사에서 제일 영향을 받은 사람을 뽑으라면 동물원이랑 이문세씨의 노래를 작사한 이영훈 씨랑 박주연씨입니다. 이영훈씨는 지금도 존경합니다.

김탁환: 어떤측면에서 좋습니까? 이문세씨의 노래가 세상을 휘어잡던 한 시절이 있었죠.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면?

정석원: 이번에 저희가 5집을 기획하면서 리메이크하고 싶은 목록 중에 이문세씨 노래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슬픈 걸 좋아하잖아요? 이영훈씨의 곡을 들어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신승훈류의 '...꺼야' 풍의 노래들은 별로 안 슬픈데, 이영훈씨의 곡들을 듣고 있으면 그래 그때 참 그랬지, 이런 식으로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이문세 4집을 샀는데, 그 당시에는 여자도 안 사귀고 있었고, 그 노래를 듣고 슬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노래를 듣다가 가슴이 너무 찢어져서 방안에 못 앉아있고 밖으로 나갔던 적이 있었어요.

김탁환: 어떤 곡입니까?

정석원: '사랑이 지나가면'이었어요. '그 사람 나를 알아도 나는 그대를 몰라요' , 얼마나 멋집니까. 7집의 '옛사랑'이란 노래를 들어보셨겠죠? '때로는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이럴 수가! 이건 정말 대단해! 박주연씨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저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죠. 박주연씨는 '잊을 수 있니 우리 촛불의 약속, 널 맡긴 거야' 이런 식이잖아요. 진짜 '너의 결혼식'의 가사를 처음 봤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 어요. 또 이런 말 했다고 딴 사람들이 정석원 가사는 이영훈과 박주연 것 다 베낀 거라고 할까봐 괜히 두려워지는데요.(웃음)

김탁환: 정중하게 받아치면 돼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영광입니다!(웃음) 요즈음 가수들 중에는 누구의 음악을 좋아하는지요?

정석원: 신성우씨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신성우씨는 외모 때문에 음악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실험적인 곡도 많고, 음악도 훌륭합니다. '건달의 허세'를 보면 너무 나를 몰라준다는 그런 가사도 있지요. 또 윤상씨도 어떻게 보면 대중 사이에서 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의 음악성은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승환씨, 김현철씨, 김건모씨의 음악도 좋아합니다.

 

진실 혹은 대담

김탁환: 앞으로 015B는 어디로 갈 작정입니까?

정석원: 일단 이번 5집은 복고적인 걸로 가려고 노력했어요. 종이질부터 색깔 그리고 그림까지 이발소에서 구하기 힘든 이런 달력까지, 이미지의 일체성을 두려고 했죠. 그래서 리메이크를 통해 지나간 노래들 중에도 정말 좋은 노래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두 곡만 넣은 것은 정말 아쉬워요. 언제 기회가 되면 리메이크만으로 채워진 앨범을 하나 정도 내고 싶어요. 피땀 흘려 만든 앨범을 단지 한두 마디의 말로 왜곡시키지 말아주었으면 하고, 또 그 반대로 너무 많은 것을 우리의 음악에서 모려고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만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김탁환: 참 어렵지요.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정석원: 단지 015B의 음악은 음악일 뿐입니다. 우리는 철학자도 아니고 사회사상가도 아니죠. 단지 우리의 생각과 삶이 노래 속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제발 어려운 단어를 요구하지 말라, 이 말이죠.(웃음) 덧붙여 제가 한 마디를 더 드리자면, 안티 015B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저희가 인기를 얻은 만큼 유달리 015B 라는 그룹에 대해서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기찻길 옆에 가보면 개들이 막 짖어대잖아요?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간다.(웃음) 이걸 말하고 싶습니다.


김탁환: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는 거군요. 마지막으로 대중음악과 우리들의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는지 한 말씀만 더 해주십시오.

정석원: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보면 문성근을 인터뷰하는 게 나오잖아요. 전 문성근이 한 말, 처음에 '진실인데' 이러면서 말을 더듬잖아요? 그때 그 웅얼거리는 말과 표정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바거든요. 대중음악이건 순수음악이건 '진실'하고 '진실'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김탁환: 오늘의 결론은 '진실'이군요. 진실한 노래를 부르면 진실한 시대가 정말 올까요? 이 물음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대중음악을 듣고 즐겨야 하겠군요. 긴 시간 동안 대담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석원: 재미있고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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