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
강사: 원유홍 (상명대 교수)
e-mail : wwon@chollian.net......  
  

★ 제1회 I. 타이포그래피란?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타이피쉬(Typish)  

  
안녕하세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1001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셰헤르반 왕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민한 제상의 큰 딸 셰헤라자르처럼 앞으로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개념, 역사, 기술, 창의적 영감, 그리고 관련 지식 등을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주관할 원유홍 교수입니다.
알라딘과 마술 램프,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열려라 참깨 등은 너무나 잘 알려진 명전입니다. 여러분들 역시 셰헤르반 왕 만큼이나 저의 웹 강의 내용에 매료되리라 믿으며, 타이포그래피 명전을 완성한다는 심정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타이포그래피 : 천일야화"의 원전을 찾아 흥미진진하고 먼 여행을 떠나도록 합니다. 가이더인 저를 바짝 따라오세요. 때때로는 험난하거나 지루한 과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뒷모습을 놓치지마세요. . . Have Fun !

제1장 타이포그래피란?
"타이포그래피는 그래픽 디자인의 요체다."

1. 타이포그래피 입문 - 타이포그래피란?
타이포그래피란 물론 타입과 연관된 디자인을 일컫는 말이지만, 현대적 개념의 타이포그래피는 이보다 훨씬 폭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관련되는 모든 요소: 이미지, 타입, 그래픽 요소, 색채, 레이아웃, 디자인 포맷 그리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 관여되는 모든 행위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명실공히 '시각 디자인의 요체'입니다.
타이포그래피는 포스터, 광고, 아이덴티티 디자인, 북 디자인, 편집 디자인, 신문 디자인, 홈페이지 디자인 등의 모든 시각 디자인 인쇄매체 및 전파매체들을 포용합니다. 말하자면, 이들 보다 훨씬 우위적 개념이며 여러 매체들의 중심축으로서 이들을 통합 관장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즉, 매체을 일컫는 용어가 아닌, 디자인의 한 장르를 말합니다.

그러면, 타이포그래피란 무엇인가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의 명언을 들어보기로 합시다. 이들은 타이포그래피의 발전에 대하여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들의 말을 되새겨 보며 타이포그래피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확립하길 바랍니다.

    
  
"타이포그래피의 명백한 책무는 '쓰여진 정보를 정확히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으며 절대 무시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읽기 불편한 인쇄물은 무의미한 생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에밀 루더(Emil Ruder)

"타이포그래피는 보이지 않는 말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타이포그래피는 속삭이고, 고함지르고, 노래하고, 비통해 하고, 즐거워 하고, 히히덕거리고, 그리고 중얼거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언어적 뉘앙스를 표현하는 여러 방법들이 바로 타이포그래피 표현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 만큼이나 다양한 서체가 필요한 것이다.”-에릭 스피커만(Erik Spiekermann)

"타이포그래피는 머리로 생각한 바를 드러낸 육성이다.”-릭 배리센티(Rick Valicenti)

"말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고, 글은 공간 속에서 진행된다.”-칼 게르스트너(Karl Gerstner)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나의 모든 지식은 책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직관적 사고가 큰 배움을 주었다. 나는 20년대 후반부터 40년대 후반에 이르는 미국적 경향을 탐미하며, 단지 이들을 살펴보며 스스로도 의식못한 가운데 저절로 얻은 지식들을 비축했다. 이 기간 동안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타이포그래피는 대부분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전혀 생소한 이름의 사람들이 제작한 디자인들이다. 그들은 네온 사인에서부터 성냥갑, 가스 펌프로부터 여행용 스티커에 이르는 잡다한 것들을 디자인했다. 내 경우에 비추어 보듯, 이 디자인들은 후세를 위해 준비한 미국의 풍요한 타이포그래피 유산이다.”-마이클 도레(Michael Doret)

"타입은 스스로 말한다.”-데이비드 카슨(David C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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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의 총 분류에서 타이포그래피보다 더욱 중요한 분야는 없다. 최근, 타이포그래피는 인쇄를 수반하는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 가장 확고 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더우기, 현대 타이포그래피는 논법과 개념성 때문에 순수예술 영역으로 확충되었다. 타이포그래피의 기량은 형태에 대한 직관력과 숙련을 통해 얻게되는 기술적 연구의 총체, 이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한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첫 인상은 기술적 이해가 중요한 듯하지만, 점차 타이포그래피 표현의 잠재력을 깨우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지루한 타이포그래피 과정은 드로잉을 하는 것 만큼이나 느린 속도로 진행되지만, 그러나 충만한 만족감을 남겨준다.”-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

"타이포그래피의 임무는...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와 영감 그리고 상상력을 아무 손상없이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이다.”-토마스 제임스 코브던-샌더슨(Thomas James Cobden-Sanderson)

"컴퓨터 시대가 도래함으로,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서체의 대량 생산과 타입 관련 기술은 오늘날 우리의 시각 문화를 위협하는 공해 수준의 한계까지 이르렀다. 수없이 많은 서체들 중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몇 가지일 뿐,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통 속에 던저져야 한다.”-마시모 비넬리(Massimo Vignelli)

"타이포그래피는 무엇이고, 심상이란 무엇일까? 나는 작품 안에서 이 두 가지를 뚜렷이 구분하지 못하며, 다만 작품 전체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언어는 이미지화될 수 있다. 타이포그래피는 읽히는 것 뿐 아니라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시각적, 언어적 양면이 동시에 표출되어야 한다.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이너가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며 의미 전달을 위해 새로히 모색된 가능성을 무기로 독자를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는 메시지를 구조화하고, 정보를 조직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날, 스위스에서 공부했던 그리드 시스템은 서체 선택뿐 아니라 내 작품 전반에 걸쳐 항상 토대가 되고 있으며, 작품의 구조와 구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캐더린 맥코이(Katherine McCoy)

    
  
"타입은 나의 지속적 관심 대상이다. 그것은 늘 중요하고 유용한 도구일 뿐 아니라 메시지를 비축하고 전달하며, 특정 기사를 판매하고, 또한 아이디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일상에서도, 타입은 오락이나 여흥을 즐기게끔 하는 노리개다. 낱글자나 숫자들은 서로 군집되거나 또는 다른 그래픽 기호들과 더불어 신선한 디자인과 잠재적 사고를 생산케 하는 즐거움 자체다.
타입은 철학적 향유의 매개체로서, 오로지 전통성만을 신봉하는 논리 체계에 모순된 정황을 허용케 하는 타이포그래피 범례를 개발하는 것은 참으로 큰 즐거움이다. 또한, 타입 안에는 과거에 있었던 오류의 원인, 영구성을 지탱하기 위한 실증적 논거, 그리고 개선점 제안 등을 다시금 숙고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
타입에 대한 관심은 역사에 대한 식견을 넓혀줄 뿐 아니라, 회화나 건축 그리고 문학 등의 예술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과 나아가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해 준다. 또한, 타입은 낭만적 탐닉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더우기, 과거에 제작된 디자인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 속에 사용된 타입들을 변별할 수 있는 자신의 실무력 향상과 자신감을 충족할 수 있다.
요컨대, 타입은 우리의 도구, 노리개, 그리고 스승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삶의 수단이며, 휴식을 위한 여흥이고, 지적 촉진과 정신적 충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통해 풍미하고 탐닉할 수 있는 요소들이 타입 안에 충분히 담겨있다고 믿는다.”-브래드베리 톰슨(Bradbury Thompson)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서체들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좋아하는 서체'란, 단지 디자이너가 무차별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수 많은 디자인들을 수행하면서 각 사례마다 적정하다고 예측한 판단을 적용한 결과일 뿐이다.
오늘날과 같은 다원적 디자인 환경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체가 무엇인지에 전혀 무관심한 신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등장해 있으며 앞으로는 이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선두해 나갈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그들 중 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싶다.”-루디 반데란스(Rudy Vanderlans)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이너가 다루는 유용한 도구 중 가장 감성적이다. 타이포그래피는 글의 맥락을 초월한 부가적 사항을 더불어 전달한다. 좋은 타이포그래피는 내용이 침울하거나, 가볍거나, 감성적이거나, 또는 유쾌한 것 등에 상관없이 문맥의 진전과 분위기에 대한 전반적 감각을 전달한다.
친숙하며 정답게, 도발적이며 첨단적으로, 또는 권위와 품격을 느끼게 하는 타이포그래피들은 곧 이미지를 대변한 육성이다.”-키트 힌리치(Kit Hinrichs)

"26개의 낱자로 얼마나 많은 상황을 연출할 수 있을까? 수없이 다양한 감정들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사연들을 모두 전달할 수 있을까? 그들은 프리 마돈나가 될 수도 있지만, 한낱 이름 모를 담쟁이 덩쿨이 될 수도 있다. 용이 될 수도 있지만, 뱀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합창을 할 수 있지만, 독창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항상 비좁은 상태로 압착되어 정돈되며, 다양한 크기나 중량이 적용되어 항상 스타일을 수반한다. 그들은 위대한 사상을 말하기도 하지만, 애달픈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들은 국가, 조직, 그리고 개인을 표현할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은 홀로 무대에 나설 수 없으며, 의미를 완성하기 위해 구두점이나 또는 숫자를 필요로 한다. 말하자면, 이 26개의 낱자들은 우리의 스타 프레이어다. 디자이너인 우리는 그들이 없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열열한 기립 박수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 . .”-켄트 헌터(Kent Hunter)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에 반란을 꽤하는 내 타이포그래피 스타일은 대학 재학중에 처음으로 교육받았고, 그 결과 나는 다원주의자 내지는 절충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타이포그래피란 독창적 영감을 창작하는 핵심 도구며, 총체적 사고의 요지를 표출하는 최선책으로 믿는다.
나는 타이포그래피가 기술이나 유행을 좇음으로 전통 가치를 하락시킨다는 견해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같이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법적 제제를 가하려는 논쟁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토론은 항상 '절대적 질서(포용)'와 '절대적 무질서(거부)', 요컨데 흑백 양론으로 의견이 갈린다. 독일 나치에 대한 내 상념은 부정적이며 역기능적(거부)이었다고 술회한다.”-파울라 쉬러(Paula Scher)

"타이포그래피는 도구다. 타이포그래피의 적정성이란 잘 읽힐 수 있는 타입인지, 아니면 잘 읽히지 못할 타입인지를 분별하는 잣대다... 새로운 해법은 항상 탐색되는 것이 마땅하며, 디자인에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마이클 반더빌(Michael Vanderbyl)

"타이포그래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은 별 노력없이 읽음으로 그 내용이 금방 잊혀지는 것이다.”-토마스 소코로브스키(Thomas Sokolowski)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지, 바람직한 타이포그래피란 국적이 문제가 아니라 형태와 의도에 대한 감수성이다. 1920년대, 얀 치홀트는 모던 타이포그래피를 소개하는 자신의 저술서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독일, 스위스, 또는 프랑스라고 부언하지 않고 단지 '뉴 타이포그래피'라고 이름 붙였 뿐이다.”-폴 랜드(Paul Rand)

"나는 간결하고 정갈하며 장식이 없는 타입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해독이 가장 중요한 타이포그래피에서, 나는 글자나 단어는 글의 내용과 의도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자각한다. 현세에, 글의 의미는 디자인에 의해 오히려 평가절하되고 있다. 나는 글의 내용에 상반되거나, 글의 의미를 방해하거나 또는 모호하게 하는 일이 없이 고유 의미를 강화시키는 타입을 선택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최고의 목표는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명백히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레이아웃이나 디자인 자체를 초월한다. 타이포그래피의 근원적 목표는 분명 커뮤니케이션이다.”-수잔 캐시(Susan Casey)

"타입페이스는 죄수복에 들어 있는 알파벳이다.”-알랜 프랫처(Alan Fletcher)

"나는 알파벳을 주제로 한 조각을 주로 한다. 이 조각들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자신의 환경에 더욱 호의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일종의 환경물이다. 사인으로서의 타입들은 마치 나뭇가지나 계단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이 조각물 위를 기어오르거나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보며 공간에 대한 체험을 충분히 경험한다. 바로 이 점이 내 작품을 조각이라기 보다는 건축이라고 일컫는 이유다.”-다케노부 이가라시(Takenobu Igarashi)



    
  
2.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타이피쉬(typish)

"고 놈 참 어른스럽구나 !"
우리는 종종 어린 아이를 보고 '고 놈 참 어른스럽구나"하는 감탄을 합니다. 이 말은 아이의 나이가 어른만큼 많아서가 아니라, 어른스러운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이지요. 즉, 물리적 외양이 아니라 내면적 속성이나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인처럼, 수필가는 수필가처럼, 평론가는 평론가처럼 말합니다. 자신의 글을 시스럽게, 수필스럽게, 평론스럽게 적정한 어휘를 고르고 형식을 갖추며 면모를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디자인다운 면모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과연 디자인다운 면모를 탄생시키는 것일까요? 그 비밀은 이미 알고 있는 디자인 원리 또는 디자인 요소에 모두 숨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슈베르트나 베토벤일지라도 단지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7음과 몇 개의 박자만으로 우리의 영혼을 감싸안는 작곡을 하지 않았습니까?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음악적이고, 문학적이고, 디자인적이냐 하는 판단은 이 인자(요소와 원리)들이 어떻게 연합하고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달려있겠지만, 이 인자들의 범주는 모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귀에 들리는 전부가 모두 음악은 아니며, 눈에 보이는 모두가 걸작은 아니겠지요. 계획적 의도나 의향에 따라 각 인자들을 적절히 적용시켜야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듣기 싫은 소음이 될테구요. 우리는 또한 '싸움'과 '스포츠'의 구분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질서 있는 규칙과 제한적 규율 안에서 자신의 의도를 성취할 때, 그 가치가 인정되며 일컬어 '성취되었다'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요점을 정리하면, 화면에 글자가 등장하고 있다고 모두 타이포그래피라 말할 수 없으며, 타이포그래피가 되려면 타이피쉬한 면모가 드러나야 합니다. 타이피쉬한 면모의 비밀은 앞서 말했듯이, 바로 타이포그래피의 원리와 요소 및 타이포그래피 구문법에 숨어 있습니다. 이 점은 천일야화가 진행되는 동안 점차 설명될 것입니다. 아직은 아무 걱정이나 실망하지 마십시요.

Good Bye !




★ 제2회 II. 타이포그래피 역사- 문자의 출현과 진화  
'천일야화'의 이틀째입니다.
오늘 설명하는 타이포그래피 역사는 조금 따분한 내용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그렇듯이 규모가 큰 개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반적 상황이나 개괄적 내용을 이해해야 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더라도 잠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전반적 흐름만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내용을 완전히 섭렵하려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
지난주에 추천도서를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행의 책(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이세욱 역, 열린책들 발행, 1998)이 손에 잡히면 주저마시고 통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뉴 에이지나 무의식에 관련된 수련(?)을 다룬 책으로,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책 같습니다. 이 책은 '책'이라는 인격체가 말을 하며 독자의 동의를 구한 후, 독자와 함께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정신적 평정을 얻기도 했지만, 그보다 제가 갖고 있던 차갑고 무표정하며 엄격해 보이는 타이포그래피의 고정 관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타이포그래피 안에 저자가 말하는 놀라운, 그리고 상상해 볼 수 없던 신세계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여러분의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수줍은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제Ⅱ장 타이포그래피 역사
“문자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했다.”
1. 문자의 출현과 진화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알파벳(alphabet)이라 불리우는 26개의 문자기호가 어떻게 탄생되고 진화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타이포그래피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인류 초기에는 알파벳을 구성하는 여러 낱자들이 그림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문자들은 오랜 역사 이전부터 그림에서 진화한 기호들입니다.
(1) 그림문자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인간은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으며, 그들은 인간, 동물, 또는 무기와 같은 일상적 사물을 단순하게 그렸는데, 이 그림을 그림문자(Pictograph) 혹은 설형문자라 합니다. 이러한 예가 미국 인디언의 그림문자(Picturewriting)입니다그림 1).
(2) 상형문자
추상적인 많은 개념들을 문자로 기록할 필요가 증대함에 따라, 그림문자는 보다 폭넓은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글자 'A'는 황소를 뜻하는 동시에 음식을 의미하였는데, 그 이유는 황소가 가축이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의 양식이기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상형문자는 서로 다른 문자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 '계집 女'와 '아들 子'가 결합하여 행복한 의미의 '좋을 好'를 탄생시킨 것이 그런 예입니다. 이처럼 문자가 사물의 형상뿐 아니라 추상적 개념까지, 일종의 그림 형태로 기록하는 것을 '상형문자' 또는 '표의문자(Ideograph)'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극물 기호는 일종의 표의문자입니다(그림 2). 인체의 두개골과 교차된 뼈는 물질로서의 '뼈'가 아니라 관념적 의미인 '죽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서는 회화적 체계 안에서 사물적 심벌(그림문자)과 관념적 심벌(상형문자)을 혼용하여 기록하고 보존했습니다(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이러한 체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복잡할 뿐 아니라, 익혀야 하는 문자의 수량이 너무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1) 초기의 그림문자(서기전 1600경, A와 B)



그림 2) 독극물을 의미하는 심벌
'천일야화'의 이틀째입니다.
오늘 설명하는 타이포그래피 역사는 조금 따분한 내용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그렇듯이 규모가 큰 개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반적 상황이나 개괄적 내용을 이해해야 되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더라도 잠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전반적 흐름만 이해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내용을 완전히 섭렵하려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

지난주에 추천도서를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행의 책(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이세욱 역, 열린책들 발행, 1998)이 손에 잡히면 주저마시고 통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뉴 에이지나 무의식에 관련된 수련(?)을 다룬 책으로, 우리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책 같습니다. 이 책은 '책'이라는 인격체가 말을 하며 독자의 동의를 구한 후, 독자와 함께 무의식의 세계를 여행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정신적 평정을 얻기도 했지만, 그보다 제가 갖고 있던 차갑고 무표정하며 엄격해 보이는 타이포그래피의 고정 관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타이포그래피 안에 저자가 말하는 놀라운, 그리고 상상해 볼 수 없던 신세계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여러분의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고 수줍은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제Ⅱ장 타이포그래피 역사

“문자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화했다.”

1. 문자의 출현과 진화

타이포그래피에 관한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알파벳(alphabet)이라 불리우는 26개의 문자기호가 어떻게 탄생되고 진화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타이포그래피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인류 초기에는 알파벳을 구성하는 여러 낱자들이 그림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문자들은 오랜 역사 이전부터 그림에서 진화한 기호들입니다.

(1) 그림문자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인간은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으며, 그들은 인간, 동물, 또는 무기와 같은 일상적 사물을 단순하게 그렸는데, 이 그림을 그림문자(Pictograph) 혹은 설형문자라 합니다. 이러한 예가 미국 인디언의 그림문자(Picturewriting)입니다그림 1).

(2) 상형문자
추상적인 많은 개념들을 문자로 기록할 필요가 증대함에 따라, 그림문자는 보다 폭넓은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글자 'A'는 황소를 뜻하는 동시에 음식을 의미하였는데, 그 이유는 황소가 가축이기도 하였지만 사람들의 양식이기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상형문자는 서로 다른 문자들이 하나로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즉 '계집 女'와 '아들 子'가 결합하여 행복한 의미의 '좋을 好'를 탄생시킨 것이 그런 예입니다. 이처럼 문자가 사물의 형상뿐 아니라 추상적 개념까지, 일종의 그림 형태로 기록하는 것을 '상형문자' 또는 '표의문자(Ideograph)'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극물 기호는 일종의 표의문자입니다(그림 2). 인체의 두개골과 교차된 뼈는 물질로서의 '뼈'가 아니라 관념적 의미인 '죽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서는 회화적 체계 안에서 사물적 심벌(그림문자)과 관념적 심벌(상형문자)을 혼용하여 기록하고 보존했습니다(중국과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이러한 체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복잡할 뿐 아니라, 익혀야 하는 문자의 수량이 너무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 1) 초기의 그림문자(서기전 1600경, A와 B)



그림 2) 독극물을 의미하는 심벌  



그림 3) 최초의 성문법인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서기전 1792-1750경). 로제타석(서기전 197-196).  



그림 4) 수메르의 그림문자(쐐기문자, 서기전 3500경). 이집트의 상형문자  



(3) 표음문자의 태동(페니키언 알파벳)
페니키아 사람들은 무역과 상업을 활발히 했기 때문에, 빈번한 서신 왕래와 복잡한 대금장부를 더욱 자세히 기록할 수 있는 문자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원전 1,600년경, 사물의 형상을 본떠서 그리는 상형문자보다는, 기호로서 소리나 음성을 대신하려는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혁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알파벳의 처음 두 글자, 즉 A와 B를 관찰해 보도록 합시다.
페니키언들이 최초에 만든 문자는 음성의 첫 소리인 '아' 바로 'A'입니다. 'A'는 황소를 의미하는 그들의 단어 'aleph'의 첫 음절입니다. 다시 말해, 표음문자를 탄생시키면서 새로운 심벌을 고안하는 대신 그들은 이미 쓰고 있던 심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했으며, 'B'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B'는 집을 의미하는 그들의 단어 'beth'의 첫 음절입니다. 즉 페니키언들은 당시 그들이 의미를 부여해 문자로 사용하던 그림 심벌들을 소리로 인식되는 각 음성들과 연관시켜 대입함으로써 페니키언 알파벳(Phoenician Alphabet)을 탄생시켰습니다.

표음문자의 새로운 체계는 고대 그림문자나 상형문자 보다 훨씬 간소하기 때문에, 학습이 쉽고 신속한 서신 왕래를 가능케 했습니다. 이로써 페니키언들은 그들의 완벽한 사업 도구를 개발한 것이지요(그림 5).

(4) 표음문자(그리스 알파벳)
기원전 1,000년경,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의 알파벳을 전수받았으며, 이 새로운 체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켜 그리스 알파벳(Greek Alphabet)을 탄생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aleph'는 'alpha'가 되었고, 'beth'는 'beta'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라틴문자를 일컫는 알파벳이라는 명칭은 이 두 단어가 결합된 조어입니다. 이들이 처음 페니키아로부터 전수받았던 알파벳은 모음은 없고 단지 자음만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축약형으로 쓰이는 Blvd, Mr, St와 매우 유사한 모습을 가집니다. 이처럼 자음뿐인 문자는 사업장부에는 매우 유용하지만, 보다 폭 넓은 사용에는 많은 제약이 따르므로, 그리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03년, 여기에 다섯 개의 모음을 추가시켰습니다(그림 5).

(5) 알파벳의 완성(로만 알파벳)
페니키언 알파벳이 그리스인에 의해 수정되었고, 또 다시 로마인들에 전수되는 과정에서 역시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로부터 13개의 문자(A, B, E, H, I, K, M, N, O, T, X, Y, Z)를 받아들였고, 8개의 문자(C, D, G, L, P, R, S, V)를 새로 고안해냈으며, 그 후 두 개의 문자(F, Q)를 또 추가해, 총 23개의 문자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alpha', 'beta', 'gamma' 등의 명칭을 오늘날과 같이 간명한 '에이', '비', '씨', '디' 등으로 개명하였습니다. 그 후 U와 W가, 그리고 약 5백년 전 J가 추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26자의 로만 알파벳(Roman Alphabet)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그림 6).

(6) 소문자
지금까지 우리는 대문자에 관해서만 언급했는데, 소문자는 대문자를 펜으로 쓸 때 생기는 자연발생적 부산물로서 한참 후인 중세시대에 탄생되었습니다(그림 6).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하기 이전인 15세기 중엽, 서구 유럽에서는 대세를 이루는 두 무리의 유명한 필체가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둥글둥글한 '인문주의적 필체(Humanistic hand)'가 그리고 독일에서는 검고 어두운 블랙 래터(black letter), 일명 '고딕(Gothic hand)'이 그것입니다. 인문주의적 필체란 9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캐롤라인 미누스쿨(Caroline Minuscule)을 복원한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소문자의 전신입니다. 또한 이 서체는 오늘날 이탤릭체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고딕체는 1455년에 구텐베르크가 디자인한 고딕 블랙체(Gothic Black)의 전신입니다(그림 8).

(7) 구두점
고대 그리스나 로마인들은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단어들을 길게 써내려 가면서, 점이나 혹은 사선으로 각 단어를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구두점의 출현은 활판인쇄가 시작된 15세기 이후에야 비로서 구체화되었습니다(그림 6).  



그림 5) 페니키언 알파벳(서기전 1000경, 초기의 표음문자로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그리스 알파벳(서기전 900경)  



그림 6) 로만 알파벳(서기전 403년). 캐롤라인 미누스쿨(796).  



그림 7) 중국, 왕힐이 목판을 사용하여 만든 최초의 종이책인 금강경(868).  



그림 8)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1455).  





2. 한글의 탄생과 발전

한글은 1446년(세종 28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반포된 이래 55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그림 9), 고려시대에 금속활판술을 창안(1234년-1241)한 것은 서양(1444-1448년,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약 200여 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혁신적 출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세계적 입지로 발전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타이포그래피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미 신라시대부터 인쇄술이 보급되었으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현존하는 인쇄물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多羅尼經:국보126호)'은 704-751년 사이에 제작된 목판인쇄물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고려시대인 1011-1031년 사이에 제작된 목판인쇄물입니다. 그러나 이 대장경은 몽고군의 침입으로 1232년에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완성된 것입니다. 그 분량은 총 8만 1258판에 약 2500만 자가 수록된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목판인쇄물로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1234년에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50권 28부가 최초의 동활자로 인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애석하게도 이 인본(印本)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프랑스의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직지심체요절(일명 직지심경)'은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금속활자본으로 UNESCO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것도 구텐베르크의 것보다 약 70년이나 앞선 것이지요.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종은 1403년에 주자소를 설치하고 수십만 개의 동활자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계미자(癸未字: 국보 148호)입니다. 이 동활자로 인쇄한 서적은 '동래선생교정북사상설(東萊先生校正北史詳說)'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계미자는 그후 세종 2년(1402년)에 개량 작업을 거쳐 경자자(庚子字: 국보 149호)로 발전하였고, 1434년에 납으로 주조된 갑인자(甲寅字: 국보 150호)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발전 가운데 불행하게도 한글은 일제의 침탈과 식민정책으로 한글 사용의 단절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후, 해방과 더불어 한글 사용의 활성화를 꾀했지만, 이미 일제에 의해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된 우리 나라 말과 글의 말살정책으로 각 인쇄소에는 이미 한글 활자시설이 대부분 폐기된 상태였습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고(故) 공병우 박사는 그간 사용되던 타자기를 변형하여 3벌식 타자기를 개발했는데, 이 시도는 현대적 개념에 걸맞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후 공병우, 최정호, 최정순 등을 중심으로 사진식자체와 신문활자체가 개발되었으며, 1969년에 과학기술처의 판단으로 4벌식 타자기가 한글타자기 표준자판으로 공포되었습니다. 1977년에는 한글영자 겸용 볼타자기가 개발되었고, 1985년에는 최정순이 서울신문 전산식자용 활자를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가로쓰기 전용신문으로 최초였습니다. 1983년에는 총리령에 의해 한글자판을 2벌식으로 통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글은 과학적 음운구조, 통치철학과 선민사상, 그리고 독창적 우주관 등 뛰어난 창제원리와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뒤늦은 발전은,
첫째,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답습적 관념과 주체성을 잃은 사대주의,
둘째, 생물의 진화과정처럼 불필요한 기능은 퇴화되며 필요한 기능은 확충되면서 환경에 적응력을 갖추는 진화론적 또는 자연발생적이지 못하고, 현대 타이포그래피 환경에 미흡한 초기 글꼴 구조와 시스템의 기능적 결함들이 비판없이 전승되고 있으며,
셋째, 우리 나라가 처해야 했던 국가적 침탈과 국내적 수난에 그 주요인을 둡니다.

세계 최초로 이룩한 우리 나라의 금속활판술이나 한글 창제의 참뜻을 되새겨보면, 오늘날 우리가 성취한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사실 미흡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미래에 있지 않습니까. 뒤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빛낼 수 있도록 민족적 긍지와 창조정신을 계승하며, 선진 타이포그래피 이론들을 타신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한글의 뒤늦은 발전은 오히려 한글 타이포그래피 우수성을 세계에 입증할 역설적 기회를 우리에게 넌지시 일임한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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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방향의 변화 : 독서할 때 움직이는 시선의 방향은 글자꼴의 형태와 정렬을 따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글자 정렬 체계의 변화는 당연히 독서 방향을 변화시켰습니다. 즉, 위에서 아래로(이집트의 상형문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치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듯 반복되며(초기 그리스 문자), 결국 오늘날과 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전이나 전화번호부 같이 어순을 찾기 위해 시선이 상하로 움직이다가, 찾은 내용을 정독하기 위해 다시 좌우로도 움직이는 복합구조도 있습니다.

그림 9) 훈민정음 언해본(1443).

그림 10) 월인천강지곡(1444)


그림 11) 용비어천가(1444)

그림 12) 오륜행실도(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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