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프로- 토탈디자이너 전상일 전상일의 간단한 이력서 1969년 출생. 만으로 28살이라고 우긴다. (당시나이임) 1989년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과 입학. 학과공부가 도움되는점?아이돌스타 음반 디자인할땐 전상일의 냄새가 전혀 안나는 그들의 스타일로 작업한다. 광고디자인 배우며 받은 영향 덕분이다. 1990년 군복무기간 중 자작각본의 뮤지컬 '오토리버스' 대학로 인켈 아트홀서 공연. 관객이 3명일때도 있을정도로 개판이었지만 시도 자체는 한국사회에서 아주 훌륭했다고 자찬한다. 1992년 A&A 광고회사 입사, 이어 실장으로 승진. 학생이었는데, 취업이 철꺽됐고, 실장으로 승진했다. 자기말로는 능력있는 실장이었다네.. 1992년 10월부터 1993년 5월까지 각종 패션쇼 20여개 연출. 처음엔 고생 많았다. 이떻게 하는 줄을 몰라서 두꺼운 콘티를짜서 모델들에게 일일이 설명했다. 그러자 고참 모델들이 담뱃불집어던지고 욕하며 나가버렸다. 원래 패션쇼는 대강의 기획안이 나오면 모델이 알아서 포즈 취하는거란다. 그래도 그 모델, 전상일을 인정해서, 다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1993년 '거울의방' 수필집 출간. 글쓰고 디자인하는건 취미이자 밥벌이다.(이책 어렵게어렵게 빌려서 한번읽어봤는데, 한두번읽어서 해결날것지 않는 난해한책. 매우 얇음에도 불구하고 읽고나서도 뭔지 잘모르는책.-홈지기의 잠시끼어들기였습니다. ) 1994년 음반쟈켓디자인 시작 현재 40개정도했다. 대표작으로는 넥스트, 서태지와아이들. 전람회, H.O.영상집, 박진영, 양파,정원영... 1996년 영화사 신씨네 의 SF영화 회중도시 시나리오 집필 예산부족으로 영화화 보류. 1997년 개인 디자인 사무실 전시공 설립. 넥스트의 음반을 보면 표지에 전시공이라고 써있다. 사장은 전상일이고, 나모지 인원은 프리의 개념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쓴다. 1997년 넥스트 영상설정집 발간. '무라카미류는 도데체'책 발간.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무라카미 류 에 대한 글을 한국의문화적 날라리23명이썼다. 전상일이 말하는 문화적 날라리?'그냥 날라리는 하는일 없이 놀기만 하는 사람이고, 문화적 날라리는 무언가를 만들면서 노는 사람이다!'
넥스트가 긴머리를 휘날리며 해체했다. 교주였던신해철은 영국으로 날아갔고, 광신도 팬들은 아쉬우에 싸인 채 남았다. 그리고 1997년 12월 27일 영상집이 출간됐다. "5천만원들였다. 왜냐면 내가 제작했으니까.물론 던없어서 이곳저곳끌어다 만들었다. 빚내서 만든 셈이다. 아직 재판찍자는 소리는없다. 그래서 쬐끔걱정이다. 왜냐면..내가만들었으니까..." 그렇다. 요즘쬐끔 걱정이다. 처음엔 무진장걱정했지만 이젠 무감각하다. 초판으로찍은 만부가 팔려야만 본전이 된다. 그가 디자인한 H.O.T 영상집은 8만부가 팔렸다. 서태지와아이들 영상집은 5만부 나갔다. H.O.T 영상집이 많이 팔렸으니까 전상일은 돈좀 벌었을까?천만의말씀이다. 전상일은 디자인료만 받을뿐 나머진 기획사의 몫이다. 가끔 술만 사준다. 디자인 잘해줘서 고맙다고..그에겐 술보다 돈이 더 필요한데 말이다. 첫번째 통화: 인터뷰요? 물론좋죠. 어서오세요 두번째 통화:새벽1시다."자고있을텐데 죄송해요. 약속 못지키겠는데요, 워낙바쁜일이 생겨서. 이틀후에 만나죠." 세번째 통화:오후 1시 30분. 완전히 자는목소리다. 약속을 한시간 미뤘다. 아침 10시에나 잠들었단다. 신인그룹 2팀의 자켓 디자인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뷰 끝나고 또 일하러 가야한다. IMF 지만 일이 끊기진 않는다. 단, 액수 깍으려고 하고, 결재가 늦다. 그것외엔 불황타지 않는다. 5월까진 스케쥴이 빡빡하다.. 무보수로 하는일이 많아서 문제지.. 조용원이 기획했던 뮤지컬'백일천사'의 포스터도 무료로했고, 가수 김혜리의 자켓 디자인, 이문세의 뮤직비디오도 부보수다. 왕년에 DDD로 유명했던 김혜리는 소속사와 결별하면서 형편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공짜로 일하기로 했다. 그럼 이문세는? 이문세가 형편이 어렵진 않을텐데...그의 절친한 친구중한명이 뮤직비디오찍는게 소원이란다. 이문세랑 친한 친구는 소원성취를 하게됐지만 놀랍게도 35mm 영화필르으로 찍겠다는 것이다. 이문세왈' 난 뭔지 잘 모르겠고, 어쨋는 자켓 디자인까지 2000만원 예상금액이니까 니 맘대로 해" 결국 예산을 초과해 3000만원을 넘겼고 이 친구는 자신과 친한 사람들에게 무보수로 일해줄것을 부탁했다. 얼떨결에 무보수로 도와주기로 한것이다. 돈 받고 하는일은 패닉3집 자켓디자인과, H.O.T 캐릭터상품 개발 등이다. H.O.T 기획사는 결재가 잘돼서 좋다. "아니 넥스트 영상집 물어보겠다고 하더니 왜딴소리만 해요? 얼렁 넥스트 영상집 이야기 써줘요." 성질도 급하기..그러지뭐.. H.O.T 영상집 만드련서 아쉬웠다. 아이돌스타 영상집은 이쁘게 사진 찍어서 이쁘게 디자인하면 된다. 그러 왕창왕창 팔린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걸로는 도저히 만족 안된다. 이럴경우 전혀 디자인이 메인이 아니다. 메인을 예쁘게 포장하는 개념정도가 디자인이다. 이걸 뒤집고 싶었다. 그가원한 건 디자인이 메인이 되는 책이다. 처음엔 설정집을 만들고 싶었다. 넥스트 쟈켓이 나오기까지 스케치, 메이켕, 배경, 스탭들의 경해, 비주얼 마드는과정등.하지만 설정집은 시장성이워낙 작아서 대중과 타협안을 내놓은게 영상설정이다. "란 제목밑에 뭐가 들어가는지 알아요? 'art of 전상일'이란말이 들어가요. 아니 처음엔 멕스트 사진 나오다 왜 뒤에 전상일이란 애 사진이 나오고 그사람에 관한 글이 나오냐고. 그럼 난 이렇게말해줘요. " 내가 만들었잔아. 내돈으로" 돈없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죠, 해철이형에게 만 부가 팔려서 이익이 남으면 초상권에 대한 돈 주기로 했어요. 다른 스텝들도 마찬가지고. 고로 아직까진 하나도 돈주지 않았죠." 초음에 생가갰던 페이지는 240페이지였는데, 남들이 다 말리는거여. 그럼 가격이 두배로 올라가고 총판에서 아예 물건 자체를 거부한다는거야. 별수있나. 결국 156페이지로 타협봤는데, 초반도 안팔리면 올 1년내내 빚 갚아야 돼요. 한마디로 바보같은 도박이죠. 바보같은짓이 이번 처음은 아니다. 디자인 실장으로 승승장구 하다가 퇴직하고 광고회사를 차렸는데 쫄딱 망했다. 누군가는'어이구 꼴값하네. 그정도 실력으로 무슨 작품집이라고."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력 이?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고 세상에 내놔서 사람들과 문제점을 함께 생각한다는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전상일은 넥스트 영상집 이야기를 많이 써주기를 바란다. 물론약속도 그렇게 햇고, 하지만 워낙 다재다능하고 재능있는 사람이니까 이젠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음반 자켓 디자인 말이다. "떳다" 는 소리를 들으며 매스컴을 장시가기 시작한 건 넥스트의 앨범을 디자인하면서이다. 전상일을 처음 본 신해철은 "나와 같은 사람이군요" 라며 그에게 모든일을 의뢰했고, 2집부터 시작해 해체직전 발표된 7개의 음반을 모조리 디자인했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 전람회. 공일오비, 베이시스 노땐스. 카니발, 최백호, 이미자 등 연간 20여개의 자켓을 디자인했다. 돈과상관없고 재밌고 흐뭇하 맘으로 디자인한 건 서태지의 굿바이 메스트 앨범. 노땐스가 있고, 재미있는만큼 고생한건, 카니발(카니발음반에 수록된 기괴한 일러스트들은 그가 그린 작업량의 5분의 1도 안된다.) 넥스트의 Being, World가 있다. "설사 돈 번다고 해도 돈쌓는 타입이 아니란거 알죠, 빚만 안지면 좋겠어요. 처음에 넥스트 앨범 할때 3일에 완성하고 30만원받았고, 다음 앨범이 20일정도 작업해서 500만원받았아요. 천차만별이지만 대략 400에서 800만원선. 이건 일년전에 책정된거고 그 전엔 200만원 정도 받았죠. 나 부자일것 같죠, 근데 800받는건 일년에 있을까 말까하고, 내작업스타일이 티플레이로 여러명의 사람(사진, 코디, 메이크업 등등)과하고, 안하던거 새롭게 실험해서 항상 적자예요. 이쯤해서, 그를 뜨게 한 넥스트의 앨범을 이야기 하자. 신해철은 작업을 하면서 알게됐다.. 만나자 마자'이놈도 미친놈이구나'란생각이 들었다. 신해철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다. 그의 진보정신을 좋아한다. 뭐랄까 항상 전투적이다. 거마하거나 넘 독선적을 비칠지 보르지만 매스컴이라고 입에 침도안바르고 순한양인척하는건 구역질 난다. 신해철에겐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동지의식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일까? 넥스트 작업을 할땐 광적인 열정에 휩싸인다. 그래서 기획사에서 돈 많이 든다고 광장히 싫어했던 거창한 속지도 싸워가며 만들었다. 바보다. 사서 고생하는..덕분에 CD 내지면이 광장히 많아지는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중 한명으로 지목받는다. 넥스트 앨범의 신해철을 보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도 그럴것이 컴퓨터로 성형수슬을 한다네. 볼에 살?고 똥배는 집어넣고, 다리는 롱다리로 잡아늘리고. 얼굴에 잡티 없애고. 이번 영상집은 눈에 띄지 않는 자연스런 아주 제한적인 성형만을했다. 전체 디자인에 있어서도 예쁘장한 것보다뭔가 힘으로 가득찬 느낌을 주려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카리스마가 있는디자인! "디자인은 데코레이션과 구분되어야 해. 예쁘게 꾸미는것은 디자인이 아니거든. 우리나라는 무언가 새로은 것을 만드는 사람에겐 냉동실같아! 차라리 못살고 엄청난 군부독재의 나라가 더 편하겠어. 최악의 상황은 전투적 저항성을 고조시켜 엄청난 에너지로 승화시키니까. 우리나란 모든게 어정쩡해. 자유주의 를 외치면서 편협하게 해석한 유교적 관습에 얽매이고, 많이 고도화된듯 싶어도 모든게 하면되지뭐. 이런식이다. 하면 되지만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시대거든. 그는말한다. 우리나라 음반 자켓은 미국처러 땡땡하게 멋지지도 않고 유럽처럼 은근히 유머러스한 아트 취향도 아니고, 홍콩처럼 지저분할정도로 요란하지도 않고, 일본처러 얄비울정도로 정갈하지도 ?다고. 일본취향을깔고 미국을 곁눈질하는정도의 어정쩡한 스타일이 우리다. "그럼 전상일 당신은?" "그런말 묻지 마라. 난 그런 질문에 사회적, 전공적 책임을 질 만한 실력도 그런 레벨이냐 경륜도 그럴만한 나이도 아니다. 단지 노력하고있을뿐이다. " 그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단적인 예로 전람회뮤직비디오 3편을 감독했다. 700만원에 16mm 필름으로 한달동안찍었는데, 경험의 부재는꽝으로 연결됐다. 현란한 인공조명과 뽀얀 필터를 거부하고, 컷의 연결도 거칠게했고, 테이크도 길게. 약간은 모산든듯 가슴에 남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 결론? 못만든늣 잘만든다는게 정말 잘만드는 사람이나 할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전상일은 고생을 사서하는사람이다. 자켓 디자인을 할때도 디자인만 띨릉 하는게 아니라, 일일이 콘티를짜서사진 작가한테참견하고, 코디 참견 하는등 자신이 선장이 되어 일을 진행한다. 처음엔 이런 간섭을 싫어하는 사진작가들땜에 충돌도 있었지만. 이젠 잘나간다. 우선 옳은 소리만 하고, 결과가 좋으니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고생 사서 하냐고. 그랬더니 이런 말을 들려줬다. 자신은영화감독이 꿈이다. 영화감독은 모든 걸 책임지고 진행할 줄 알아야 한다. 고로 지금 이 일들이 나중에 영화할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씨네와 시나리오 작업도 하다가 무기한 연기됐다. 그럼 최후의 목표는 영화감독? 그것도 아니다. 영화감독이 직업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감독도하고 디자인도 하고싶다. 이런생각이 든다. 그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걸 싫어하는 살밍다. 그래서, 글도쓰고, 디자인도 하고, 뮤직비디오도찍고 영화감독을 꿈꾼다. 아마, 세월이 흐른 후엔 지금과 또 다른 모습으로서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의 시잔이 지난 후에 다시한번 그를 인터뷰 해야겠다. -la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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