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다'는 혹평과 '정리해고'당한 끝에 성공 "'마시마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객기를 부리며, 뒤돌아서서는 뒷북도 치는 캐릭터입니다."('마시마로 숲 이야기' 아트디렉터 장미영씨)
▲ 마시마로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흰 토끼 한 마리가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을 휘젓고 있다. 머리와 몸통의 크기가 같은 2등신(等身)에 선으로 표현된 눈. '엽기토끼'로도 알려져 있는 마시마로(www. mashimaro.co.kr)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은 물론이고 인형과 액세서리로 출시되어 팬시가게와 번화가, 대학가 등지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마시마로가 빛을 보게 된 데는 원작자인 김재인(24)씨와 아트디렉터 장미영(30)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마시마로의 탄생은 지난 99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씨가 몸담고 있던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홍보용 CD롬에 수록될 게임의 배경작업을 할 사람을 뽑았는데, 당시 대학(공주문화예술대학 만화창작과) 휴학 중이던 김씨가 채용됐다. 이렇게 해서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던 두 사람이 같이 일하게 됐다.
"제가 팀장, 김재인씨가 팀원으로 있던 콘텐츠팀은 유아를 위한 교육용 콘텐츠 개발회사로부터 캐릭터를 개발해 달라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인씨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토끼였습니다." 장씨는 “다만 지금보다는 날씬했고 몸체에 명암 효과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캐릭터는 의뢰 업체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지 않느냐. 유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눈도 크고 팔다리도 길어서 동작을 취하면 의사 전달이 확실히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게 이유였다.
"재인씨가 개발한 캐릭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카툰과 풀 애니메이션의 중간 형태인 플래시(Flashㆍ미국의 매크로미디어사(社)에서 제작한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의뢰업체에 "너무 단순하다" 퇴짜 맞아
김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두 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달여 기간을 거쳐 제작이 완료된 시점은 작년 7월. 이 작품을 회사의 이사에게 보였으나 거절당했다. “‘콘텐츠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기존에 없던 만화 장르이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고 말씀드렸는데 ‘재미없다’고 하시더군요.”
그후 구조조정으로 회사에서 해고된 두 사람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생계를 걸기로했다. 10여군데 인터넷 만화웹진에 작품을 보낸 끝에 작년 8월부터 ‘엔포넷(www.n4.co. kr)’을 통해 ‘마시마로 숲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장씨는 작년 여름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만 해도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간단한 동영상으로만 간주되었습니다. 전문성을 지닌 작품이 나오지도 않았고, 그런 만화를 제작해 돈을 번 사례도 없었고, 작가들도 아르바이트감으로만 여겼지 ‘이것만 해서 먹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어감 때문에 흔히 일본산 캐릭터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마시마로는 순수 토종 작품이다. 설탕과 시럽으로 만드는 과자의 일종인 ‘마시맬로(marshmallow)’를 장미영씨의 유치원생 조카가 “마시마로”라고 발음한 데서 착안,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본명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엽기토끼’라는 별명에 대해 제작자 본인들은 거부감을 나타낸다. 장씨는 “마시마로가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엽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며 “발음상 ‘엽끼토끼’로 ‘끼’와 ‘끼’가 반복되는 것이 재미있어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위기가 온 것은 연재를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되어서였다. 자신들의 작품이 실제로 인기가 있는 줄 몰랐을 때였다. “세번째 이야기인 ‘달에서 방아찧는 이야기’까지 나온 상태였어요. 한국 시장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만화가 먹히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죠. 더 이상 제작을 그만두고 각자 취직을 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엔포넷측과 의견 조율 끝에 연재를 계속하게 됐고 김씨는 작품에만 다시 전념하기 위해 삭발을 하기도 했다.
한편 네티즌 사이에서는 마시마로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졌다. ‘곰의 식사를 빼앗아 먹으며 이마로 병을 깨거나, 달의 방아찧는 토끼 모습을 양변기 청소하는 것으로 해석해 낸’ 마시마로의 플래시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고, 이메일에 첨부해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웹상에서 마시마로의 팬클럽이 생겼고, ‘엽기토끼’는 검색엔진에서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 '마시마로 숲 이야기'를 만들어 낸 두 주역. 원작자 김재인(왼쪽아래)씨와 아트디렉터 장미영씨. 장씨는 마시마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타깃이 '중학교 3학년부터 20대 초반'까지라고 말했다. “웹을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유행에 가장 민감한 연령층이기도 하죠. 이 세대에게 ‘어필’하면서 하나의 문화적 화제나 스타일을 창조해 나가게 되면 다른 연령층에서도 호응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단지 캐릭터들이 귀엽고 배경이 아름다워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작품에는 은유가 많이 섞여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관념 같은 것을 깨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장씨는 “마음에 안드는 것을 떠들고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약간 반항기가 있다”며 웃었다.
마시마로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여러 팬시업체에서 상품화 제안을 해왔다. 김씨와 장씨는 이중 ‘승현 인터내셔널’과 작년 10월 계약을 했다. 이 회사는 마시마로의 저작권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갖고 우선 마시마로 인형을 생산해냈다.
승현 인터내셔널의 최승호 대표는 "스토리나, 캐릭터, 캐릭터의 성격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마시마로의 사업성이 있겠다고 판단했다"면서 “캐릭터사업이 성공하려면 최우선적으로 인형이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시마로 인형은 지난 2월 10일 3000개가 처음 출시되었는데 1주일만에 다 팔려나갔다. 지금까지 인형만 50만개 이상이 팔려나갔으며 매출액이 약 2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 최 대표는 “하지만 시중에는 모조품이 더 많이 유통되고 있다”며 “국산 캐릭터 보호 차원에서 동부지검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인기를 가장 크게 실감했을 때를 인형이 처음 제품화되어 나왔을 시점으로 기억한다. 인형이 실제로 판매되는 것을 봤을 때 너무 좋아서 김재인씨와 둘이서 인형을 사서 종로 거리를 왔다갔다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중에 모조품 인형이 더 많이 유통
제작 과정에서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는 두 사람이지만 역할 분담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 김재인씨는 기본적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실제 플래시 애니메이션 제작작업을 한다. 그 아이디어를 조율하고 조정해 구성적인 면에서 완성도 있는 만화를 포장하는 것은 장씨의 일. 국민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장씨는 캐릭터 라이선스와 관련한 디자인 부분도 총괄하고 있다. 현재 공주문화예술대학 만화창작과 2학년인 김씨는 학업과 다음 작품의 제작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는 상태다.
장씨는 "마시마로는 대충 슥삭슥삭 그려내는 작품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래시 제작에 들어가면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항상 컴퓨터에 매달려서 작업할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수십번 보기도 하고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하고 둘이서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인기와 비례해서 작가가 받는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장씨는 “김재인씨가 작품 때문에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고민을 한다”고 했다. 지난 2월 이후로 소식이 없는 마시마로 플래시 동영상의 후속편은 6월 중 나올 예정.
"사실 지난 3개월 동안 작품을 구상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제품이) 처음 나오느니만큼 재인씨와 저 둘이서 제품 디자인을 직접 하거나 남이 해온 것을 일일이 체크해야 했죠. ‘마시마로 숲 이야기’의 분위기에 맞는 디자인이 제대로 나올 때까지요."
마시마로를 따로 '셀(cell)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는 김재인씨의 손맛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장르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장씨는 캐릭터 제품의 수출뿐만 아니라 플래시 작품 자체로도 해외로 진출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시마로를 외국의 사이트에 연재해서 외국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요. 아직은 국내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좋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나오면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자연스럽게 새 문화장르로 정착해 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허수용주간조선기자 : milky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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