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님 신혼여행기사. 희열님 부인되시는분이 쓰신글









(다방에서 임동희님이 올리신글 퍼왔습니다)

MY LITTLE LOVER, TAHITI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운 고갱의 섬, 타히티. 얼마 전 이곳에 공연 기획자 이상은이 프라이빗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타히티라서 가능한, 가장 게으른 8박 9일의 여정. 그녀만의 독특한 여행의 기록.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 노을 지던 발리의 하늘, 커피 향 가득했던 마레의 노천카페, 습기 가득한 7월의 스페니시 계단. 그러나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날 닮은 웃음과 몸짓과 말투로 그 풍경 안에서 내 옆을 항상 지켜주는 남자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안고 돌아오는 일.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여행을 사랑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신혼여행을 이 칼럼의 첫 단추로 선택했다.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뭐, 누구에게나 신혼여행은 특별할 테지만, 저 멀리 타히티까지 다녀와서 좋았다는 뻔 한말은 아니다. 기형적으로 휘어진 야자수들, 잔인할 정도로 인상적인 바다, 나의 여행 동지인 남편이 있었기에 이전보다 더 완벽했던 여행이었다. 읽는 이들에게는 이 여행 이야기가 좀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처음 써보는 서툰 글이니 너그럽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 글에 등장하는 글쓴이 본인은 메구고, 내 남편은 방구다. 우린 서로를 이렇게 부른다. 원래 사랑에 빠진 사람은 유치하다고 셰익스피어도 말하지 않았나.
이 칼럼의 타이틀로 삼은 ‘my little lover’는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일본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언젠가 돈을 모으면 이 이름으로 작은 와플집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생각해보니 타히티 역시 어느새 ‘내 작은 사랑’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아마,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타히티, 타히티다.
“방구! 우리 출동 세트는 어디다 뒀지?”
“메구! CD는 뭐뭐 가져갈까?”
“고추장 없이도 되겠어?”
“우리 유럽에서 산 그 커플 티셔츠는?”
결혼식을 마친 후 새벽 3시경의 우리의 대화다. 들뜬 기분에 우리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도 아니다.
‘설정’과 ‘컨셉트’에 누구보다 민감한 우리는 신혼여행용 야들야들 속옷에 ‘이런 짐승!’ 소리가 나올 만한 몇몇 아이템들을 무도용이 아닌 유머용으로 챙겼다. 그리고 비행기 티켓. 익숙한 운동화. 아껴둔 향수와 달콤한 보사노바 CD들. 그리고 둘만의 여행 가방이 건조한 내 일상에 색을 칠한다.
우린 연애하던 기간에도 여행 때마다 붙어 다녔다. 덕분에 각자의 역할과 패턴까지 생겼으니 ‘남철·남성남 코미디언 커플’ 보다 더 척척이다. 함께 타센(Tacshen)의 호텔북 시리즈를 훑은 다음 다시 인터넷으로 사진들을 검색한다. 제일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내 동선을 재고 따져보고는 이내 계산기를 집는다.
이 가지 저 가지 쳐내고 나니 드디어 하나가 물망에 오른다. 고갱의 그림, 영화 <러브 어페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왔던 파라다이스, <에브리원 세즈 아이러뷰>에서 우디 앨런이 여자 꼬이기 마지막 단계의 키워드로 꼽았다고 방구가 늘 부르짖던 환상의 섬, 보라보라! ‘좋았어! 신혼여행은 여기지.’ 당첨이다. 박수까지 쳐대며 좋아했다. 도시여행을 계획할 때는 실용 정보에 더 솔깃할 때가 많지만 휴양지는 멋들어진 사진 한 컷에 반하게 마련이다. 오랫동안 나에게 보라보라 섬은 고갱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허리 꺾인 야자수였다. 정말 그 섬에 그런 기이한 나무가 존재하는지, 가끔씩 미치도록 궁금했으니까. 작은 규모의 프라이빗한 숙소 사진 역시 쉽게 포기가 안되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규모가 너무 크거나 부대시설이 화려하면, 전 세계 게으름 커플 1위 자리도 마다 않을 우리로서는 이용도 다 못할뿐더러, 공짜와 혜택을 우선시하고 최대의 숙소의 뽕은 다 뽑아야 한다는 우리의 ‘휴양지 룰’에 위배된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방구는 외국인이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다가와 ‘하이’하고 말 걸어오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는 거다. ‘왜 남의 의사도 무시한 채 멋대로, 그것도 영어로 말을 거냐고. 이해할 수가 없다’ 며 진지하게 글로벌주의의 폐해에 대해 얘길한다.
‘메구 계산기!’ 현실의 파트가 남았다. 며칠을 머물 것인지를 정하고 환산을 해가며 몇 번을 두드린다. 비상! 예산 초과다. 시차를 확인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호텔에 직접 전화하는 일은 여행준비의 필수 코스! 운이 좋으면 상품으로 나와 있지 않았던 꽤 괜찮은 ‘스페셜 오퍼’를 얻을 수가 있다. 일단 만족할 만한 예산에는 근접했다.
오! 보라보라
드디어 보라보라로 출발! 아직까지 직항편이 없어 오클랜드를 경유해 타히티로. 거기서 반박을 한 후 경비행기를 타고 보라보라로 이동해야 한다. 비행시간이 길어 좀 피곤했다. 타히티에는 늦은 밤에 도착해야 하는 바람에 주변을 살피기엔 이미 너무 어두워져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경비행기를 타고 40여분을 날아 아담한 보라보라ㅗ 공항에 도착. 햇살부터 예사롭지 않다. 신혼여행인지 밀월여행인지 모르겠으나 주변엔 온통 커플 투성이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공항에 각 호텔의 리셉션 요원들이 일렬로 서서 손님을 반긴다. 우리 숙소였던 ‘인터컨티넨탈 비치콤버(Intercontinental Beachcomber)’의 뚱뚱이 아가씨가 ‘프로투’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낯익은 이름표를 들고 기다린다. 본격적인 휴양지 대우다. ‘티아레’라는 꽃으로 엮은 목걸이 증정식과 사진에서 봤던 그 환한 웃음. 여기부터는 보트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각 호텔의 고유번호가 적인 보트가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 다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간다. 가는 내낸 물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참고로 보라보라를 여행할 일이 생긴다면, 꼭 사진을 많이 봐두고 가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면 눈을 의심할 테니까. 자연이라고 이해하고 넘기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다. 드디어 도착, 역시 똑같은 복장을 한 뚱뚱이 아줌마다 우리를 맞는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섬 바람을 즐기고 있으니 알아서 다가온다. 같은 배로 도착한 일행을 이끌고 호텔의 부대시설과 식당 위치 등에 대해 설명해 주고는 각자의 방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맨 앞에 섰다. 떨린다. 수상 방갈로인 15번방. 미니 서재 같은 마루 한가운데에 바닷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투명 유리판이 보인다.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침대 옆 통유리, 그리고 바다로 바로 뛰어들 수 있는 1층 데크. 음, 2층에는 둘이 마주 앉을 수 있는 붙박이 테이블도 놓여있다. 방구도 신이 났다. 와락 껴안았다. ‘나 잘할게!’ 흥분이 가시기 전에 방을 나섰다. 도착 후 커피 한잔. 우리의 익숙한 동선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허리 꺾인 야자수들을 보았다. 내가 그렸던 보라보라! 바라보며 글도 쓰고 바라보며 얘기도 하고 바라보며 해도 맞는다. 난 진정 행복한 신부다.
휴양지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바다건만 여기선 왜 이렇게 다 신기하기만 한지... 빛깔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잔인하게 맑은 바다 빛깔 때문이다. ‘당장 수영하자!’ ‘좋았어!’ 그날 밤은 길었다. 가져갔던 ‘그레고리안 찬트’CD를 틀어놓고 나란히 누워 아무 말이 없었다. 뭔지 모를 감격에 콧날이 시큰해지는 깊고도 평화로운 새벽. 뜨는 해를 맞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는 우리가 1등이었다. 감상도 좋지만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파라다이스 카페
보라보라 섬은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지는 곳이다. 아침 7시면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하고 오후 3시만 되어도 주섬주섬 걸칠 옷을 찾기 바쁘다. 덕분에 부지런해야만 뽕을 뺄 수 있다. 아침 식사며 모든 액티비티 프로그램은 6시 30분부터 시작. 우리는 주로 오전에는 방에서 오후에는 해변에서 시간을 보낸다. 브로슈어를 받아 들고 하나한 방구에서 설명해주었다. ‘상어 먹이주기’ ‘가오리와 물놀이하기’ ‘낙하산 보트타기’ ‘열대어 들여다보기’ 등. 한글로 풀어 읽으니 모든 게 놀이가 아닌 생체실험 같다. 오해가 없기를... 우린 종종 이런 말장난을 하며 깔깔대곤 한다. 나이와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가장 안전해 보이는 것 하나만 하기로 했다. ‘상어 먹이 주기’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바다로 한참을 나간다. 물 안에 로프를 쳐 놓을 테니 다들 일렬로 로프를 잡고 있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캡틴이 죽은 꽁치 비슷한 것들을 연신 바다로 던져대니, 바닷 속에서 뭔가가 하나 둘씩 모여든다. 영화에서나 보던 오색찬란한 물고기들(횟집에서 본 듯한 못난이들도)과 상어 4마리. 머리를 담그고 그들을 보고 있다. 몸은 굳은 채로. 나 수영도 잘하는데, 모험심도 꽤 있는데, 힘도 제법 센데... 반면 방구는 신이 났다. 한 마리라도 놓칠세라 수경 안의 눈동자가 바쁘다. 그 다음은 ‘가오리 먹이주기’ 시간. 그 날 이후 난, 지구가 멸망하는 날은 가오리 떼가 덮치는 날이라고 확신했다.
  스노클링 세트, 카약, 윈드서핑은 무료로 대여가 가능하니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우리는 2인용 카약을 타고 빵 부스러기를 던져가며 물고기 떼를 따라다닌다. 스노클링 세트와 오리발은 항상 빌려다 놓는다. 방안의 데크에 나가 선탠을 하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땐 바로 풍덩하고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한다. 오후 시간엔 미리 챙겨온 잡지와 근처 마켓에서 사다 놓은 음료수들을 챙겨 해변가로 나간다. 프랑스령이라 그런지 물가가 비싼 편이어서 매번 음료수와 커피를 시켜 먹는 건 무리다. 첫 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사다놓은 간식들 덕에 우리는 오는 날까지 그럭저럭 잘 버틸 수 있었다. 4시 정도면 들어가 씻고 막간을 이용한 휴식을 취한다. 저녁은 뭘 먹을까. 비치 콤버 리조트는 다른 숙소에 머무는 이들도 일부러 찾아와 먹고 갈 정도로 음식 맛이 뛰어나다. 6일중 3일 저녁을 이 곳에서 해결했는데 예상대로 다 성공. 참고로 샴페인은 한국에 비해 싼 편이다. 특별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아침에 각 방마다 전단을 돌린다. 마침 화요일 저녁 ‘전통 댄스와 함께 하는 바비큐 파티; 가 있다하여 7시가 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곧 시커멓고 단단한 남자들이 나와 전통 댄스를 C고 불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댄서들이 테이블을 돌며 남자들을 착출해간다. 방구도! ‘이건 아니다 ’ 싶었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 같아 웃으며 뒷모습만 바라봤다. 20명쯤 쭉 세우더니 윗도리를 벗으란다. 가슴에 털이 무성한 서양 남자들 사이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동양 남자가 서 있다. 시커먼 댄서가 바윗돌을 들며 시범을 보이더니, 한사람씩 나와 들라고 한다. ‘웬 원시인 놀이야’ 하고 싶었으나 신혼여행객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남자의 힘을 과시하는 게 늘상 주제였던 듯. 내 가슴은 반쪽이다. 못 들까봐 걱정 반, 다칠까봐 걱정 반. 아직까지는 실패자가 없었다. 왜 이리 남의 남자들은 다 크고 세 보이던지. 카메라를 들고 앞에 나가 무의식적으로 찍어대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방구와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다. 그날따라 우리 방구가 많이 곱다. 드디어 방구 차례. 사람들도 내 맘을 읽었는지, 큰 박수와 인류애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와~’하고 외쳐준다. 방구의 신음소리. “우웨~~.” “쿵!” 해냈다! 박수와 환호가 2배다. ‘오예 오예, 우리 신랑 최고!’ 그날 밤 바위를 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동양소년은 해맑은 미소를 띈 채 깊은 잠에 빠진 듯 했다.
한 여름 밤의 꿈.
떠나기 아쉽다. 바다도, 방도, 야자수도, 매일 마주치던 사람들마저도. 가슴에 잡힌 물집이 몇 주는 갈 듯하다. 떠나기 전, 리조트 주변의 마을들을 탐색했다. 자전거를 빌려 동네도 한 바퀴 돌아보고, 시내도 한번 나갔다오고, 소년들이 축구 시합을 하고 동네 여인들이 춤 연습을 하는 해변가에 앉아 소녀들의 숨바꼭질 놀이를 지켜봤다. 이곳 바다와 하늘, 대지와 바람엔 소박하면서 원시적인 향기가 묻어난다. 그리고 이 완벽한 풍경의 완성은 이곳 사람들의 미소로 마침표를 찍는다.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사진기만 들면 서로들 앞에 나와 환하게 웃으며 폼을 잡는다. 의사소통이 무의미하다. 마음에 벽을 쌓지 않은 그들의 손짓 발짓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보라보라 섬의 주인은 자연 그 자체다. 에메랄드 빛 투명한 바다와 작렬하는 햇살. 매번 머리카락을 헝클던 훈훈한 바람. 우리는 주연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나간, 수줍은 조연이었을 뿐이다. 모든 게 한여름 밤의 꿈만 같다. 내일이면 그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데...‘우리가 여기 다시 올 날이 있을까?’ 몇 번을 되묻는다.

 

 

mamirine 2005/11/15 18:55
멋있다.
이렇게 멋있어야만 그만한 신랑을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좌절스럽다 ㅜ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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