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여행기 - (15) 다이칸야마

이번 글은 다이칸야마(代官山)를 둘러본 이야기.

 

다이칸야마는 시부야에서 전철 한 정거장으로 가깝고, 에비스에서도 대략 그 정도 거리다.

우리의 참고문헌(아이 러브 도쿄)에 따르면 동경의 패션 거리 중 하나란다.

 

지유가오카-다이칸야마 모두 도큐토요코센 노선에 있기 때문에,

지유가오카를 둘러본 우리는 금방 다이칸야마로 갈 수 있었다.

 


 

 

 

다이칸야마의 지도는 아래와 같다.

우리는 역 북쪽을 주로 다녔는데, 쇼핑 포인트는 역 남서쪽에도 꽤 있다.

 

먼저 지도에 표시된 곳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우리가 다녔던 곳.
붉은 색은 물건을 샀던(혹은 뭔가 먹었던) 곳이고 파란색은 안 산 곳이다.
 
이름 및 아이템은 다음과 같다.
 
ⓐ 익스베리(exberry) - 악세사리, 팬시
ⓑ 와플스(Waffle's) - 와플 및 차 종류
ⓒ 로리즈팜(Lowry's Farm) 다이칸야마점 - 여성 의류
ⓓ 아토 바그 도(Art berg do) - 캐주얼 가방
 
ⓔ 비바 서커스(Viva Circus) - 신발
ⓕ 팝튠 도쿄(Poptune Tokyo) - 잡화
ⓖ 아쿠아 걸(Aquagirl) - 여성 의류
ⓗ 팔라스 팰리스(PAL'LAS palace) - 남성/여성 의류
 
 
 
 
다이칸야마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4시가 좀 되지 않아서였다.
역 정면 입구(세멘구치: 正面口)의 코인 록커에 짐을 넣고 출발하였다.
 
다이칸야마에 대한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으므로 우리가 믿는 것은 참고문헌 뿐이었다.
 
가장 먼저 간 곳도 아이러브도쿄에 나온 신발 가게인 비바 서커스.
디자인과 소재가 괜찮다고 했다. 마침 송졍이 여름 샌들을 사고 싶어했기 때문에 얼른 갔다.
 
듣던 대로 신발 디자인은 좋았으나 물건이 별로 없었다.
한여름인데도 샌들 종류는 세 가지뿐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격도 싸지 않았고.
개중에 가장 맘에 드는 걸 신어보더니 송졍이 가죽인지 물어봐달란다.
(택에도 소재가 안 나와있었다.)
 
이런... 근데 가죽이 일어로 뭐냐. --;;;
 
점원에게 물어보니 레쟈- 라고 하는데... 이게 진짜 가죽인지 우리말처럼 가짜 가죽인지...
진짜였든 가짜였든 너무 비쌌기 때문에 대충 얼버무리고 나왔다.
 
 
 
가게를 나와 하치만도리(八幡通り: 위 지도상의 대각선 큰길)를 따라 걸었다.
다이칸야마의 상징물이라 알려진 야자수 모양의 구조물이 보였다.
 

 
다이칸야마를 소개하는 사진에 꼭 나오는 야자수 구조물 앞에서.
무지 더운 여름날의 늦은 오후였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날은 30도가 넘어 무지 더웠더랬다.
시원한 찻집에 앉아 쉬고 싶어서 아이러브도쿄 책에 나온 와플스라는 가게에 가려 했다.
 
그러나 지도상에 표시된 곳에 가보니 그 가게가 없었다!
 
30분을 넘게 찾아봤지만 결국 포기하였다.
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는 데는 꽤 자신있는 사람인데... 지도가 틀린 게 분명했다.
나름대로 많이 팔렸을 책이 지도가 틀리다니...
 
그러나 이 틀린 지도 때문에 고생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에 간 곳은 다이칸야마 어드레스(Daikanyama Address) 내의 가게였다.
 
다이칸야마 어드레스는 역 서쪽에 위치해 있고 주상복합 아파트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상복합과는 달리 건물의 높이가 좀 낮고, 대지가 건물에 비해 넓었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고급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브도쿄 책 역시 이곳 내의 몇 군데 가게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중 익스베리, 어나더 베이비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 두 곳 역시 지도에 잘못 나와 있었다!!!
그래도 다이칸야마 어드레스라는 곳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어찌어찌 찾기는 했지만.
 
 
 
첫번째로 간 곳은 잡화-팬시점인 익스베리.
악세사리가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많이 찾는다고 하여 들러보았다.
 

 
익스베리의 모습.
가방, 모자 등의 소품이 많다. 우산도 보인다.
 
 
여자들 악세사리를 저렴한 가격에 파는 곳이었는데, 우리나라의 악세사리점과 거의 같았다.
물건의 질도, 드나드는 사람도, 대부분 구경에 열심인 것도.
 
우리나라에서 파는 악세사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렇다고 물건이 그리 좋지도 않아서 악세사리 종류는 사지 않았다.
 
다만 내일 비가 온다는 이야길 들어서 초미니 우산을 하나 샀다.
 
 
 
이것이 익스베리에서 산 초미니 우산. 1회용 라이타 두 개 반 정도 길이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샀다.
 
 
 
다음에 들른 팔라스 팰리스라는 곳은 자연 염색/일본 전통 스타일 아이템을 파는 가게였는데,
선물용으로 좋은 아이템도 많다고 하여 들렀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물로 주든 우리가 쓰든...
책의 가격 기준이 우리의 그것과 차이가 너무 큰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지도만 틀린 게 아니라 가게 정보도 믿을 수가 없구나...
 
 
다음에 가려고 한 곳은 아쿠아 걸이라는 옷가게.
위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 다른 가게와는 좀 멀다. 하치만도리를 따라 좀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다는 독특한 아이템이 많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웬걸. 아이러브도쿄의 지도에 표시된 곳에는 가게가 없었다!
 
 
다시 하치만도리를 걸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송졍은 다리가 너무 아파 주저앉아버릴 것 같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도 날씨가 더워 짜증이 났고... 지도를 그지같이 만들었다며 짜증을 냈다.
 
근처의 팝튠 도쿄라는 잡화점을 둘러봤으나 별로 좋은 물건이 없어 패스.
(역시 아이러브도쿄에 나온 가게였다.)
 
 
다시 아쿠아 걸을 찾아나섰다.
그래. 오기로라도 찾고야 만다~!!!
 
송졍이 다른 가게에 물어보라고 하여 두세 군데 가게에 물어물어 결국은 찾았다.
 
그러나 아쿠아 걸에 들어간 우리는 맥이 빠져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옷 한 벌이 10만엔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당시 환율로 80만원 가까이 된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다녀보고 나서야 책에 나온 정보와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러브도쿄'를 믿을 수가 없었다.
 
 
 
걷느라 지친 우리들...
이제는 아예 책에 나오지 않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시부야 방향 도큐토요코센 철로를 따라 난 길을 내려가보니,
길을 따라 작은 옷가게, 잡화점이 여럿 있었다.
 
여기서 문득 와플스 생각이 났다. 혹시 이쪽 방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역시... 그랬다. 지도가 틀렸던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틀렸는지는 이 글 마지막에 쓸까 한다.)
 

 


 
고생 끝에 찾아내고야 만 와플스.
송졍 뒤에 보이는 것처럼 조용한 골목에 위치한 가게였다.
 
 
와플스는 길에서 약간 벗어난 골목에 있었다.
일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계단과 비탈이 같이 있는 골목길.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갈 수 없는 그런 가게였다.
 
안에 들어가 와플, 오렌지 쥬스,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으면 그 때 와플을 구워내는 곳이었기에 마실 것이 먼저 나왔다.
 

 
와플스의 아이스커피(아이스라떼였나;;).
커피와 우유의 그라데이션이 눈에 띈다.
 
송졍이 보고 있는 책이 바로 우리를 골탕먹인 아이러브도쿄
 
 
 
사실 나는 와플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학생들이나 먹는 간식거리...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다.
 
이런 부류의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떡꼬치나 쫄면이다.
말하자면 값싼 재료로 대충 만들고 영양가는 거의 없는 음식이라 하면 될까.
이런 걸 먹으며 다니는 여학생들이 여고 주변에는 정말로 많다.
 
그러나 여기 와플은 달랐다.
 

 
갓 구운 와플. 계피가루가 뿌려져 있고 생크림도 있다.
단 맛 나는 메이플 시럽이 따로 나와서 와플 위에 조금 부었다.
 
 
 
여고 주변의 와플은 오목한 네모가 작고 얕으며, 전체적인 두께도 얇다.
그래서 손에 들고 다니기 좋고 바삭하다.
 
그러나 여기 와플은 큼직큼직해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
계피가루와 메이플 시럽도 제법 잘 어울렸다. 맛이 좋았다.
 
하나 아쉬운 점은 여름이라서... 더웠더랬다. 겨울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듯.
아.... 다시 한번 가보고 싶구나.
 
참. 하나 더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우리 테이블 뒤에 앉은 손님도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는 것;;;;
 
 
 
단 것 먹고 힘을 낸 우리들은 길가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가게의 대부분은 중고 옷가게였다.
그러나 중고니까 싸겠구나.... 하는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세월의 때와 사용감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것들이 몇천 엔이라니... 쩝.
 
에구. 다이칸야마에서 쇼핑은 글렀구나... 하며 그 길가의 마지막 가게로 들어갔다.
거기가 바로 로리즈 팜(Lowry's Farm) 다이칸야마점이었다.
 
여자 옷을 파는 곳이었는데 무채색 계열로 단촐한 옷들이 많았다.
단품으로 입기보다는 겹쳐 입으면 이쁜 것들이었다. 옷 만듬새도 깔끔하고 소재도 좋았다.
 
게다가 상의가 긴 옷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옷은 상의가 짧은 게 대부분이라 키가 큰 송졍에게는 잘 안 맞았더랬다.
여기서 몇 개 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제부터는 옷을 고르고 입어볼 시간. 불행히도 남자는 이 때 할 일이 없다.
(그리고 이런 여성복 매장에서는 좀 쪽팔리기도 하다.)
 
송졍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점원에게 로리즈 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20대 초중반 여성을 타겟으로 하고... 백화점에 많이 들어가 있는 브랜드란다.
 
그 때는 '음. 그런가...' 하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와서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구매대행까지 해서 입는 브랜드라더만. --;;;
 
뭐 그렇게 여러 벌을 몇 번이고 입어가며 고른 끝에...
특가품으로 팔던 회색 줄무늬 반팔 티, 이중구조 민소매 니트, 쉬폰 가디건을 샀다.
각각 1000엔 근방이었으니까 세 벌 다 해도 3만원이 좀 안되었으니...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겠구나.
 

 
로리즈 팜 다이칸야마점 앞에서.
솔직히 이렇게 입혀 놓으니 사람이 달라보였다. --;;;
 
이 날 이후 송졍과 나는 로리즈 팜이란 브랜드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 가을 센다이에 갔을 때도 여기 옷을 사왔더랬다.
 
 
 
위에 사진을 보면 눈치챘겠지만... 이제 해는 져서 밤이 됐다.
우리도 슬슬 다음 목적지에 가기 위해 역으로 가야만 했다.
 
역으로 가는 길에도 빈티지 샵이나 옷가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옷도 살 만큼 샀던데다 힘들어서.... 눈으로 슬쩍 보기만 하며 지나갔다.
 
 

 
목이 길어 슬픈; 마네킹.
다이칸야마 역으로 가는 길가의 한 가게에서.
 
 

 

역을 20~30미터쯤 앞두었을까. 문득 옆에 가방 가게가 눈에 띄었다.

간판도 없는 가게였는데 일본 와서 가방은 못봤으니 그냥 구경이나 해볼까... 하여 들어갔다.

 

매장은 좁고 천장도 낮았다. 가방은 그럭저럭 적절히 디스플레이해놓고 있었지만...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구멍가게에 물건 대신 가방을 놔둔 느낌이랄까.

 

얼핏 보니 캐주얼 가방이긴 한데...

남자 것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여자 것도 아닌 것이... 뭐 독특했다.

 

보세 물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나름 브랜드는 있는지,

가방마다 'art berg do'라고 붙어 있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남자 점원이 다가오더니 이리저리 설명을 해준다.

우리 가게 가방은 '유니섹스' 에요. 음... 그렇구나. 그러니 독특할 수밖에.

 

송졍과 우리말로 몇 마디 했더니 점원 녀석이 눈치를 깠나보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고 물어보기도 하고 (되지도 않는)영어를 섞어서 설명하기도 한다.

물건 좀 팔고 싶구나... 기특한 녀석.

 

가게 한구석에 특가 코너라고 9800엔에 파는 것들이 몇 개 있었다.

보세 주제에 가격은 꽤 세네... 하고 생각했다. --;;;

 

문득 옆으로 매는 가방이 하나 눈에 띄었다. A4 파일을 세로로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가죽 느낌이 났으나 가벼웠다. 잘 보니까 주머니 입구 부분만 가죽으로 되어 있었다.

 

이 정도 크기나 무게라면... 카메라 가방으로 쓸만하겠구나.... 싶었다.

쓰고 있던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송졍도 맘에 들어했다. 부담갖지 말고 사란다.

 

그래도 아무리 특가라지만 9800엔은 조금 비싼 감이 있다. 그냥 사기는 쬐끔 아까운데...

에라 모르겠다. 말이나 걸어보자.

 

저기... 좀 깎아주면 안되나요?

 

예상외로 점원 녀석이 현금 주시면 10%정도는 해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아싸~!!!!

 

 

 

그렇게 산 가방이 바로 이것...은 아니고 거의 같은 디자인이다.

(내 것은 뱀피무늬가 아니라 아크릴 천으로 되어 있고, 주머니 뚜껑은 검은색 소가죽이다.)

 

전통적인(?) 어깨에 메는 가방과 달리 가방끈이 가방 뒤에 달려 있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기가 무척 편하다.

 

메인 공간 외 가방 앞에 두 곳, 가방 뒤에 한 곳, 가방 속에 한 곳 수납 공간이 있어 편리하다.

거의 매일 메고 다닌다. 평소에는 카메라를 넣어 가방이 불룩해져 모양은 좀 안 산다만.

 

 

 

나중에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art berg do'에 대하여 검색해봤다.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는 브랜드이고 사람들의 평가도 좋더라. 왜 나는 보세라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이칸야마의 그 가게가 전국에 몇 개 없는 '직영점'이라는 거였다.

 

그럼 나는 직영점에서 물건을 깎았단 말인가... --;;;

 


 
Art berg do 다이칸야마점 앞.
사진 왼쪽에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상대한 점원이다.
 
간판도 안 달린 가게가 직영점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동경에 또 갈 일이 있다면 다시 들러보고 싶다.
 
 
 
다이칸야마 역 벤치에 앉아 시부야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아.... 정말 힘들었다. 잘못된 책 때문에 줄창 고생하고...
 
그래도 이 모든게 다 추억이 되지 않겠나.
 
 
 

 
도큐 시부야역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것이 우리가 타고 온 열차다.
 
밤의 시부야는 동경에서 외곽으로 돌아가는 사람으로 붐볐다.
저들도 우리도 꽤나 지쳐 있었다.
 
 
 
다음은 동경만 앞의 인공섬인 오다이바에 간 이야기를 할까 한다.
긴긴 셋째날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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