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디자인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가?

정말 디자인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가?


유감이다. '나의 일을 좋아하는 몇가지 이유'의 제하 글은 큰 실망감과 상실감을 안겨주기 충분한 글이다. 난 크게 분노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1. 정말 디자인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천차만별로 정의를 내린다고 하여도 디자인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판단이 아닌가.

 

빅터 파파넷의 디자인 정의를 들어보자.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이다.인간이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모두 디자인이다. 왜냐하면 디자인이란 모든 인간 활동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목표를 항해 계획하고 정리하는 모든 행위는 곧 디자인 프로세스를 의미한다. 디자인만을 따로 분리시켜 디자인을 디자인 자체로서만 존재하게 하려는 모든 시도는 삶의 가장 근원적인 모체로서의 디자인 고유한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다. 디자인이란 서사시를 쓰고 벽화를 그리며 걸작을 배출하고 협주곡을 작곡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디자인은 또한 책상 서랍을 깨끗이 정리하거나 잘못된 영구치를 뽑아내고 애플파이를 굽거나 야구 게임이 조를 편성하고 또 어린이를 교육하는 일이기도 하다. 디자인은 의미있는 질서를 창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중략) 패턴과 질서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에는 의식적인 행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인이 아니다.[1]

 

위의 디자인 정의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디자인처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장거리 트럭 운전대의 대부분은 진동이 심해 4년∼10년만 타면 심장을 해친다. 이와 같은 예는 수없이 들 수 있다.[2]

 

3명의 어린이가 머리를 앞으로 하고 미끄럼을 타다가 목아래가 마비되어 버렸다. (미끄럼틀의 디자인은 아주 그릇되어 있으나 그것의 재디자인에는 아직 아무런 관심도 기울여지지 않는다). 한 체조선수가 그의 휴대용 철봉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사지가 마비되었다. (중략) 그릇된 디자인으로 야기된 사망과 사고의 수를 일일이 열거하기란 불가능하다. [3]

 

난 알고 싶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디자인이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하였는지.아래는 ‘주의소재(locus of attention)’의 위험성을 알리는 10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1972년 12월에 101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있었다. 보통 착륙 준비를 위해 랜딩기어가 내려가 있으면 비행기 조종실에는 녹색 지시등이 켜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고기의 지시등이 켜지지 않자 기장은 지상 2002피트에서 상회하기로 결정하였고 부기장은 고도를 유지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자동 조종 상태로 전환하였다. 그러는 동안 세 명의 승무원들이 랜딩기어 전구를 갈아 끼우려고 했으나 뭔가에 걸려 잘 빠지지 않았다. 전구를 갈아 끼우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자동 조종 장치를 실수로 건드렸는지 모르지만 어쩌다가 그것이 수동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사건 후에 공개된 조종실 녹음 기록에 따르면, 곧바로 0.5초의 자동 경보가 울려 정해진 2000피트의 고도에서 250피트로 급강하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황색 지시등도 들어왔다. 그러나 녹색 전구 문제에 정신이 팔려 열중하던 승무원들은 이 두 가지의 경고를 의식하지 못했다. 잠시 후, 전구를 빼기 위해 끙끙거리던 부기장이 고도계가 너무 낮은 고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기장에게  “우리 아직 2000피트 상공에 있는거죠?”라고 물었고, 기장은 “어, 이거 어떻게 된거지?”라고 대답했다. 기장이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저고도 경보는 꺼져 버렸다. “고도계는 0에 가까워지고, 정해진 고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고도계의 진황색 지시등이 깜빡버렸다. 전파 고도계 역시 고도 0에 가까워진다는 경보음을 울리고 있음에도 부룩하고 승무원 모두가 2000피트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고 누구 한 사람 손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8초 후 비행기는 에버글래이즈에 추락했다[4]


간곡히 부탁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재고를 간곡히 부탁 드린다.

 

2. 웹디자인은 정말로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가?

 

물리적인 환경을 오염시키는 인간을 오염시킨다면 결국 물리적인 환경을 오염시켜 지구를 파괴에 이른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가. 너무 극단적인가. 자꾸 디자이너가 당대에 가져야 할 당연한 책임 을 회피하려는 모습에서 자꾸 눈물이 흐르고 서글퍼진다. 난 저 디자이너가 만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온라인 공해 방지를 위하여 human-environment interaction을 시작할 때이다’라는 제하 글[5]과 윤리 디자인에 대한 재고를 꼭 부탁 드리고 싶다.

 

======== 대상 글 ============

나의 일을 좋아하는 몇가지 이유 
http://weblog.xfiniti.com/yuna/154

 

1. 디자인은 인간을 위협하지 않는다

 

2000년 Icograda(세계 그래픽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어떤 디자이너(잘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David Carson이나 Jonathan Banbrook이 아니었나 싶다)가 강연 중 이런 말을 했다."디자인을 잘못 한다고 해서('잘 못한다고 해서'가 아님) 누가 죽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지 않은 직업 중 하나다" 디자인은 심각한 그 무엇이 아니고, 위험한 그 무엇도 아니며, 인간에게 '쾌'를 주기 위한 그 무엇이다.

 

2. 웹디자인은 소멸된다. 하지만 지구를 오염시키지는 않는다.

 

프린트 디자인, 패션 디자인과는 또 다르게, 웹디자인은 사실상 손으로 만져지지 않으며, 결국에는 소멸될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그만큼 물리적으로 지구 환경에 무해하다. 나는 내 일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후세에도 길이 남을 커다란 업적을 이룰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다만 한사람의 삶이라도 위협한다거나 환경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나에게 그런 일을 할만한 무슨 엄청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_-;). 나는 내가 즐겁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으며, 어떤 생명도 위협하지 않는 그런 일을 선택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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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미진사, 1995년 12월 20일, P15-16
[2]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미진사, 1995년 12월 20일, P54
[3]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미진사, 1995년 12월 20일, P66
[4] 재프 래스킨,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 안그라픽스, 2003년 2월 15일, P33-34
[5] 최병호, < 온라인 공해 방지를 위하여 human-environment interaction을 시작할 때이다>,
http://weblog.xfiniti.com/billy/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