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파파넥의 지속가능한 디자인...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1925~1998)이라는 디자이너의 대표작입니다. 이게 뭘까요? 깡통 라디오입니다.
이 라디오는 빅터 파파넥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원주민들과 함께 만든 것입니다. 당시 발리에는 큰 화산이 폭발해,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살 곳을 잃었습니다. 유네스코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발리에 가게 된 파파넥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간단한 통신 기기만 있었다 해도 이렇게 피해가 커지지는 않았겠지만, 가난한 원주민들에게는 라디오조차 엄두가 안 나는 값비싼 물건이었지요. 그래서 파파넥은 원가 단 9센트, 지금 돈으로 100원짜리 라디오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재료는 관광객들이 버린 깡통 등 쓰레기였고, 땅콩 기름 같은 것을 동력으로 사용했습니다. 다 만들어 놓고 보니, 폐 깡통이며 전선이 눈에 거슬렸지요. 그래서 파파넥은 발리 원주민들에게 껍데기, 말하자면 ‘패키지 디자인’을 맡긴 것입니다.
이 깡통 라디오 덕분에 파파넥은 유네스코 개발도상국 디자인 기여 부문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촌스럽기 짝이 없는 색깔과 무늬는 주류 디자인계의 공격 거리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후진국에 더 수준 높은 조형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파파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도시의 서구인에게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 동양이나 시골에도 강요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선진화된 다른 문명에서 무턱대고 밀려오는 물건들은, 각 문화 고유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혼란에 빠트려버리고 말지요. 누구나 자연스럽고 솔직한, 꾸밈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파파넥은 신뢰했습니다. 발리 원주민들은 이 라디오의 개발에 직접 참여하면서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들만의 라디오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손맛이 밴 물건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물건들처럼 쉽게 버려지지 않습니다. 파파넥은 그 ‘버려지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소수자, 소외된 자를 위한 디자인
과연 이런 어린아이 같은 물건을 고안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일일까요? 우리가 상상하는 디자이너들, 한 벌에 수천만 원씩 하는 어마어마한 드레스를 만들며 패션계를 쥐락펴락 하는 유명인, 밤새 대형 컴퓨터 앞에서 복잡한 프로그램을 다루는 멋진 젊은이, 디자인 상품이라는 이유로 값비싼 고급 브랜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빅터 파파넥은 분명 세계에서 가장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존경받는 ‘스승’입니다. 그의 행보는 오래 전, 학창 시절부터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파파넥의 어머니는 키가 무척 작았답니다. ‘무척’이라고 하지만 150cm 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평균 신장 정도입니다. 주방에서 일을 할 때면 싱크대가 높아서 늘 불편을 호소했지요. 허리도 아프고, 선반에서 물건을 꺼내려면 의자를 받쳐야 했습니다. 유명한 건축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파파넥은 어머니를 위해서 무언가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사장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지요. 하지만 사장은 웃으면서 일언지하에 잘랐습니다. “우리 회사는 키 작은 노파를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들이 산적해 있다네.” 파파넥은 학교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교수는 키가 작은 주부가 미국에 몇 명쯤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당시 미국의 성인 여성 가운데 50만명이 넘는 여성이 키가 150cm 이하였다고 합니다. 성인 여성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수백만 명이었고, 장애인들도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조차 언제 갑작스런 사고로 한두 달쯤 휠체어 신세를 져야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보니 키가 큰 ‘정상인’ 못지않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결코 덜 중요한 소수가 아니었음에도, 기업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현실 생활의 다양한 요구는 늘 제외됩니다. 의류 회사에서는 뚱뚱한 사람은 자기네 옷을 입지 않기를 바라고, 고급 브랜드 회사는 자기네 제품이 누추한 집에서는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법입니다. 아직 학생에 불과했던 파파넥은 큰 일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낙망해 있던 그에게 의외의 용기를 준 것은 낯선 동양의 전통이었습니다. 일본의 게다나 대만 원주민이 신는 무지(Muji : 게다보다 더 높은 나막신)를 보고, 싱크대를 낮추어 줄 수는 없지만, 신발을 높여 줄 수는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주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쓸만한 ‘어머니(와 키 작은 이)를 위한 굽 높은 주방용 신발’이 그의 첫 작품이었습니다.
키 작은 사람을 위한 부엌은, 몇 년 후 미국의 대기업에서 개발되었습니다만, 설치하는 데 수천 달러가 드는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파파넥의 구상은 훗날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독일에서 한 제자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싱크대를 디자인해 냈거든요. 그 디자인은 어느 회사에서도 제품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동네 철공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재료와 조금의 기술이 있는 보통 사람들이 누구나 개조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인했을 뿐이었습니다.
디자인은 결과가 아닌 과정
빅터 파파넥은 평생 세계 각국을 다니며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과 어린이, 여성과 문맹 등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을 대기업에 팔기보다는, 지역의 작은 공장들에 주었습니다. 대형 자본에 지역 경제가 파괴되지 않을 수 있는 경쟁력,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공생을 함께 제안했습니다. 그것들은 그다지 매끈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것은 ‘결과’ 즉 아름다운 겉모양이 아니라, 얼마나 더 가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배려되고, 지구를 덜 오염시키는가 하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을 속여서라도 쉽게 물건을 팔고 자기가 스타가 되는 데만 급급한 이들은 파파넥을 잔소리 많은 괴팍한 노인네 취급했지만, 더 많은 세계 구석구석의 사람들은 그를 디자인 전도사라고 감사해 합니다. 하지만 파파넥은 오히려 늘 그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개인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과 자연이 어울리는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 준 따스한 사람들, 불교 승려의 정신적 가르침과 동양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부끄러워했습니다.
사실 파파넥이 남긴 모든 가르침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이 짧은 지면에서 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파파넥은 디자이너만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할까, 이 물건의 재료로 자연이 얼마나 파괴되었을까,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 공장에서 환경 오염물질을 사용하지는 않았을까, 포장은 이렇게 해야 할까, 꼭 버려야 할까, 버리고 나면 이 물건은 자연으로 돌아갈까, 사지 않고 직접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런 모든 문제들을 스스로 꼼꼼히 생각하고, 감시하고, 판단하는 과정이 디자인입니다. 그러니까 주부들이 가장 중요한 디자이너이지요. 겨우내 닫혔던 창문을 열고 대청소를 할 철이 돌아 왔습니다. 올 봄 집을 새 단장하면서, 살 때도 버릴 때도 따뜻한 디자이너가 되어 보세요.
출처 : 생활속이야기
http://www.cjstory.com/2003_03/html/story2_10.html?m=2&s=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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