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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은 작가의 작업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집’. 작업실에 군데군데 매달려있는 집 모양은 그녀가 오랫동안 이야기의 재료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차곡 바느질 한다는 그녀에게 그 작업으로 구체화된 집은 작업이자, 어린 시절이며, 그녀 자신이자 그녀의 일기가 된다. 그래서 전재은 작가는 ‘집’을 그녀의 심리적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99년 갤러리 보다의 개인전이나, 2000년 까페 갤러리의 ‘치유를 위한 옷장’전, 2002년 하인선 작가와의 2인전 ‘봉인된 일기’까지 그녀의 집 혹은 심리적 공간은 여러 전시를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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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건 2005년 11월 갤러리 알트에서 있었던 4회 개인전 ‘시간의 집’이라는 전시에서다. ‘행복을 향한 의지’라는 작품은 날개를 단 집의 모양새인데, 집은 날개를 달고 있지만 정작 그 날개는 짙은 그림자와 함께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복을 위한 힘든 과정, 이를 거쳐 행복을 쟁취했을 때, 과연 그 행복은 얼마나 영원할지, 그리고 그 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를 되묻는 작품이다. 거즈를 이용한 소재가 특이한데, 이전 작업에서도 꾸준히 사용해왔던 거즈에 대해 전재은 작가는 이 소재가 가진 섬세하고 여린 느낌이 마치 사람의 마음속을 보는 것 같았다는 말을 더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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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바느질이라고 말하든, 전반적인 작업을 아우르든, 저에게 작업은 시간을 축적해서 얻어낸 결과에요. 동시에 반대로 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것이죠. 설치작업이라는 형태도 전시가 끝나면 소멸되고 없어지잖아요. ‘시간의 집’은 저에게 그런 의미였어요.” ‘쌓아서 남는 것보다는 소멸시키고 없애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 같다’는 철학을 펼친 작가는 이번 전시로서 집에 대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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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le : 작업은 주로 언제 하는가. 가정에 매어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 작업실에 나와서 작업을 한다. 하지만, 감성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그대로 작업에 반영되는 고요한 밤을 선호한다. 그래서 때로는 밤에 나와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마음과 바느질이 일치되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Jungle : 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드로잉이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소재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페인팅이건 바느질이건 나의 일기를 쓰듯 작업해왔다.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만 작업에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껏 전시가 일기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점차 경험, 일상, 공간에 대한 환상, 소설, 영화 등 그때마다 느낀 것을 작업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Jungle : 서양화를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회화에서 생활 소품을 만드는 바느질로 작업의 형태가 바뀌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면.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는 예술의 벽이 높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순수미술이건 소품을 만드는 일이건 모두 소중한 작업이지만, 이 작업을 대하는 사람들이 보다 손쉽게 반응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디자인 영역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Jungle : 앞으로 작업은 어떤 방향이 될 것인가. A4 용지로 작업하는 Peter Callesen의 작업을 보고 매우 놀라웠다. 작업실 벽에도 전시 리플렛을 붙여 놓았다. 이렇게 가벼운 소재로 커다란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인상 깊다. 나 역시 이런 맥락에서 가벼운 소재로 작업하고 싶다. 내가 사용하는 가볍고 디테일 한 소재로 작업의 무형적인 가치를 드러내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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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지만 공간은 쌓인다. 전재은의 작업실에서 느낀 것은 이 자명한 명제였다. 그녀는 흐르는 시간을 바느질로, 그 외의 다양한 작업으로 축척해 놓았다. 그 작업들이 물리적으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작업실은 전재은 작가의 거대한 일기장이다.
작업하는 것 보다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전재은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단순히 그녀의 작업을 따뜻함, 포근함으로 분류할 수 없음에도 작업들이 한 가득 담긴 작업실에서, 혹은 작업실의 사진에서 그런 느낌을 가졌다면, 전재은 작가 자신을 담은 그 거대한 일기가 따뜻하기 때문이 아닐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