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찬 "곡 쓰다 끙끙대며 눈물도 쏟았죠"

이기찬 "곡 쓰다 끙끙대며 눈물도 쏟았죠"
[연합뉴스 2007-01-20 17:25]
이기찬 9집으로 활동 재개

9집 타이틀곡 '미인'으로 2년 만에 활동 재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오스트리아 미술가 에곤 실레(Egon Schiele)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에 혼을 쏙 빼는 감성주의자, 책을 원 없이 읽고 싶어 서점 주인을 꿈꾼 학구파, 오선지 위 음표와 씨름하다 울어버리는 욕심쟁이. 평범한 듯, 특별한 가수가 이기찬(28)이다.

1996년 데뷔해 올해로 가수 생활 11년째를 맞은 이기찬이 9집 '라라 에이비스(Rara Avis)'를 발표했다. 8집 이후 2년3개월 만이다. 데뷔 당시 양파ㆍ이지훈ㆍ김수근과 함께 '고교생 하이틴 4인방'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그가 걸어온 길은 의외로 기복이 심하다.

"1집으로 성공을 거둔 후 4집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을 달리다 5집에서 '또 한번 사랑은 가고'로 큰 사랑을 받았어요. 이후 8집에선 쓴맛도 봤죠. 과제를 해치우듯 기계적으로 음반을 발표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9집은 처음으로 음악을 즐기며 완성했어요."

2년여의 공백은 약이 된 시간이었다. 이 기간에 한 수녀한테서 온 엽서, 유럽 여행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왔다.

"지난해 어느 날, 집에 엽서 한 장이 왔어요. 전 소속사인 유리기획 여직원이던 누나가 수녀가 돼 제게 보낸 안부 편지였어요. 충북 음성 꽃동네에 계시더군요. 원래 천주교 신자여서 그곳을 찾아가 봉사 활동을 하며 믿음이 많이 커졌어요."

유럽 여행은 혼자 떠났다. 오스트리아ㆍ독일 등지를 돌며 미술관, 박물관 순례를 했다. 에곤 실레ㆍ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작품을 보며 언젠가 그림을 그리겠다는 소박한 꿈도 품었다. "여행지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듣기 좋은 음악을 추천해 내가 직접 그린 그림,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을 내고 싶다"고도 했다.

학창시절 생활기록부에 '내성적이고 조신한 학생'이란 표현처럼 그의 생각, 말투는 늘 차분하다. 지금껏 이렇다할 스캔들이 없었던 것도 그 덕택. 심지어 '악플'에 마음을 다친 기억도 없다.

"성격 탓인 것 같아요. 트리플 A형 같은 O형이거든요. 밖에서 놀지 않으니 인간관계도 좁고요. 또 음반을 준비할 때면 딴 데 신경 쓰기 힘들어 여자친구와 싸우고 헤어진 적도 많아요. 이젠 술자리도 좀 늘리고 술도 좀 마셔보려고요(웃음)."

9집은 발매도 하기 전에 가요 관계자들 사이에 '이기찬이 이 음반으로 발딱 일어서겠다'는 입소문을 탔다. 타이틀곡은 SG워너비의 히트곡으로 유명한 작곡가 조영수가 쓴 '미인(美人)'.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유행시킨 조영수에게 색다른 발라드곡을 써달라고 주문했다. 복고풍의 멜로디에 음색만으로도 슬픈 이기찬의 보컬이 입혀져 첫 귀에 쏙 들어온다.

이기찬이 일본 거리에서 우연히 듣고 반해 음반에 수록한 '세 사람'은 일본가수 구미코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너에게로 날다'는 박화요비ㆍ별ㆍ클래지콰이의 알렉스ㆍ대니정이 참여해 세련된 하모니로 완성됐다.

이수영과 듀엣으로 부른 '현실', 복고풍 사운드와 코믹한 가사가 인상적인 '너는 내 운명' 등 자작곡도 두 곡 실었다. 이기찬은 신승훈ㆍ심현보 등 싱어송 라이터 가수들로부터 열심히 곡 쓰는 '젊은 피'로 칭찬받고 있다.

"처음 13~15곡 정도 제가 곡을 썼어요. 곡을 쓰다 막히면 밤새 끙끙대고 울었죠. 하지만 8집 때 색깔이 나는 곡을 빼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곡을 추려 두 곡만 넣었어요. 욕심을 버렸죠(웃음). 욕심이 고집이 되고 아집이 되거든요.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그가 새로이 빠진 것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늦바람이 불었다. 팬들의 물음에 답글을 달아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니홈피에는 비비 와이너스의 '아이 해브 어 드림', 케미스트리의 '무브 온'이 흘러나온다.

"추워~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과 CD를 사러갔던 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900원, 정말 요금이 많이 올라 있어 깜짝 놀랐다. 까~암짝!" 광화문 밤거리, 지하철에서 찍은 깜찍한 표정의 사진에 귀여운 설명을 곁들여 놓았다.

현재 그는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퍼포밍아트학과에 재학 중으로 내년 8월 졸업한다. 2월 개봉 예정인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 출연해 연기력도 선보인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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