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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라는 것..

category MUSIC 2004. 10. 11. 19:29

악보는 제 3자에게 음악의 내용을 가장 손쉽게 전달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녹음 매체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 악보는 유일한 작품 보존의 방법이었을 수 밖에 없다.

 

Bach는 어둠속에서 몰래 악보를 사보하고 읽으며 음악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일까.. 말년엔 실명하는데 Bach의 작품들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선 등가교환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의 맹점일까.. 완전보존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컴퓨터로 수치화된 소리라면 가능성을 대단히 높일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이 같은 선율을 연주해도, 연주할때마다 미묘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일률적으로 모든 노트가 항상 같은 강약, 같은 길이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묘하게 변화한다.

미술의 경우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이 가능하고 환경적 요소가 비교적 적게 작용하는 예술이다.

하나의 작품을 잘 보존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일텐데..

 

음악이라는 녀석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당췌 원래의 그 모습 조차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악보라는 것. 그것은 음악을 종이위에 남긴 알아보기 쉬운 기호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음악은 아닌 것이다. 그곳에 강약이 쓰여있고, Articulation이 적혀있고,

제 아무리 작자가 요구하는 tempo가 적혀있다 한 들, 그것으로 만인이 공통되게 연주할 수는 없다.

 

하나의 언어를 기록하여 남긴다 해도 많은 부분 왜곡되어버린다.

"나는 기쁘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을때가 좋종 있다.

"나는 슬프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지 않을 ‹š가 있다.

"나무가 아름답다"는 말은 나무를 보고 있는 나의 감성이 나무라는 사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어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인가, 아니면 나무라는 것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어서 내가 나무를 보게 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무는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인가 당췌 혼란스러운 개념이다. 결정적으로 "나무가 아름답다"라는 말을 남겼을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나무를 떠올릴 것이다. 만일 내가 버드나무가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고 "나무가 아름답다"라는 기록을 했을 때 어떤이는 이것을 보고 벗나무를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이는 소나무를 생각할지도 모른다. 악보란 이런 것이다.

 

음악엔 음악에 맞는 기록의 방법이 있다. 바로 음악의 소재를 그대로 담는 것. 녹음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인간의 오감 의존도를 생각해보면 소리만 가지고 음악을 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다. 굳이 통용되는 악보가 아니더라도 보통은 자신만의 기록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악보라는 것은 음악의 불완전한 기록이다.

 

또한 오늘날엔 음악에 필요한 요소 중에서 음의 색채라는 부분이 대단히 중시되어지고 있다.

그만큼 악기가 다양해지고 음악의 종류가 많아졌으며, 소리를 내는 기술이 많아진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음악의 악보 의존도를 필요이상 높이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음악은 귀로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분석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요될 필요는 없다.

 

또한 머리로 분석하는 것에 대한 지나친 경계나 혐오 또한 없어져야 할 것 같다.

예술에 필요한 것은 뜨거운 감성과 격렬한 에너지, 넘치는 열정만이 아니다.

형식의 훈련 없이 인간은 한 걸음도 진보할 수 없다.

 

어쩌면 악보라는 것은 자신만의 해석이 가능한 오히려 자유로운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악보는 기록일 뿐 그것이 음악은 아니라는 점.

서양의 정형화된 오선보는 분명히 커다란 약점을 상당수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약점은 단지 서양의 오선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각적 요소의 적절한 활용은 대단히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