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아르바이트 경험수기

나의 특별한 아르바이트 경험수기
나의 특별한 아르바이트 경험수기  


작성자 : chelll  
작성일 : 07-12  

아르바이트

나의 사회 생활에 대한 모토는 이랬다.내가 성실히 일을 하면 인정도 받고, 아울러 회사가 발전하게 되고회사가 발전하면 나도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회사 생활을 했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엄연히 존재하며 나타났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횡횡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두달을 버티지 못한채, 회사는 부도나 버렸고 그동안 여러달 동안밀렸던 월급을 받지 못한채, 나는 졸지에 원하지 않는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마찬 가지지만 우리 나라는 외환위기 이후로 이어지는살인적인 실업난이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나 처럼 어느 정도 사회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재 취업을 하려해도그야말로 낙타가 바른 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힘든 세상이 되었다.

나의 실업자 로서의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이와 더불어 주머니 또한 시간 만큼 빠르게 비어가기 시작했는데그나마 모아돈 돈이 다 떨어지자 나는 용돈과 재 취업 자금 마련을위해 하루빨리 긴급 아르바이트를 구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아는분을 소개로 하루에 10만원씩 임시로 일주일간간병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아르바이트 치고는 아주 높은 보수라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넙죽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찾아간 곳은 서울 일원동에 위치한모 의료원이었다.

이 간병인 아르바이트는 원래 간병일을 하고 있던 50대 아주머니가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일주일간 내가 임시 땜통으로 봐주게 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하루에 10만원은 그냥 주는것이 아니었다.

나의 환자는 50대 초반의 남자로 모 회사의 이사로 재직중이 었는데.얼어붙은 빙판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전봇대에 머리를 부딛쳤고 이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심장이 멈추게 되었는데

다행이 옆을 지나던 행인을 신고로 119 구조대가 현장에 출동을 해서응급실로 향했지만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버렸다.

사람의 심장이 멈추게 되면, 호흡이 멈추면서 뇌에 산소 공급이중단 되는데 이러한 상태가 10여분이 이상 지속되면 뇌가 손상되기 시작하면서 돌이킬수 없는 상태로 변한다고 한다.

아저씨가 좀더 빠르게 구조되어 응급실에 도착했다면 그렇게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저씨가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때 다른 의사들은 이미 숨을 거두었으니영안실로 옮기라고 했지만 젊은 의사 한사람이 2시간 넘게 심폐 소생술을 하여 겨우 심장박동을 하게 만들었지만 이미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서 뇌가 손상된 후라서 몸의 모든 부분은 마비되고 산소호흡기로 강제호흡을 하며 눈만 껌벅거리는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자력으로 음식을 먹을수 없어서 닝켈주사와 목에 연결된 호스로죽을 넣어 영양 보충을 해야했는데.다행이 내가 갈때 쯤엔 상태가 호전되어 산소호흡기를 떼어내 자력으로 호흡을 할수 있었고 손 부분에 마비된 신경이조금씩 되 살아나는 징조로 주기적으로 팔과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닝겔 주사를 살피는 방법, 대 소변을 받아내는 방법, 욕창 방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몸을 돌리는 방법, 물수건을 이용하여 몸을 닦는 방법등에 대해 배웠다.

내가 생각한 간병인이라면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수 있고 휠체어 정도는타고 다닐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고 대,소변도받아 내야 하는 환자를 보고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하겠다고 약속을 했던 터라 되돌릴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후회 막급이었다..자세한 정황을 살펴보았어야 하는데하루에 10만원 준다고 하니까..혹하는 마음에 하겠다고 해 버린 내 자신이원망 스러웠다.

나에게 인수 인계를 한 간병인 아주머니가 나가고 나자, 나는 두렵기 시작했다.이런 중환자를 까딱 잘못했다가는 큰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고더욱이 간병인에 대한 경험도 없지 않은가?

처음에 아저씨는 죽은듯이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아주머니가시킨대로 기저귀를 살펴보고 몸을 닦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며 나의 간병인으로서하루는 시작 되었다.

가끔씩 "허억..허헉" 소리를 내며 가쁜숨을 내쉬며 죽은 듯이 누워있는 아저씨와단둘이 마주하고 있으려니까..상당히 겁이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한 인류학자의 말대로 사람은 면역성 동물이라고 했던가?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정도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가끔씩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와서 상태를 살펴보고 나갔고,  나는 나대로 내가 해야할 일들을 하고 나서 11시가 되어서 겨우 한숨을 돌린후  침대 옆 책상에 앉아 가져온 책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다닥" "다다"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아저씨의 목이 뒤로 젖혀지고 손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며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도 당황하여 아저씨의 한동안 얼어 붙은 듯이 멈추고 버렸고겨우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복도 밖으로 나가 당직간호사를 불러 왔다.

"도대체 간병인이 뭐 하시는 거예요?""아니...전 가르쳐 준대로 했는데""큰 일날뻔 했잖아요""왜요??"

아저씨는 자력으로 식사를 할수 없기 때문에, 목에 구멍을 내어그 호스로 죽을 넣어 식사를 하게 하는데...호흡을 하면서  그 호스부분에 가래가 끼게 되고 간병인이 정기적으로 가래를 빼어 주어야만 원할하게 호흡을 할수 있는데..내가 그것을 깜빡 잊어 버리는 바람에아저씨가 호흡 곤란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결국 간호사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지만 나는 나의 잘못으로 인한 아저씨에게  호흡 곤란의 고통을 주었다는 죄책감은 갖이 않고 아무것도 하지못하고그렇게 누워만 있는 나의 환자인 아저씨와 하루에 10만원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에혹해서 생각없이 뛰어든 내 자신에게 화가나서 미칠것만 같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닝겔 상태를 확인해야 하고, 수시로 기저귀를 확인하고 갈아주어야 하는 일을 할때면 비위가 약한 나는 정말 고통이 아닐수 없었다.그래서 화장실로 뛰어 가서 구토를 한적도 여러번 있었다...그리고 목에낀가래를 빼내야 하고 또  서너 시간 간격으로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돌려야 주어야 하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중노동을 할 때면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어쩌 겠는가? 이미 엎지러진 물인것을.나는 하루 24시간 동안 꼬박 그 아저씨와 생활을 해야만 했는데.이 아저씨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어서간병인인 나 또한 아저씨가 잠을 자는 낮 시간에 잠깐 눈을 부치고 밤에는 뜬눈으로 세워야 하면서 생활리듬이 깨지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은 더욱더 가중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면서,나의 피로감은 더욱 누적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분풀이로 아저씨를 대하는손길 또한 갈수록 거칠어졌다..아저씨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온몸이 마비되어움직일수 없고 말도 못하는 상태라서 나에게 불만을 표시할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때, 나는 간호사와 가족, 간병인들이 갖는 먼초전 신드롬 바이 프록시(Munchausen Syndrome by Proxy)’라는 정신질환이라는 초기 증상을 보이지 않았나 싶다.

먼초전 신드롬 바이 프록시는 어린이·중환자 등을 돌보는 부모나 간병인 등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이 돌보고 있는 어린이 등에게 상처를 입히는 희귀 정신질환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신질환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아무리 정상인이라도오랜동안 이런 전신불수의 환자를 간호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중압감으로이러한 증상을 조금씩이라도 보이게 된다고 한다..ㅎㅎㅎ

"젠장...아무리 돈도 좋지만 더러워서 못해먹겠네?""내가 미쳤지..미쳤어..이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다니"

나는 이렇게 혼자 투덜거리며 무거운 아저씨 몸을 과격하게 돌려 눕히고옷도 대충 입히고 팔과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서 떨기 시작하면 두 팔로 잡고 있기 불편해서 침대 다리에 팔과 다리를 묶어 놓기 까지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하루빨리 이 지겨운 일주일이 가고 간병인 아줌마가돌아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시간이라는 녀석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지만, 즐겁지 않은 사람에게는 시간은 영화속 슬로우 모션처럼 참으로 더디게도 움직였다.

사람은 뭔가를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진다..라고는 말이 있지만.그것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이 총알처럼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램과는 달리.5일째 되는날..시골에 내려간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청천벽력같은 소리를들었다..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일주일만 더 봐달라는 것이었다.

절대 안된다고 우겨보았지만.

결국 아주머니의 애원이 나의 우김을 이기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도 싫다돈도 싫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돈을 주고 다른 간병인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피 할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이 있다...나는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결코 피할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즐길수도 없는 상황이었기때문이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그 스트레스에서 파생된 미움은식물인간 처럼 누워있는 죄없는 아저씨에게 향하고 있었다.

"젠장...간병하러 왔다가 내가 환자 되어 나가겠네""아..이 아저씨 몸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내가..미쳤지..미쳤어..내 다시 간병인 같은거 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개...왈왈왈 왈"

나는 이렇게 말못하고 눈만 멀뚱 거리는 아저씨 옆에서 혼자 떠들면서스트레스를 풀어 나갔다.



아저씨 간병일을 하고 일주일째 되는날나는 아저씨의 가족들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데긴병에 효자 없다고 아저씨는 이미 가족들에게도 외면을 당하고있었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서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아저씨의 형제들과부인이 심하게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충이랬다.아저씨는 사고로 산재 보험처리 되었고, 회사에서 보상금과 상해 보험금이지급되었는데, 아저씨의 형제와 부인이 서로 자신이 돈을 관리하겠다는 것이 었다...보상금이 나오기 전에는 서로 보호자가 되기를 기피하고 잘 찾아 오지도 않던 사람들이 말이다.

환자는 거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전신 마비로 누워 있는데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보상금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한심하고 매정했다.

그때 나는 아저씨의 눈을 보았다.매일 그 시간 때면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며 깜빡 거리고 있을 시간인데눈은 꼭 감겨 있었고 목은 창문쪽으로 돌려져 있었다..

그랬다!  나 또한 그랬지만아저씨의 상태는 아주 빠르게 좋아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아저씨가 의식도 없는 식물인간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아저씨는 몸은 움직일수는 없었지만 말귀는 알아 듣고 있는 것이었다.그래서 가족들의 싸움을 듣지 않으려 눈을 감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황급히 싸우는 가족들에게 환자에게 해롭다며 병실에서 몰아내고 돌어와 보니, 불현듯 아저씨가 참 애처롭고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울컥해졌다.

이제 까지는 죽은 듯이 누워만 있는 아저씨가 나를 괴롭힌다고 내 편할대로 생각했는데,

진정한 피해자는 나도 아니고 가족들도 아닌 바로 아저씨라는 생각이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저씨가 어느정도 의식이 돌아와 말귀를 알아 듣고주변 사물을 인식할수 있다면, 그는 전신마비의 몸과 가족들의 싸움에서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슴이 아려왔다.

"아저씨...다들 가셨어요 이제 눈을 떠요?

라고 내가 아저씨에게 말을 하며 고개를 바로 세워 베게를 올려 받쳐주자 아저씨가 조용히 눈을 떴다...그런데 그 두눈 가득이 슬픔이 베어 나왔다..아저씨 간병을 시작한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아저씨의슬픈 눈빛이었다.

이렇게 아저씨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기고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자. 이상하게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내 스스로도 참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이후 나는 아저씨를 대하는 손길도 부드러워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아저씨의 마비가 빨리 풀렸으면 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틈나는 대로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마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던가?"사람은 행복과, 기쁨과, 고통, 번뇌는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 하는데자신의 마음속에서 어떤 것을 끌어 내느냐 에 따라 그 삶이기쁨 또는 고통이라는 극과 극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즉 마음속으로 기쁘다, 즐겁다라고 되뇌이며 행동하면 마음이즐거워지고 행복해지지만..나는 정말 불행해...힘들어 죽겠어 라고되뇌이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또한 고통스러워 진다는 논리이다.

나는 여지껏 내 마음속에서 고통과 불만만을 보고 끄집에 내었을 뿐기쁨과 보람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 때는 잘나가는 대 기업의 이사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찾아 오지 않은 쓸쓸한 병실에서 가족에게 까지 외면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행복과 기쁨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아저씨의 귀에 이어폰을 끼워 음악을 들려 주었고 아저씨는 이에 대한 답례로 좋아하는 클래식이 나올 때면 편안한 모습을 주기도 했다.

내가 청각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후로 음악과 더불어 아저씨의 옆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어 주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저씨의 상태는 호전되는 듯 해 보였지만여전히 전신 마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만 처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저씨의 눈을 통해 우리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경제가 나아질것 같아요?" 라고 내가 질문을 하면"그렇다" 라고 생각하면 아저씨는 눈을 한번 "깜박" 거리고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눈을 두번 "깜박" 거리면서 대화를이어 나갔다.

그것은 놀라운 발전이었고..재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어서 답답했던 나는.나는 아저씨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텔레비젼을 보며..저기 연예인 처럼마른 여자를 좋아 하느냐? 뚱뚱한 여자를 좋아하느냐?내 인상이 좋은가? 나쁜가?한국 영화를 좋아하는가? 외국 영화를 좋아하는가?정치인들 허구 헌날 멱살잡고 싸우기만 하는데 어느 당을선호하는가? 등등의 여러 질문등을 통해서 나는 아저씨가 마른 여자보다는 통통한 여자를 좋아하고 나의 인상이 좋다(간병인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일수도 있다..ㅎㅎ)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늦은 나이에 얻은 하나뿐인 아들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전신 불수의 몸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강한 부성애를 느낄때는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내 가슴이 찡 하게 울려 왔다.

하지만 왠 일인지 초등학생인 아저씨의 아들은 중환자실에 있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다라는 가족들의 결정에 따라 한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가슴이 아파서내가 아저씨의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아저씨가 아들을 보고 싶어 하니 병원에 찾아 오는 것이 어떻겠나? 라고 말을 하면 식물 인간처럼누워있는 사람이 무슨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느냐?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간병이나 똑바로 해라 라며 오히려 나를 거짓말 장이로 몰아 부치며화를 내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저씨는 가족들이 오기라도 하면 눈을 감고 죽은 듯이외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저씨가 처음에 입원한 상태 그대로아무런 의식도 없는 식물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문기사를 읽어주고 노래를 부르고 어설픈 춤을 추고, 장난삼아 발다닥을 간지럽 히면 가만히 눈을 돌려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나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저씨가 하지 않았다.아저씨가 싫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보름간의 일정을 마치고 아주머니가 돌아오자.나는 아저씨 곁을 떠나야 했다...그 동안 정이많이 들었는데 발길이 쉽게떨어질것 같지 않았다..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내가 이런 마음을 같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도 내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돌아온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아저씨와 눈으로 대화하는 법그동안 팔과 다리에 조금씩 신경이 돌아 오면서 서너 시간 간격으로경련을 일으키는데..묶어 두거나 누르고 있지 말고 주물러 주면쉽게 진정이 된다는 것, 그리고 가끔 음악이나 신문기사등을 읽어주면좋아한다라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고 나서 아저씨와 작별을 고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는 자신이 부재중이던 보름사이에 아저씨가 많이 호전되어비록 목의 호스를 통해서 이지만 죽을 먹고 팔다리의 신경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고, 눈을 통해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며 놀라워 했다.

그날 아저씨와 작별을 하는날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했는데아저씨는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있었다...그것은 아저씨가 불만 스러울때보여주는 행동이기도 했다.

"아저씨 저 가요...힘을 내셔서 꼭 일어 나세요"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에게..작별 인사도 안하실 거예요?"옆에 있던 간병인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섭섭해서 그러신가 보네?""내가 싫어서 그러신 거겠죠."아니야..그동안 정이 들어서 그럴꺼야?"

"아저씨는 꼭 일어 나실수 있으니까...절대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가족들이 오면 왜면하지 마세요..아저씨가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가족들도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지치는 거잖아요 아저씨가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족들도 달라질 거예요..내말 알아 들었죠?""........""그럼...저 가요"

내가 몸을 일으키는데 아저씨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내 손을 잡았다.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처음으로 약한 힘으로 나마 내손을 잡는 아저씨의 손 때문이기도 했지만.눈을 감은 아저씨의 눈가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도 나처럼 헤어짐을 아쉬어 하고 있는 것이었다내가 그렇게 잘해 준것도 없는데...아저씨는 나에게 깊은 정을 쏟고 있었던 것이었다...말이라도 할수 있으면 좋을텐데...그렇지도 못하고혼신의 힘을 다해 잡고 있는 내손이 약한 힘을 주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날 나와 아저씨 그리고 간병인 아주머니는 함께 울었다.나 또한 강한 남자라고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단 한번도 눈물을 흘린적이없었는데...왠일인지..그날은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저씨와 내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15일간의 정에 대한 회한,애증,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혼재된 복합적인 감정의 눈물이었으며 내가아저씨에게 진솔한 마음으로 간병을 하니 아저씨의 상태가 나아진 것이다라는 생각과 좀더 잘해 드릴 것을 하는 하는 미안함도 포함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보름간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아저씨의 간병인으로 생활했던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예전보다 눈 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알아보고정규직으로 재 취업에 성공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간병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결코 직업에 대한 눈 높이를 낮추지 않았을 것이고, 쉽게 취업에 성공해서 지금처럼 안정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간병인 아르바이트는 내게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 주었고, 생명에 대한 소중함, 소중한 가족에 대한 사랑, 건강과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었으며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음을 주어 내 자신을 한층더 성숙시켜 주었다.

이후,아저씨는 빠르게 호전 되었고 비록 예전의 정상적인 모습을 되 찾을 수는없었지만. 휠체어에 올라 움직일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 통원 치료를 하고상태가 호전되자 다시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아져서 잘 살고 계시다는 소리를 들었다.

비온후에 땅이 굳어지고, 구름뒤에 해가 있고,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오는 것처럼, 힘들고 여러움 뒤에는 반드시 기쁨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는것을 나는 간병인 아르바이트를 통해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희망을 놓치 마라, 희망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잃어 버리는 것과 같다 라고 말이다.

사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다.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개인적 사정등으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어려운사람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긍정적이고 힘찬 삶을 살아가는 노력파들이라고 할수 있다 그래서...나는 아르바이트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힘들고 여러운 상황속에서도 묵묵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들에게 늘 찬사와 경외감을 느낀다.

아르바이트는 꿈을 심어주고 미래에 대한 비전과 내 삶을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디딤돌과 같은 것이다 라고 나는 단언지어 말 할수 있다 라는 말을끝으로 나의 특별하고 감동적인 눈물의 아르바이트 경험 수기를 마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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